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2

2009.04.21

“강남 한복판서 사교육 퇴출시키겠다”

이경복 서울고 교장 “‘방과후 학교’로 학원 갈 아이들에게 질 좋은 수업”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9-04-16 13: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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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한복판서 사교육 퇴출시키겠다”

    봄꽃이 만개한 서울고 교정.

    서울 서초구 서초3동. ‘사교육 1번지’로 통하는 강남 한복판 서울고등학교(이하 서울고)에서 의미 있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명품 공교육’을 육성해 사교육 바람을 잠재우겠다는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맞춤형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그것. 5월1일 막을 올리는 이 기획의 중심에는 지난 3월 서울고에 부임한 이경복(61) 교장이 있다.

    이 교장은 2007년부터 지난 2월까지 서울 강남교육청 교육장으로 재임하면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거점학교’ 프로그램을 만든 인물. 관내 중학교 가운데 몇 곳을 ‘거점학교’로 지정한 뒤 현직 교사, 대학 강사, 원어민 등 폭넓은 강사진이 영어·수학 강의를 맡도록 하는 ‘학원식 공교육’ 시스템을 개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학생과 학부모가 공교육에 만족하게 만들어 장기적으로 사교육을 퇴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이 교장은 서울고에서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서울 강남교육청 교육장으로 일하다 학교 현장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소감은.

    “교육청에서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제시하는 일을 했다. 이제는 그동안 만들어온 정책을 현장에서 펼 수 있게 돼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지금까지 교육부 학교정책과장·교육현장지원단장, 서울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서울 강남교육청 교육장 등 여러 자리를 거쳐왔는데, 이곳에서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그간의 성과가 재평가될 것 같다. 현장에서 잘하는 사람이 진정한 교육행정가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하려 한다.”

    교육장 재임 때 공교육 정상화에 각별한 관심을 쏟은 것으로 안다. 현장에 와보니 상황이 어떤가.



    “사교육 열풍이 생각보다 더 거세다. 무서울 정도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했는데, 전체 학생 중 85%가 한 가지 이상의 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이들이 한 달에 지출하는 사교육비 총액은 13억원 정도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우리 학교에서만 1년에 150억원 이상이 사교육 시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걸 그냥 두면 가정 경제가 파탄에 이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은 그동안 계속 마련돼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게 사실이다.

    “서울 강남교육청 교육장 재임 시절, 방과후 거점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공교육 정상화의 희망을 봤다. 학생들에게 학원의 절반 이하 수강료만 받고 질 좋은 수업을 제공하자 수강생 만족도가 82%에 이르렀다. 수강생이 1년 만에 3배 넘게 늘었고, 재수강률도 90%에 달했다. 당시 관내 중학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 프로그램을 우리 학교에서 다시 실시하려 한다.”

    “강남 한복판서 사교육 퇴출시키겠다”
    서울고의 ‘방과후 학교’는 어떻게 진행되나.

    “정규 수업이 끝난 뒤인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학교 안에 학원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쉽다.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에 학교에서 질 좋은 수업을 듣도록 하는 것이다. 1·2학년을 대상으로 영어 수학 국어 논술 사회탐구 과학탐구 등의 강의를 개설하되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도록 반배치는 무학년제로 한다. 강사는 우리 학교 교사가 절반, 다른 학교 교사, 대학 강사, 원어민 강사, 온라인 학원 강사 등이 나머지 절반을 차지한다. 5월1일 시작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강남의 막강한 사교육 시장에 둘러싸인 학생들이 과연 ‘방과후 학교’를 선택할 것으로 보나.

    “‘방과후 학교’만의 강점이 많다. 먼저 수강료가 월 6만원으로 일반 학원의 30~40% 수준이다. 한 반 수강인원을 10~15명으로 제한해 맞춤형 수업도 가능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수준과 일정에 딱 맞는 수업을 선택할 수 있게 강의를 세분화하다 보니 강좌 수가 380여 개에 이른다. 일반 학원처럼 주말반, 종합 패키지반, 단과반이 다 있다. 현직 교사가 주축이 된 강사들의 수준도 사설학원에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 자신한다. 학원 못지않은 학생관리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정년퇴임한 교원 가운데서 출결관리 등 생활지도를 전담할 인력을 뽑는다. 모든 강사는 학부모가 원할 때마다 1대 1 성적 상담도 해준다. 학원 이상의 시스템에서 학원 이상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방과후 학교’의 목표다.”

    일반 학교에서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면 자금 마련이나 운영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을 듯한데.

    “서울시 교육청의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시범사업을 신청해 최종 심사를 받고 있다.예산 지원을 받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동문회에서도 학교 발전 차원에서 기금을 지원한다. 이 자금으로 프로그램 운영비는 충당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이 내는 수강료는 전액 강사에게 지급한다. 두 강좌를 맡으면 월 150만원 안팎의 급여를 추가로 받게 되므로, 교사들에게도 적당한 보상이 되리라 생각한다.”

    ‘방과후 학교’ 외에 더 준비하는 공교육 정상화 프로그램이 있나.

    “가장 중요한 건 정규 교육과정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학생 맞춤식 교육과정을 운영하려 한다. 현행 수준별 학습을 더 세분화하겠다는 의미다. 지금은 영어·수학의 경우 2학급 단위로 ‘상-중-하’ 3개 반을 만들어 수업하는데, 2학기부터는 3학급을 한 단위로 묶어 ‘상-중-중-하’ 4개 반을 만들 생각이다. ‘중’ 클래스도 두 등급으로 나눈다. 이 경우 수업 내용을 좀더 잘게 나눌 수 있어 학생들의 수준에 딱 맞는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또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자율학습 분위기를 고취하려 한다. 교내에 ‘인왕관’이라는 자율학습실을 만들어 희망자는 누구나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이 교장도 서울고 동문인 것으로 안다. 8년 전 이곳에서 교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인연이 깊은 학교의 교장직을 맡아 각오가 남다를 듯하다.

    “41년 전 서울고를 졸업했는데, 당시와 지금은 학교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과학고, 외국어고 등 특목고 열풍이 불면서 일반계고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기 때문인 듯하다.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를 학생, 학부모의 믿음과 사랑을 받는 공간으로 부활시킬 것인지 많이 고민하고 있다. 공교육 활성화 노력을 통해 사람들이 서울고를 보면서 ‘공립학교도 이렇게 훌륭하고 멋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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