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5

2009.05.12

개성공단서 짐 싸서 내려오나

북한, 전략적 위기관리 or 돈 많은 ‘파트너 물색’ 두 가지 시나리오 이달 중 판명

  • 신석호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북한학 박사 kyle@donga.com

    입력2009-05-08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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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공단서 짐 싸서 내려오나

    북한 개성공단 전경.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발사(4월5일)하고,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4월9일)를 마무리한 북한의 대외 행보가 수상하다. 남한에는 돌연 대화를 제의한 반면, 미국 등 국제사회에는 ‘제2차 핵실험’을 예고하는 등 공세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먼저 북한의 대남 공세가 이전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달라졌다. 4월16일 오후 북한은 남한에 갑자기 통지문을 보내 당국 간 접촉을 제의했다. 21일 개성공단에서 열린 접촉에서 북한은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에 제공했던 특혜 조항은 물론, 공단과 관련된 기존 계약을 재검토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두 가지 점에서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북한은 2008년 3월27일 개성공단에서 남측 당국자 11명을 사실상 추방한 이후 단절해온 남북 당국 간 접촉을 다시 시작했다. 군 라인과 6자회담 라인을 제외한 남북 당국 간 접촉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인 2008년 2월 이후 1년2개월 만이다. 또한 북한이 지난해부터 지속해온 대남 공세조치 이슈에 정치, 군사뿐 아니라 경제를 추가한 점도 특징이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한 달간 남한을 상대로 이렇다 할 공세를 취하지 않았다.

    반면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 북한의 공세는 계속 강화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4월14일(현지시간) 장거리 로켓발사를 비난하는 의장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자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내고 “우리의 자위적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면서 자체 경수로 건설 및 핵 폐연료봉 재처리를 예고했다. 25일에는 영변 핵시설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2차 핵실험” 공세 강도 높여



    북한은 이어 유엔 안보리가 북한 기업 3개를 제재 대상기관으로 지정하는 등 제재를 현실화하자, 4월29일 외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즉시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부득불 추가로 자위적 조치들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여기에는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 실험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첫 공정으로 핵연료 자체 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개발을 지체 없이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2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예고하고 우라늄 농축기술 개발을 시사한 초강도 위협인 것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통시적 관점에서 볼 때도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인다. 북한은 지난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돌고 다시 공개석상에 등장한 10월 이후 대남 공세를 단계적,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즉, 지난해 12월1일자로 개성공단 등 육로 통행을 제한적으로 차단했으며 올해 1, 2월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군사분계선(DMZ) 등에서 무력 도발로 위협을 가한 것. 3월9~20일에는 한미 연례 합동군사 연습인 ‘키 리졸브’ 등을 이유로 개성공단 통행을 세 차례나 전면 차단했다.

    미국과 관련해서는 2008년 집권 마지막 해의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핵 폐기 2단계 종료 문제를 놓고 지루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2009년 들어서는 새로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를 관망하다가 공세 수위를 높였다. 특히 ‘키 리졸브’ 훈련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한 미국의 요격 논의를 강도 높게 비난하면서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제재 논의가 ‘미제의 주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북관계를 X축, 북미관계를 Y축,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을 Z축으로 놓은 입체적 공간 개념으로 남북한 개성공단 접촉을 살펴보면 두 가지 상반된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좀 덜 나쁜 경우의 수는 ‘남북관계의 전략적 위기관리’ 시나리오다. 즉, 북한이 향후 대외적 긴장 조성의 주축을 북미관계로 옮기고, 남북관계는 당분간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속셈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힘을 아끼고 시간을 벌기 위해 남북 당국 간 접촉을 이어나가면서 남한에 대한 대화와 위협 전술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위기관리’는 과거 북한이 대미, 대남 협상에서 ‘벼랑 끝 전술’을 펴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협상 국면에 들어가기 직전에 사용하던 전술이다. 북한은 1993년 1차 핵 위기와 2002년 2차 핵 위기 때 북미관계가 파탄 직전에 이르자 카터 전 대통령 등 미국 측 요인을 초청하는 방법으로 대화를 모색했다. 2002년 6월29일 2차 연평해전을 유발한 뒤에도 전격 사과하는 방법으로 대화 국면을 조성했다.

    하지만 나쁜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4월21일 남측에 통보한 조치가 알려지자, 한 당국자는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남한 사람들이 스스로 짐을 싸게 하겠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 사람들이 세워놓은 시설에 돈 많고 남한 보수 집권세력의 대북정책에 영향받지 않는 다른 사업 파트너들을 들여와 돈벌이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해석했다. 정부도 북한의 통지내용이 개발업자와 입주기업이라는 두 부류의 한국 기업을 타깃으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대아산과 토지개발공사 등 개발업자들에 대해서는 기존 사업권 및 토지사용권의 수정을, 일반 입주기업들에는 임금 인상과 토지이용료 유예기간 단축 및 세금감면 등 특혜 조항의 수정을 요구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개발업자든 입주기업이든 ‘돈이 없으면 나가라’는 게 북한 측의 속내고,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수익구조나 재정 상태를 볼 때 현실적으로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남을 만한 기업이 없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이와 관련해 벌써부터 몇몇 외국계 기업들이 북한 측에 입질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억류 직원 의제와 철저히 분리

    개성공단서 짐 싸서 내려오나

    4월22일 방북한 정부대표단이 북한과 협상을 마치고 남북출입사무소를 걸어나오고 있다. 맨 앞이 김영탁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두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지는 5월부터 속개될 남북 추가 접촉에서 가시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4월21일 이후 북한 주장의 의도와 진의를 분석해왔으며, 5월 초 연휴가 지난 뒤 다시 만나자는 제의를 북한에 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추가 남북 접촉에서 북한의 개성공단 재검토 제의와 3월30일 개성공단 현지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A씨의 석방 등 신변처리 문제를 연계한다는 방침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4월28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억류 직원 문제가 앞으로 있을 대북 협상과 관련 있느냐”는 질문에 “협상에서 이 문제가 완전히 분리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지금 북한은 (억류 직원 문제와 관련된) 남북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모습을 보인다”면서 “우리 정부는 그 사람이 왜 한 달째 붙잡혀 있는지, 왜 조사를 받는지 전혀 설명을 들은 바 없으며 접견은 물론 변호인 조력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북한이 4월21일 접촉을 제의하면서 의제를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라고만 밝혀 수락 여부를 고심했지만, A씨 문제를 해결할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 때문에 개성공단행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두 의제를 철저히 분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이번 접촉의 북측 카운터파트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인사들은 “현대아산 직원 문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며 선을 분명히 그었다. 또한 한 당국자는 “본 접촉을 남측 기관인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할 것인지, 북측 총국에서 할 것인지를 놓고 승강이가 벌어지자 정부가 A씨 문제를 논의한다면 총국으로 건너갈 용의가 있다고 했지만 북측은 요지부동이었다”고 전했다. ‘협상의 귀재’로 알려진 북한은 향후 남측과의 협상에서도 A씨 문제를 레버리지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A씨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한 남측이 협상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데다, A씨 문제를 최대한 활용해 협상을 타결하고 A씨를 추방 또는 석방한 뒤 이를 국제사회에 여론 선전용으로 활용하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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