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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심영섭의 ‘시네마 천국’

老부부가 그린 찬란한 봄의 슬픔

도리스 되리 감독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老부부가 그린 찬란한 봄의 슬픔

老부부가 그린 찬란한 봄의 슬픔

만발한 벚꽃 아래서 부토 춤을 배우는 루디 역의 엘마 베퍼(왼쪽).

하나미(花見). 꽃구경(‘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원제목). 꽃. 꽃보다 남자. 일본어로 꽃은 하나. 이와이 순지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하나비’. 하나비(花火)의 원뜻은 ‘불꽃놀이’. 고레다 히로카즈의 영화 ‘하나’….

일본 문화의 자장(磁場) 안에서 꽃은 한순간에 스러지는 인생의 비유이자 덧없음, 무상함, 그러나 찬란한 인생의 절정을 은유하는 으뜸의 상징이다. 도리스 되리 감독의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한 독일 여성감독이 세상의 끝, 일본까지 가서 묻고 싶은 상실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자, 가장 일본적인 것들에서 발견하는 꽃놀이, 그림자놀이나 다름없다.

트루디는 의사에게서 남편 루디가 얼마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트루디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함께 여행도 할 겸 베를린에 사는 자식들을 보러 가자며 집을 나선다. 하지만 자식들과의 만남에서 남는 것은 불화와 서운함뿐.

이번엔 루디가 바다를 보고 싶다는 아내 트루디를 위해 북해를 건너간다. 그곳에서 부부를 기다린 건 트루디의 죽음이었다. 루디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를 기억하기 위해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부토 춤(그림자 춤)을 보러 평소 꿈꾸던 도쿄로 향한다.

영화 전반부는 오즈 야스지로의 걸작 ‘동경 이야기’에 대한 완벽한 독일 번역판이라고 할 만하다.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오마주(존경)로 감독은 대사까지도 판에 박은 듯, ‘동경 이야기’가 그려낸 부모 자식 간의 원형적 갈등을 형상화한다. 자식들은 바쁘다고 핑계대며 서로에게 부모 봉양의 책임을 떠넘긴다. 세대 간의 갈등은 전형적이고, 트루디와 루디는 둘 다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하며 가장 가까운 자식들과도 소통하지 못한다. 이들이 정신적 감화를 받는 곳은 독일이 아니라 일본이다. 자식들보다 딸의 레즈비언 파트너나 일본에서 우연히 만난 노숙 소녀들이 훨씬 인간적이다.



실제로 되리 감독은 남편과 갑작스럽게 사별한 아픔을 지니고 이 작품을 찍었다. 그래서인지 루디가 느끼는 사별의 아픔과 고독감,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몸부림은 누가 봐도 콧등이 시큰할 만큼 절절하고 아련하다.

죽은 아내의 옷을 입고 후지산을 찾고, 죽은 아내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잠을 자며, ‘당신은 어디 있는 거냐?’며 사방에서 아내를 찾으러 다니는 이 남자. 감독은 흩날리는 벚꽃, 길가에 묶어둔 손수건, 육신이 빠져나간 허수아비의 옷가지, 구름 속에 감춰졌다 얼굴을 내미는 후지산 등 사라지고 비고 쇠락하고 조락하는 만물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보이지 않는 생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그러고는 마침내 루디가 후지산 정상에서 아내의 옷을 입고 가부키 화장을 한 뒤 부토 춤을 출 때 그 너울거리는 그림자 안에서 화룡점정의 탐미적 미학은 만발한다. 비록 트루디는 평생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 마음으로만 환상적 탈출구인 그림자 춤을 꿈꾸며 허깨비처럼 살아왔지만, 그러한 아내의 꿈을 심장에 담은 남편 루디에 의해 꿈의 반쪽이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마지막 상징은 ‘짝패, 쌍’이다. 서로 어깨를 비비는 양배추말이 두 조각, 푸른 보자기를 돌돌 말아 얼굴을 맞댄 소녀와 노인, 그토록 정겨워 보이는 한 쌍의 신발. 그 모든 것에서 영화는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거부하는 사랑의 맨 얼굴을 길어 올린다.

물론 감독이 꼭 일본이란 타국에 가서야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본인들조차 가질 수 없는 고전적인 원형들에서 찾아내는 감독의 찬탄할 만한 시각적 이미지와 충만한 감정만큼은 새봄, 들뜬 당신의 가슴에 아련한 꽃향기를 뿌리기에 충분하다. 그 감정은 인간의 삶이 한순간에 시들지라도 절대 시들 수 없는, 그 누군가가 내 삶을 채워줄 때만 개화하는 찬란한 봄의 슬픔이다.



주간동아 2009.04.07 680호 (p86~86)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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