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6

2009.05.19

평단을 뒤흔든 경이적인 SF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 입력2009-05-15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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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단을 뒤흔든 경이적인 SF

    <b>박경철</b><br>의사

    다윈 탄생 200주년인 올해를 전후해 과연 다윈주의를 신봉하는 과학자(혹은 과학적 사고를 하는 자)가 크리스천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도발적 담론이 쏟아졌다. 그 이전에도 이러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윈 200주년과 맞물린 ‘과학적 신성부정(神性否定)’ 캠페인은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를 필두로 한 일군의 학자에게 ‘다윈’이라는 이름이 기독교적 세계관의 허구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적명(適名·euonym)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그들에게 ‘다윈’은 더는 자연인 ‘다윈’을 가리키는 명명(命名) 기호가 아니었다.

    사실 과학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시도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예를 들어 의사의 처지에서 뇌를 다친 환자들의 지적 변화를 지켜보면, 지성과 감성을 비롯한 인간의 모든 인지적 능력은 뇌세포와 신경세포 간의 전기적 신호에 그친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도킨스 같은 생물학자에게는 뇌 속에서 생기는 전기적 신호를 순차적으로 이식할 수만 있다면 인간이 램 메모리 칩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허황한 상상이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보다 훨씬 과학적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종교, 이후에는 철학과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이제 인간에게 ‘미지(未知)’란 과학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이지, 더는 종교나 철학의 영역이 아니다. 거기가 바로 이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책읽기 펴냄)가 서 있는 지점이다.

    필자의 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철인 28호, 아톰, 마징가 제트로 시작해서 아시모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르의 SF를 보고 읽은 세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것이 SF를 ‘허구에 찬 공상’의 범주로 치부해버리는 계기가 됐다. 당시의 SF는 우주를 날아다니는 쇳덩어리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 그 안에 과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SF 독자나 작가들은 박테리아가 사람으로 진화한 것만큼이나 놀랍도록 진화했다. 물론 진화와 진보가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SF가 실로 다양한 진화를 이룬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SF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경멸적이다. 특히 문단에서의 시각은 더욱 그렇다. 존 크롤리, 그렉 이건, 로즈 젤라즈니, 테드 창의 작품을 읽고도 SF를 ‘장르문학’이라고 폄훼한다면 그는 진정 톨스토이의 재래(再來)거나 철면피, 아니면 바보임이 틀림없다. 테드 창은 이들 중 가장 신예지만 가장 집중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은 이 책에 실린 8편의 중단편이 전부다. 장편이나 다른 작품은 없다. 한데 이 신예 작가는 단편을 한 편씩 발표할 때마다 평단을 흔들어대더니, 나중에는 SF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부터 네뷸러상, 로커스상, 스터전상, 아시모프상, 사이드와이즈상, 존 캠벨 기념상 등 모든 상을 싹쓸이해버렸다. 그러고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 이름만으로도 ‘권위’가 번쩍거리는 정통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SF 엽편소설을 기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그의 SF는 과학적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흠집도 없다. 지극히 완벽한 내피를 가지고 있어 껍질을 벗길 때마다 완벽성에 경탄하게 된다. 심지어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전공에 대한 독자의 관심은 수학에서 물리학으로, 다시 화학에서 언어학, 철학으로 이동한다. 과학의 전 분야에 걸친 그의 천재성에 대한 경탄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곧 존경심으로 바뀐다. 후기에서 그의 재능이 천재성이 아니라 초인적인 노력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단을 뒤흔든 경이적인 SF
    그는 ‘일흔두 글자’라는 한 편의 단편소설을 위해 제프리 심슨의 ‘문자 시스템(Writing System)’, 윌리엄 새머린의 ‘언어학 현지조사(Field Linguistics)’, 유진 니더의 ‘어형론(Morphology)’, 케네스 파이크의 ‘음소론(Phonemics)’, 올리버 색스의 ‘목소리 보기(Seeing Voice)’ 등 수십 권의 언어학 서적을 읽었다. 또한 공부했다.

    이 모든 노력이 ‘바벨탑 이전의 인류는 어떻게 말했을까?’라는 하나의 모티프를 단편으로 그려내기 위한 것임을 아는 순간, 더는 할 말이 없어진다.

    작가정신, 작가주의라는 측면에서 이 정도의 노력을 보일 수 있는 작가는 저자가 아는 반경에선 결단코 없다.

    물론 이른바 순수문학 진영에서 문학적 아우라를 운운하며 여전히 경멸적 태도를 보일 순 있지만 사르트르의 ‘구토’에 조응하는, 그야말로 진저리나는 ‘권태’들을 담아냈다는 작가의 말이나 이 책의 전편에 어른거리는 자크 데리다의 그림자는 그런 상투적 평가를 일거에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래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기념비적이다.

    아울러 필자 개인적으로도 문학작품, 그것도 SF를 읽고 책장을 덮자마자 재독한 경험도 처음이었거니와 40대 초반에 이른 젊은 작가의 초기 작품집에서 철학적, 과학적 사색의 향기를 이렇게 강하게 맡아본 기억도 흔치 않으니, 이 책을 두고 ‘실로 경이롭다’고 평하는 것에 인색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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