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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역의 땅’서 32년간 46번 핵실험”

베일 벗는 핵실험 피해 … “주변 위구르인 19만명 급성사망, 129만명 방사능 노출 피해”

“中, ‘반역의 땅’서 32년간 46번 핵실험”

“中, ‘반역의 땅’서 32년간 46번 핵실험”

중국 핵실험 피해를 발표한 다카다 준 교수.

요즘 일본 원자력계에서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라이벌’ 중국의 핵실험 피해를 밝히는 문제가 화제다. 단초를 제공한 것은 3월18일 ‘실크로드의 죽음(Death on the Silk Road)’을 주제로 도쿄의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 심포지엄.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전문으로 보도하는 ‘희망의 소리(Sound Of Hope)’ 방송에 따르면 이 심포지엄을 주최한 측은 일본위구르협회다.

위구르족은 우리에겐 ‘돌궐’로 알려진 투르크족의 지파다. 6,7세기 돌궐은 고구려와 연합해 당나라와 싸웠으나 패했다. 그 때문에 고구려는 사라졌고, 돌궐은 소아시아로 이동해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과 섞이면서 오스만투르크를 거쳐 지금의 터키를 만들었다. 이때 이동하지 않고 실크로드가 있는 곳에 남은 돌궐족이 위구르다.

송-명 시절 위구르족은 한민족처럼 독립성을 유지했다. 그러다 1760년경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 건륭제의 공격을 받아 청나라의 속국이 됐다. 청나라는 위구르 지역을 ‘새로운 영토’라는 뜻으로 ‘신강(新疆)’으로 명명했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지금 이름인 ‘신강위구르자치구’다.

1911년 쑨원(孫文)은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그 영토 경계 안에 중화민국을 세웠다. 국공(國共) 내전으로 중국이 혼란하던 1932~33년과 1944~49년, 그리고 1954년 위구르인들은 ‘동쪽에 있는 투르크족의 땅’이라는 뜻으로 ‘동(東)투르키스탄’을 세워 독립했으나 바로 중국의 공격을 받아 무너졌다.

이런 역사가 있기에 위구르인은 티베트족 이상으로 반중 의식이 강하다. 현재 중국이 이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위구르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일원이었다’고 우기는 역사공작인 ‘서북공정’을 펼치고 있다. 이에 위구르인들은 독립을 위한 비밀결사체를 만들어 대(對)중국 테러로 맞서고 있다. 일본위구르협회도 위구르 독립을 바라는 단체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대 핵보유국의 최초 핵실험은 전부 대기 중 실험이었다. 지하실험을 하면 방사능 노출은 적지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반역의 기운이 서린 황무지에서 최초 핵실험을 했다.

1964년 10월16일 중국은 ‘596’이라는 암호명으로 신강위구르자치구 타클라마칸사막의 말라붙은 염호(鹽湖)인 롭누르(현지어로 ‘롭 호수’라는 뜻, 한자로는 羅布泊으로 적는다) 인근에서 첫 번째 핵실험을 한 후 1996년까지 모두 46번이나 핵실험을 반복했다. 그런데 이곳에도 유목민이 살고 있다.

방사능에 의한 질병은 자신도 모르게 걸린다. 중국이 펼친 핵실험 때문에 위구르인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발견한 이는 롭누르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신강위구르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 병원에서 근무하던 암 전문의 아니왈 트후티(45) 씨였다. 94년 트후티 씨는 신강 주민의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보다 30% 이상 높은 데 주목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서북공정 벌이는 곳 암 발병 많아

그리고 암뿐만 아니라 백혈병, 악성 림프종, 폐암의 비율도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롭누르에서 벌어진 핵실험과 관련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우루무치에서 성장한 트후티 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1973년, 사흘 동안 하늘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기이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학교 선생님은 “우주에서 온 모래”라고 설명했지만, 지금 트후티 씨는 핵실험으로 솟구쳤던 모래가 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핵실험장 인근에서 만난 유목 노인으로부터 “하늘이 태양보다 밝게 빛나더니 바로 지진이 일어났다, 난 즉시 기도를 드렸다”고 하는 증언을 들었다. 그는 노인이 본 것이 핵실험의 섬광과 인공지진이었다고 추정한다.

1998년 트후티 씨는 영국의 ‘채널4’ TV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롭누르 지역에 들어가, 핵실험장 인근 마을의 어린이들이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치료받지 못한다는 것을 폭로한 후 영국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트후티 씨의 조사 결과를 이번 심포지엄에서 인용한 이가 일본 삿포로의대 교수이자 일본 방사선방호센터 대표인 다카다 준(高田純) 교수다. 심포지엄에서 다카다 교수는 “일본이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는 아니다. 동투르키스탄도 피폭 지역이다. 32년간 46차례에 걸친 핵실험으로 주변에 사는 위구르인 19만명이 급성 사망하고, 도쿄 면적의 136배에 이르는 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돼 129만명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86년 구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화재사고보다 훨씬 큰 피해다”라고 폭로했다.

북한 핵실험 환경 파괴 추적은 ‘요원’

다카다 준 교수의 발표가 보도되자 일본에서는 중국의 비인도적인 핵실험을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실크로드 덕분에 각광받던 신강은 방사능을 맞을 수 있는 위험 지역이란 인식이 퍼졌다. 그리고 위구르인들이 방사능에 의한 질병을 고쳐줄 병원을 지어달라고 중국 정부에 요구한 것이 알려지자 일본 엘리트들은 “미국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던 일본의 반핵단체들이 왜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느냐”는 비난을 쏟아냈다.

2006년 10월9일 북한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핵실험은 ‘지하핵실험’이었다. 1968년 미국 영국 소련이 지하핵실험만 한다는 조약을 맺은 후 핵실험은 지하에서 하는 것이 대세가 됐는데, 북한도 이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하에서 핵실험을 해도 일부 방사능은 외부로 나온다. 그리고 인공지진에 의한 피해가 잇따른다.

4월5일 북한이 쏜 대포동은 1998년 북한이 쏜 대포동보다 ‘확실히’ 멀리 날아갔다. 이러한 북한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천명했다. 북한이 또다시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얻은 플루토늄으로 핵폭탄을 만들어 실험한다면, 그 위력은 2006년의 것보다 강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설프긴 하지만 북한의 과학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한국의 반핵단체들은 한국이 펼친 방폐장 건설에 대해서는 18년 동안 격렬히 반대했으나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국의 반핵단체들은 새터민(탈북자) 가운데에서 트후티 씨 같은 이를 찾아내 2006년 북한 핵실험이 끼친 환경 파괴를 추적, 고발할 수는 없을까.



주간동아 2009.05.12 685호 (p70~71)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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