주간동아 689

2009.06.09

“충격과 비통…” 온라인 추모 물결

누리꾼들 ‘자발적 추모형’에서 ‘비난냉소형’까지 각양각색 반응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6-05 09: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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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과 비통…” 온라인 추모 물결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인터넷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즐겼던 노무현 전 대통령.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부터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그려낸 16대 대통령 당선까지, 누리꾼은 언제나 그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다사다난한 5년의 임기 동안에도 그는 누리꾼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이 보인 반응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누리꾼들은 각종 포털사이트 게시판을 중심으로 추모 물결을 이뤘다.

    추모 열기가 확산되는 와중에 누리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세력’들에 대해 분노를 토했다. 그런가 하면 소수의 누리꾼은 과도하게 고인을 추모하는 것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고인을 비난하는 악플을 달기도 했다. 기사 댓글 게시판 곳곳에서 이들 간의 감정적인 다툼이 벌어졌다. 고인은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인터넷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둘러싼 여론을 여과 없이 담아내는 생생한 민심의 현장이었다.

    [자발적 추모형]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리꾼들은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글을 남기며 고인을 추모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는 메인 화면 이미지를 흑백의 국화꽃으로 대체하고 추모글을 남기는 별도의 게시판을 운영했다. 누리꾼들은 댓글 앞에 ▶◀ 근조 표시를 달고 고인에 대한 추모의 글을 남겼다. 누리꾼 ‘hanevara’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몇몇 누리꾼은 추모곡이나 관련 UCC를 만들어 누리꾼들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추모를 대신했다. 송광호 씨는 다음 TV팟에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제목으로 직접 작사 작곡한 추모곡을 올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갈까/ (중략)/ 모든 시름 짊어지고 길을 택했다/ 바위산을 친구 삼아 몸을 던졌다.”

    가슴 시린 노래에 누리꾼들은 공감을 표시했고, ‘임 쓰신 가시관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 ‘고(故) 노무현 당신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등 다양한 버전의 추모곡이 이어졌다. 재생 횟수도 적게는 수백 회에서 많게는 수만 회까지 기록해 누리꾼들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공격적 분노 표출형] “정치검찰이 노통을 죽였다”

    청와대와 대검찰청,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는 과잉 수사를 비난하는 누리꾼들의 글이 폭주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적이던 정치인들의 홈페이지와 싸이 홈피에도 비난의 글이 이어졌다.

    무리한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세운 당사자로 지목받는 검찰에겐 수천 건의 비난글이 이어지면서 한때 대검찰청 홈페이지가 마비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누리꾼 ‘박미진’ 씨는 “검찰들이 전직 대통령 대우 왜 안 해주나요? 당신은 얼마나 깨끗하다고… 국민을 위한 검찰이 개뿔”이라며 원색적으로 검찰을 비난했다.

    임기 중 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언론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각 언론사 사이트와 해당 기사 댓글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언론의 책임”이라며 언론사와 기자를 싸잡아 비난했다. 누리꾼 ‘essay’는 “제발 ·#52059;·#52059;일보는 언론이라는 말 붙이지 마. 양아치들을 무슨 언론이란 과분한 이름으로 불러주냐”며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음모 제기형] “이것만은 밝혀내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누리꾼들도 있다. 음모론의 시작은 ‘유서 조작설’. 경찰이 유서 뒷부분을 삭제한 채 일부만 공개했다는 의혹이다. 누리꾼 ‘선물’은 “자필로 쓰지 않은 유서는 아무 쓸모 없다. 2002년 장기 기증을 약속한 그가 유서에 화장해달라고 쓴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공개된 유서가 전문이다. 유서 누락은 있을 수 없다”고 유서 조작설을 일축했지만 여전히 누리꾼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음모론의 절정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석연치 않다며 제기되는 ‘시해설’이다. 인터넷에는 ‘노 전 대통령 죽음 의문점 32가지’라는 제목의 글이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 누리꾼들은 혈흔, CCTV 미공개, 정토원, 경호원의 초기 대응 등 32가지 의문을 제기하며 전면 재수사를 요구한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할 때 함께 있었다고 진술한 경호원이 진술을 번복했다고 경찰이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음모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일부 누리꾼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재수사 요구 및 화장반대 청원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다음 아고라 이슈 청원 코너에는 ‘화장 반대합니다, 재수사 요청보다 이게 먼저입니다’는 제목의 청원에 5000명 넘는 누리꾼이 서명했다. 누리꾼 ‘bokjassi’는 “누군가는 나서서 화장만은 막아주오. 한 점 의혹 남기지 말고요”라며 서명지지 의사를 밝혔다.

    [양심 가책형] “용서를 빕니다”

    노 전 대통령을 취재한 한 검찰출입 기자는 5월25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사과문을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렸다. 그는 ‘염치없는 한 기자가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과연 나 스스로 노 전 대통령 앞에 떳떳할 수 있는지, 여론의 비난처럼 검찰 발표를 스피커같이 확대 재생산하진 않았는지?”라며 “바보 노무현. 당신은 저에게 우리 역사가 결코 강자만의 것이 아닌,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것이 아닌, 굳센 신념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스승이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했다.

    누리꾼들은 “회개하는 기자 멋지다”며 그의 용기를 칭찬하기도 했지만, 다수의 누리꾼은 진정성을 의심하며 “정말 짜증난다, 이런 글” “진정성을 보이려면 너도 자살하라”는 식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 기자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을 싫어하고 비난하던 많은 누리꾼이 그의 죽음 앞에 숙연해졌다. 누리꾼 ‘rlarlgus501’는 “과거에는 욕도 하고 싫어했지만, 죽음을 택한 것을 보니 안타깝습니다. 이 세상에서 힘들었지만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쉬세요. 저는 큰 기도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비난 냉소형] “죽음으로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일부 누리꾼은 지금의 추모 물결이 정도가 지나치다고 경계하며 “그가 죽었다고 해서 범죄 혐의까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리꾼 ‘amtsori’는 “자신이 정말 결백했다면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싶다”며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고 난 뒤 자신이 결백했노라 보여주면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노사모들이 봉하마을에서 청와대나 한나라당 관계자의 조문을 막은 데 대해 거세게 비난했다. 누리꾼 ‘ineedunow’는 “고인이 바라는 게 이건 줄 아냐? 니들은 대체 무슨 권리로 행패를 부리느냐? 그렇게라도 하는 게 충절이고 고인을 위하는 일인 거 같아? 정신 좀 차려라”고 일침을 놓았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이 죽어서도 분란을 일으킨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누리꾼 ‘judess71’는 “임종까지 세계에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하는군요. 인간적으로 정말 불쌍하지만 이런 연약한 사람이 한 국가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는 게 이해 가지 않는군요”라며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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