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7

2009.03.17

사흘간 저질 쇼, 국민은 뿔났다

2월 임시국회 쟁점 법안 처리 무산 … 與 우왕좌왕, 野 합의 번복 “세비가 아까워”

  • 조수진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jin0619@donga.com

    입력2009-03-12 10:4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흘간 저질 쇼, 국민은 뿔났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월3일 오후 11시25분, 시한 30여 분을 남기고 여야 의원들이 국회 단상으로 몰려들어 몸싸움을 하고 있다.

    최대 쟁점인 미디어 관계법 처리 문제를 둘러싼 여야 협상은 한 편의 ‘저질’드라마였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둔 3월1일 오후 3시부터 협상이 타결된 2일 오후 4시까지 여야는 25시간 동안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것은 3월1일 오후 3시. 양당 대표는 가시 돋친 말부터 꺼냈다. 박 대표는 “신곡이 나와야 한다. 항상 부르는 노래가 나와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며 날을 세웠다. 미디어 관계법 중 저작권법과 디지털전환특별법을 제외한 4개 법안을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논의한 뒤 6개월 이내에 처리하자는 민주당의 제안을 ‘항상 부르는 노래’라며 거부한 것. 그러자 정 대표는 “민주당은 합의문 실천에 모범생인 데 반해 한나라당은 약속을 깨기만 했다”며 1월6일 여야 합의문 문구와 합의문에 언급된 법안들의 국회 처리 진행 상황을 담은 10여 쪽 분량의 자료를 들이댔다. 두 사람은 한 시간 반 동안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오후 6시와 9시에 연쇄 회동했지만 신경전만 벌이다 결국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협상 결렬 … 연좌농성 … 멱살잡이

    국회 본청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에 휩싸였다. 오후 8시 한나라당 의원 100여 명은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을 기습 점거한 뒤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촉구하는 연좌농성에 돌입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직권상정을 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말라”며 독려했다. 이에 맞서 민주당의 보좌관 100여 명도 국회 경위들과의 몸싸움 끝에 출입이 통제된 본청에 진입, 임전태세를 갖췄다.

    민주당 보좌관들과 당직자들이 “쇼하지 말라”며 한나라당 측을 자극하자 상황은 멱살잡이로 번졌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왼쪽 팔이 꺾이고 목이 졸린 뒤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졌고, 서갑원 의원은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에게 떠밀려 촬영용 사다리에 부딪혀 허리를 다쳤다.



    김 의장은 밤 10시30분 한나라당 홍준표, 민주당 원혜영, ‘선진과 창조의 모임’ 문국현 원내대표를 국회의장실로 불러 중재를 시도했다. 김 의장은 갈등이 작은 저작권법과 디지털전환특별법을 먼저 2월 국회에서 상임위에 상정한 뒤 4월 국회에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쟁점이 되는 방송법, 신문법, IPTV법은 사회적 논의기구를 꾸려 4개월간 논의한 뒤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자는 중재안을 내놨다. 민주당의 견해가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이다.

    회동이 3시간 동안 계속되면서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중재안에 서명했다. 여야는 접점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3월2일 새벽 4시 한나라당의 긴급의총이 시작됐다. 김 의장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다. 조윤선 대변인은 “중재안을 받아들이자는 소수 의견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김 의장이 제시한 중재안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사흘간 저질 쇼, 국민은 뿔났다

    하루 전날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여야 대표들. 하루 만에 여야 합의는 깨졌다.

    오전 10시, 한나라당 지도부는 김 의장이 머물던 서울 강남의 한 호텔을 찾아 직권상정을 해달라고 압박했다. 의장 중재안을 최종 추인할 예정이던 오전 10시 여야 회담은 한나라당의 거부로 무산됐다. 오전 11시에는 말을 아껴오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농성 중인 소속 의원들을 방문해 “야당이 시기를 못 박는 것 정도는 수용해야 한다”며 지도부에 힘을 보탰다. 민주당은 김 의장의 중재안 수용을 촉구했지만 한나라당 홍 원내대표는 “김 의장에게 직권상정 목록을 전달했다”며 거부했다.

    직권상정을 주저하던 김 의장도 ‘초강경 모드’로 돌아섰다. 오후 1시40분 김 의장은 방송법, 신문법 등 15개 쟁점법안의 심사시한을 오후 3시로 지정했다. 오후 2시로 예정된 본회의는 오후 4시로 미뤄졌다. 직권상정 절차를 밟은 것이다. 한나라당은 환호했고, 민주당은 당황했다. “김 의장에게 완벽하게 배신당했다” “12시간 만에 자신이 제안한 중재안을 뒤집다니, 무슨 비리 혐의가 포착돼 협박당한 것 아니냐” 등 김 의장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말들이 쏟아졌다. 정면충돌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오후 2시20분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관 100여 명이 국회 본관으로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은 방패를 앞세워 현관을 막아섰다. 민주당 보좌관들은 “우리가 화염병이라도 던졌냐” “이거 놔라”며 심하게 저항했다. 경찰이 비켜서지 않자 현관 부근 민주당 대표실 등 민주당 측 사무실의 창문을 넘기 시작했다.

    미디어 관계법 100일 후 처리

    오후 2시30분 민주당 지도부는 미디어 관계법을 4개월간 사회적 논의기구에서 논의한 뒤 표결 처리하겠다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수적 열세를 감안한 후퇴였다. 1월 ‘입법전쟁’ 때처럼 실력 저지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황은 또다시 급반전됐다.

    민주당 원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홍 원내대표를 찾아가 “논의 기간을 100일로 줄이겠다”는 재수정안을 전달했다. 오후 3시10분 양당 대표가 재회동했다. 최종 협상에 착수한 지 25시간 만인 오후 3시40분 양당은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지난 연말부터 계속돼온 ‘입법전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월3일 여야는 주요 쟁점법안을 처리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불과 하루 전에 약속한 ‘합의’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오후 2시 열릴 예정이던 본회의는 오후 5시로, 다시 오후 7시로 미뤄졌다. 직권상정을 강행해서라도 쟁점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던 한나라당이 해외 등지로 나간 30여 명의 의원들 ‘덕에’ 의결 정족수(150명)를 채우지 못한 것. 오후 9시에야 간신히 본회의가 열렸지만 야당 의원들의 잇따른 반대 토론 신청, 김 의장 대신 의사봉을 잡은 한나라당 출신 이윤성 부의장의 미숙한 의사 진행 등으로 자정을 넘겨버렸다. 미디어 관계법 등의 처리는 물거품이 됐다.

    “본회의 법안처리 실패 사건은 원내 지도부와 국회의장단의 무능, 무책임을 웅변한 표본이다. 경기 종료 5분 전 자살골로 마감하는 축구경기를 보는 듯했다.”(한나라당 조해진 의원)

    4월 임시국회가 예정돼 있고 미디어 관계법 등 쟁점법안은 100일 후인 6월에 처리하기로 했지만, 상반기 정치 일정을 통해 본 국회 상황은 순탄치 않을 듯하다. 당장 4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처리 문제를 놓고 극심한 진통이 예상된다. 미디어 관계법이 다른 현안과 연계될 가능성도 있다. 4·29 재선거에서 여당이 좋지 않은 성적을 낼 경우 여당의 법안 처리 동력은 약해질 게 뻔하다.

    지금까지 여야 협상을 이끈 한나라당 홍 원내대표, 민주당 원 원내대표의 임기가 5월 중에 끝난다는 점도 변수다. 만일 여야에 강성 원내 지도부가 등장할 경우 여야는 사사건건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래저래 국회는 충돌을 빚을 공산이 커 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