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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시골의사’의 책장

‘악마의 전령’ 된 평범한 대중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마의 전령’ 된 평범한 대중

‘악마의 전령’  된 평범한 대중
한 권의 책에 대해 말하려면 생각의 가닥이 정돈돼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다음에는 주제가 ‘내 생각에 공명’하면서 나의 견해를 묻고, 거기서 생긴 파동이 되돌림이 되어 내 생각의 덩어리를 다시 다듬어내야 한다. 우리는 그때서야 그 결과를 두고 ‘이 책은 어떠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책에서 얻는 정보나 사상, 혹은 낭만이 저급하거나 효용가치가 없으면 그것에 대해 굳이 평할 필요가 없다. 책을 읽느라 소비한 시간에 덧붙여 가치 없는 일에 다시 힘을 쏟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견해나 주장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 해도 그것이 실체적인 ‘공명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책을 두고 ‘악서’ 혹은 ‘양서’ 같은 이분법적 재단을 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서평을 쓰는 기본 자세는 ‘양서와 악서’라는 단편적 구분이 아니라,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정서적 공감이나 사상적 공명, 혹은 격렬한 지적 흥분을 유발할 수 있는지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면에서 가끔 ‘삼박자’를 모두 갖춘 책을 소개할 때의 기쁨은 작은 떨림과 같다. 이런 책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이면서도 시대착오적이지 않고, 다시 읽어도 늘 새로운 지적 자극이 심장을 울렁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호 책을 소개하기 전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이유는 그 책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길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은 한나 아렌트의 대표작이다. 한나 아렌트는 스승인 하이데거나 야스퍼스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 됐지만, 그의 대표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우리 사회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야스퍼스의 ‘비극론·인간론’보다 훨씬 ‘보편적인’ 충격을 던졌다고 할 수 있다. 이유는 이 책이 이른바 ‘신념’이라 불리는 ‘평범한 악’에 대해 경종을 울렸고, 그것이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악과 폭력의 역사를 대중이 ‘자각’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은 유수의 서구 언론에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며 읽어야 할 책 목록을 꼽을 때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이 책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이 전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돼 재판받는 과정에 대한 르포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한 것은 일종의 참회나 반성이었다. 아무리 금수와 같은 일을 저지른 자라 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이 그가 한 짓을 ‘특별한 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히만의 반응은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수백만의 아이와 남녀를 상당한 열정과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법정은 경악했지만 그것은 “더 죽일 수 있었는데 아깝다”고 한 연쇄살인범 유모, 강모 같은 이들의 말과는 분명 같지만 다른 말이었다. 아이히만은 관용적인 언어, 이를테면 ‘조국’ ‘숭고한 명령’에 지배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렌트는 나중에 이를 가리켜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판단의 무능성이라는 3가지 무능을 갖고 있었다’고 규정했다.

다시 말해 유모, 강모, 심지어 히틀러 같은 이들은 ‘실체적 악’이지만, 히틀러의 신념을 추종한 아이히만은 ‘평범성(banality)’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좀더 나아간다면 비판적 분석 능력을 잃어버린 대중은 자칫하면 누구나 거대한 악의 전령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결국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에서 포착한 것은,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악마의 전령’  된 평범한 대중

박경철
의사

상투어와 관용어를 남발하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 아이히만이 무조건 명령에 따르며 악마가 되는 과정은 6·25전쟁 때 좌우익의 투쟁으로 수많은 목숨을 읽은 우리 역사에도 진중한 물음을 던진다. 아울러 지금 이 순간에도 한쪽이 다른 한쪽을 두고 ‘오른쪽’ ‘왼쪽’이라 손가락질하며 ‘엑세쿠탄스(처단)’의 저주를 쏟아내는 현실에서 이 책은 그들에게 ‘악의 평범성’이라고 일갈한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주간동아 2009.05.12 685호 (p8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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