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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연아 날다, 세상이 숨죽이다

과학으로 본 ‘명품 점프’의 비밀 … 체공시간 1초 동안 완벽한 연기

연아 날다, 세상이 숨죽이다

새하얀 얼음판을 가로질러 그녀가 미끄러지듯 다가온다. 긴 팔과 다리를 우아하게 뻗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환상의 궤적을 그린다. 빙판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뒤 보내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에 지켜보는 이들은 넋이 나간다.

지난 3월30일 세계 피겨팬들의 눈과 귀는 열아홉 살 소녀의 몸짓에 사로잡혔다. 연기를 마친 뒤 이어진 관중의 기립박수. 그리고 몇 분 뒤 전광판에 새겨진 207.71이라는 숫자. 세계 신기록! 대한민국의 김연아 선수가 세계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빙판 위의 여신(女神)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김연아 선수 덕분에 어려운 피겨스케이팅 용어가 이제는 익숙해졌다. 스파이럴 시퀀스 같은 전문용어는 물론, 심사위원도 헷갈려 하는 잘못된 러츠 점프까지 구별해내는 사람도 많아졌다.

6가지 기술 도약력과 회전력이 관건

피겨스케이팅의 기술은 크게 점프, 스핀, 스텝 3가지로 이뤄진다. 점프는 스케이팅을 하다가 도약해 공중에서 회전을 한 뒤 착지하는 기술이고, 스핀은 다양한 자세를 유지하며 제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기술이다. 스텝은 전체 연기의 동선을 만드는 기술로 선수의 창의적인 연기가 핵심이다.



이 가운데 피겨스케이팅 기술의 꽃은 점프다. 점프는 도약할 때 에지(스케이트 날)를 사용하는지, 토(날 앞부분의 톱니)를 사용하는지에 그리고 날의 안쪽을 사용하는지 바깥쪽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루프, 살코, 악셀, 토루프, 플립, 러츠 6가지로 나눈다.

점프 기술의 점수는 6가지 점프를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해서 하는지, 그리고 공중에서 회전을 얼마나 많이 정확히 하는지, 얼마나 안정적으로 착지를 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점프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체육과학연구원 이순호 박사는 “점프 기술의 핵심은 도약력과 회전력”이라고 말했다. 공중에서 회전을 많이 하려면 일단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하지만 체공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1초 남짓. 그 다음은 회전이다.

도약을 할 때 에지나 토로 마찰을 일으켜 토크(Torque·물체를 회전시키는 힘)를 얻는데, 이때 회전관성을 크게 얻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많이 벌리는 것이 유리하다. 토크는 회전시키려는 물체의 회전축과 먼 곳에서 힘을 줄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몸이 돌기 시작한 뒤에는 재빨리 팔과 다리를 몸 쪽으로 최대한 밀착시켜야 한다. 회전하는 물체는 외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회전반지름이 작을수록 회전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착지할 때는 다시 팔과 다리를 펼쳐 회전속도를 줄이는 동시에 몸의 중심을 잡는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 정재은 스포츠심리학 박사는 “점프한 뒤 회전이 부족하거나 착지할 때 넘어지는 경우 대부분은 도약한 뒤 팔을 몸에 밀착시키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며 “안정된 점프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에지가 바닥에서 떨어지기 직전 팔을 가장 많이 벌렸다가, 떨어진 순간 팔을 몸 쪽으로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팔을 먼저 접으면 토크를 충분히 얻지 못하거나, 프리로테이션(Pre-Rotation·점프하기 전에 미리 회전하는 반칙의 일종)으로 감점을 당한다. 또 반대로 팔을 지나치게 늦게 접으면 그 사이 몸은 회전을 시작해 팔에 걸리는 원심력이 커져 팔을 접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목표한 회전 수를 채우지 못한 채 착지하면 손과 다리가 늦게 펴져 중심을 잃고 넘어지기 쉽다.

“김연아는 이번 경기 내내 압도적인 연기를 펼쳤죠. 그녀가 빙판 위에 서면 눈을 뗄 수가 없어요. 다른 선수들을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요.”

세계선수권 5관왕 출신인 미셸 콴이 미국 NBC 방송의 보조해설자로 나서서 밝힌 김연아 선수의 연기에 대한 평이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김 선수의 연기가 다른 선수들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사실 전문가가 아닌 보통사람들 눈에도 김연아 선수의 연기는 다른 선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정 박사는 “김 선수는 얼굴 표정이나 몸의 표현력도 뛰어나지만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기를 한다”면서 “김 선수가 다른 선수와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은 스피드”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선수는 점프 기술을 시도하기 위해 스텝을 밟다가 도약하기 직전 속도를 줄이지만, 김 선수는 달려오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도약을 한다. 따라서 연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며, 또 공중에서 날아 이동하는 비거리가 길어 연기의 스케일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김 선수만의 두둑한 배짱도 빼놓을 수 없다.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운동선수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신정택 박사는 “피겨 선수 대부분이 도약하기 직전 속도를 늦추는 이유는 착지할 때 넘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김 선수는 고난도 기술을 무리해서 시도하는 대신 자신이 가장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안정적으로 선보이기 때문에 늘 자신감이 넘친다”고 설명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눈물의 훈련

김연아 선수가 대회에 참가하기 전 평소 자신 없어하던 ‘트리플 루프’(3회전 점프, 기본 점수 5.0점) 기술을 과감히 빼버리고, ‘더블 악셀’(2회전 반 점프, 기본 3.5점) 기술로 대체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기본 점수는 낮지만 표현 점수 등에서 가산점을 받아 손해가 없었다는 뜻이다.

반면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는 프리 부문에서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 기본 8.2점)을 두 번이나 시도하는 강수를 뒀지만, 엉덩방아를 찧은 탓에 김연아 선수와의 점수 차가 20점 가까이 벌어졌다.

김연아 선수는 어떻게 그런 높은 수준의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걸까. 타고난 심리적 안정감과 코치의 뛰어난 기술, 안무 구성 때문에? 아니면 물리공부를 열심히 해서 점프의 원리를 알고 훈련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여성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에 몸의 중심이 급격하게 변하는 과정을 겪는데, 이때를 잘 넘기지 못해 선수의 꿈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 박사는 “모든 운동선수는 반복된 훈련을 통해 ‘몸으로’ 배운다”고 설명했다. 몸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거나, 회전할 때 몸의 중심을 회전축상에 유지시키는 일을 그때그때 ‘생각’해서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김연아 선수가 기술적으로 빼어나면서 예술적으로도 훌륭한 이유는 피겨스케이팅을 완벽하게 몸으로 익혔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에는 과감하게 점프를 시도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서 또 뛰는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이유는 그동안의 훈련과정이 눈물 속에 아롱져 보였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9.04.21 682호 (p62~63)

  • 안형준 과학칼럼니스트 hjoon.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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