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7

2009.03.17

아~ 이 몹쓸 사이버 마약 ‘아이도저’

의사 이진한 기자 체험 … “환각효과 전무” 의학적 검증 안 돼 뇌자극 부작용 우려

  • 이진한 동아일보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입력2009-03-12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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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 몹쓸 사이버 마약 ‘아이도저’
    과연 인간은 뇌를 자극해 심리상태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 최근 인터넷에선 ‘사이버 마약’이라 불리는 ‘아이도저’가 입소문을 타고 누리꾼(네티즌)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사이버 마약은 특정 주파수를 MP3 파일로 담아 들으면 뇌파를 자극해 마약을 흡입한 것과 같은 환각을 느끼게 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유명 커뮤니티와 포털사이트에는 아이도저를 사용한 뒤 효과를 보았다는 누리꾼들의 자극적인 ‘이용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아이도저는 원래 미국에서 개발된 뇌파 조절 음원으로 미국에선 CD나 MP3로 유통된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학습용 보조기구와 비슷한 형태인데,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집중해서 듣도록 권하고 있다. 아이도저는 몸의 이완이나 휴식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8∼12Hz)와 지각과 꿈의 경계상태로 불리는 세타파(4∼8Hz), 긴장 흥분 스트레스 등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베타파(13∼30Hz), 깊은 수면 상태에서 생기는 델타파(1~4Hz) 등 각 주파수의 특성을 이용해 사실상 환각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원리. 즉 뇌파를 이용해 인간의 심리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임상결과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언뜻 보기엔 학습 보조기구 ‘엠씨스퀘어’와 비슷하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나온 논문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선 차이가 크다. 엠씨스퀘어는 1950년대 시작된 뇌파 동조이론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백색소음’ 심심하고 잠만 쏟아져

    그렇다면 아이도저는 개발자들의 주장이나 누리꾼들의 체험담처럼 정말 마약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일까. 이에 기자는 인터넷에 떠도는 아이도저를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아이도저를 다운 받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들어가니 무료 다운 사이트(사실은 유료 사이트)가 누리꾼을 상대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무료라 해서 회원으로 가입했더니 정작 다운을 받으려 하자 돈을 내라고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대금을 지급하니 아이도저 관련 내용 30여 개가 떴다.



    아이도저 파일은 2기가바이트가 넘었다. 파일을 열어보니 항불안성(Antianxiety), 항우울성(Antidepressant), 처방성(Prescription), 정화(Pure), 마약성(Recreational), 진정제(Sedative), 성적 흥분(Sexual), 수면(Sleep), 스테로이드(Steroid), 각성제(Stimulant) 등 10개 세부 항목으로 나뉜 73개의 음원 파일이 들어 있었다. 모두 MP3 파일로 제작돼 있어 듣기가 편리했다.

    10개 항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리화나, 헤로인, 코카인, 환각유발제 같은 마약류 29가지와 유체이탈, 자각몽, 수면유도 등의 수면장애를 조절하는 음원, 그리고 진통제, 각성제, 항우울제, 불안방지 등의 정신과 치료용 음원도 있었다. 또 명상, 오르가슴 촉진, 조루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8가지 음원과 심지어 ‘성인용’ 뇌파 조정 음원도 있었다. 이 음원 파일의 길이는 5~45분으로 다양했다. 대개는 20분 정도.

    이 중 사이버 마약에 해당하면서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진 ‘코카인’ 파일을 들어보기로 했다. 실제 코카인을 복용하면 현기증, 구토, 혼수(昏睡)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며 체내에 강한 흥분을 줌으로써 에너지의 일시적 폭발과 자신감을 유발한다. 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압이 급상승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아~ 이 몹쓸 사이버 마약 ‘아이도저’

    ◀◀아이도저를 듣기 전 뇌파검사를 하는 기자. ◀아이도저 다운로드 사이트.

    과연 기자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음파만으로도 코카인을 먹었을 때와 같은 신체적, 심리적 반응이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찾아나섰다. 수면뇌파를 유도해 수면장애를 치료하는(뉴로피드백)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원장,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아동을 뉴로피드백 방식으로 치료하는 BFC 학습클리닉의 배지수 원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모두 뇌파에 깊은 관심을 가진 신경정신과 의사들로 기자의 ‘객관적’ 시도를 흔쾌히 허락했다.

    실험은 아이도저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편안한 자세에서 헤드폰으로 관련 파일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우선 뇌에 준비를 알리는 ‘reset’이라는 MP3 파일을 6분 정도 들은 뒤 ‘코카인’ 파일을 30분 정도 들었다. 각 파일을 들은 뒤 바로 뇌파를 측정해 아이도저가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봤다. reset 음을 들어보니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전파 소음에 ‘웅웅웅’ 하는 저음의 기계소리가 계속 나왔다. 5분쯤 지나자 약간 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디오 소음이 섞인 것은 ‘백색소음’ 효과를 노렸기 때문. ‘웅웅’ 소리는 사람에게 더욱 집중해서 듣게끔 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백색소음’이라 한다.

    원리와 효과는 의문투성이

    reset 음을 끝낸 뒤 뇌파를 측정하고 이어 ‘코카인’을 들었는데, ‘웅웅’ 소리가 커졌다 작아지는 게 반복되더니 ‘잉잉’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렸다. 30여 분간 이 소리에 익숙해지자 지루해졌고, 나중에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코카인 복용 시 느낄 수 있다는 환각을 기대했지만 가슴이 벌렁벌렁한다거나, 흥분해서 숨을 제대로 못 쉰다거나, 혈압이 상승하는 등의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중간에 지겨웠는지 잠깐 졸기도 했다. 30분이 지난 뒤 5분 정도 다시 뇌파를 찍었다. 사이버 마약이라 불리는 ‘코카인’을 다 들었지만 기자의 뇌파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뇌파를 측정하고 비교에 나선 배 원장은 “일반적으로 코카인에 중독된 사람은 세타파, 알파파, 베타파 등 3가지 뇌파가 뇌의 앞부분인 전두엽 부근에서 올라가는 게 확인된다. 하지만 기자에게서 측정된 뇌파는 베타파만 약간 올라갔는데 그것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 원장은 “뇌파를 이용하는 뉴로피드백 치료의 경우 치료자가 뇌파를 실시간 관찰하면서 뇌파의 변화를 목표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면서 “하지만 사이버 마약 같은 방식은 체험자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상태의 변화에 적절하게 반응도 해주지 않으면서 무작위로 특정 뇌파를 들려주는 것이므로 항불안이나 항우울처럼 어떤 도움을 주는 뇌파 자극이 있다 해도 분명한 효과를 보인다고 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면 효과를 봤다는 누리꾼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물론 최면에 잘 걸리는 사람처럼 아이도저의 효과를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의 경우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또 그렇게 되기를 믿는 사람에게 실제 생기는 플라시보 효과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도저는 의학적 증명을 거친 게 아니라 누리꾼들의 주관적 경험과 입소문 등으로 퍼지고 있기에 우려스럽다. 이들은 자신의 일과성 체험을 과장되게 전달한다.

    소리를 이용한 이러한 자극이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뇌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특히 뇌가 성숙하지 않았거나 한창 발달할 나이에 있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장기적으로 뇌파 소리에 노출될 경우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뇌파 관련 업체의 한 관계자는 “아이도저는 마약과 섹스라는 금기를 건드림으로써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마케팅 효과를 노린 것으로 그 원리와 효과는 의문투성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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