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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03

예쁘고 쿨한 ‘그놈 얼굴’ 환장하거나 환상이거나

“꽃미남이면 모든 것 용서” … 그 지독한 편애 심리 분석

예쁘고 쿨한 ‘그놈 얼굴’ 환장하거나 환상이거나

예쁘고 쿨한 ‘그놈 얼굴’ 환장하거나 환상이거나
백마 탄 왕자 동경? ‘찌질한’ 현실에 저항!

외모가 아니라 ‘돈+능력’ 캐릭터에 열광


연쇄살인범이 잡히고 나서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저렇게 곱상하게 생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죠?”

잘생긴 남자는 마음도 행실도 꽃 같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최근에 부각된 ‘꽃남’의 대중심리를 연쇄살인범과 연결한 것이 엉뚱한 생각일까. 이 우연한 사건은 젊은 여성들이 꽃남에게 열광하는 심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한국 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꽃남에게 열광하는 현상은 과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 정상적이라고 믿던 것이 더는 당연하지 않고 정상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직 그것이 정확하게 뭔지 알 수 없기에 ‘꽃남 신드롬’ 정도로 막연히 보는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하지만 확실한 포인트는 요즘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경구를 제치고 우위에 서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곱상하게 생긴 남자를 오히려 비하하는 투로 봐온 게 사실. ‘기생오라비 같다’ ‘꼴만 번지르르하다’ 같은 말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일반적 남성의 이미지가 ‘꽃 같은 남자’가 아니라 ‘꽃 꺾는 남자’였음을 알려준다.

만화 ‘캔디’의 테리우스 같은 존재

그러나 바야흐로 ‘꽃 같은 남자’가 대접받는 시대가 왔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된다. 한때 쉬쉬하던 성형수술도 자랑거리가 되고, 자기 얼굴을 가꾸지 않는 남자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인간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남자를 보는 여자의 기준이 달라진 것일까. 꽃 같은 남자 선호현상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을 택하고, 특정 캐릭터나 이미지를 가진 남성을 선호하는 사회 트렌드가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여성이 소비를 지배하는 시대에 특정 이미지를 가진 남성 캐릭터가 여성이 즐겨 소비하고 선호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어떤 캐릭터의 남성이기에 여성이 그처럼 빠져드는 것일까.

꽃남은 여자처럼 예쁜 외모를 가진 남자를 말한다. 여기에 돈과 능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 산업화 시대에는 마초 같은 남자라 해도 돈과 능력만 있으면 나쁘지 않은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여성들이 선호하는 이미지 중에는 여성성이 더 높다. 왜 그런가. 이것을 성격 특성으로 분류해보면 ‘로맨티스트’ 유형이 가진 이미지다. 순정만화 속의 소녀 같은 남자, 만화 ‘캔디’의 테리우스 같은 남자가 바로 그다.

사람들은 외모만으로 꽃남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꽃남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이들의 성격과 행동 특성 때문이다. 이들은 좀 순진한 느낌을 주며 상당히 감성적이고 생각과 걱정이 많은 듯하다. 노련해 보이지는 않으며 정서적으로 약간 불안정해 보인다. 주위를 의식하며 다른 사람의 반응에 민감하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있다. 그렇지만 똑똑하고 예술적 감성도 풍부하다. 나름 자존감도 높지만 그것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는다. 고생을 별로 해보지 않았는지 공주나 왕자 같은 삶을 지향하며 사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이나 사회적 역할에 따른 일에 매달리는 생활을 하지 않으려 든다.

뿐만 아니라 다소 동성애적인 느낌도 준다. 눈물도 많지만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편이다.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예술가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위계질서가 있는 곳을 힘들어하며 부드러운 친구 관계를 선호한다. 어디에 몰두해서 지속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멜랑콜리한 생각, 우수에 젖은 모습이 유난히 어울린다. 이들에 대한 평가는 부모의 배경과 교육 수준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세련되고 전문적인 모습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핵심은 여전히 다른 곳에 있다.

이들은 생활 조건이 좋은(좋은 회사 등) 상황일 때는 조직생활을 하기도 하지만, 현실이 아니라 주로 TV 드라마에서나 부각되는 존재다. 드라마에서 직장여성들이 동경하는 멋있고 쿨한 실장님 캐릭터다. 이들은 출신 배경이 열악할 경우 이태원이나 강남의 바에서 우수에 젖은 모습으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돈이나 집안 배경, 학벌 등이 받쳐주기만 하면 최고의 연애 대상이 된다. 두 명 이상의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사생활이 복잡하다는 인상을 줄 가능성도 많다. 20대와 30대 중반까지 한국 사회에서 이런 이미지는 ‘완소남’ 그 자체다. 하지만 40대 이후에도 이런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준재벌 2세나 3세 또는 한량으로 내놓은 사람이 아니라면 힘들 터. 사실 찬찬히 살펴보면 여성들이 꽃남에게 열광하는 까닭은 외모가 아닌 그의 캐릭터다. 캐릭터는 그의 외모를 더욱 부각한다. 이들의 성격과 여성성은 주위 여성들을 쉽게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한다. 남자지만 여성성이 더 느껴지기에 이를 자신을 돌봐주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남자의 부드러움이나 우수에 젖은 모습에서 그가 나를 정말 잘 이해하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꽃남의 전형적인 캐릭터가 드라마를 통해 현실로 구체화한다. 그리하여 많은 여성이 연애의 판타지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여성들이 이런 캐릭터를 가진 남성과 연애를 하거나 이런 성격의 꽃남을 계속 선호한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

예쁘고 쿨한 ‘그놈 얼굴’ 환장하거나 환상이거나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한 장면. 최근 한국 대중문화에 투영되는 남성들의 이미지는 곱고, 아리땁고, 연약한 꽃과 같다.

매력 철철 그 꽃, 시들지 않으면 좋으련만

꽃남과 결혼할 경우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가 되기보다는 깨지기 쉽다. 재력과 집안 배경을 갖추지 않았다면 더욱 그러하다. 꽃남의 이미지를 풍기는 로맨티스트들은 대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관심이 있더라도 타인에 대한 따뜻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기 힘들어하며, 특히 현실생활에서 보호막 노릇을 하기 힘들어한다. 대부분 그냥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 자체로 이성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기에 타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기 어렵다.

꽃남이 선호되는 기간은 연애관계가 지속되거나 연애감정이 중요할 때까지가 전부다. 좀 심하게 단언하면 꽃남은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특히 남자가 로맨티스트 꽃남이고 여자가 현실적인 모든 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말이다. 물론 꽃남이 부자이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면 사정은 다를 것이다. 꽃남 신드롬은 ‘연애가 뭔지 모르지만 뭔가 멋있는, 백마 타고 오는 왕자를 기대하는’ 현실의 여성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또는 “현실은 내가 책임질게 당신은 그냥 나의 테리우스가 되면 돼”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 여성이 많을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에선 이런 캐릭터의 사람에게 돈이나 능력이 포장되면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긴장감’도 무너지고 어떤 무책임한 행동도 쿨한 모습으로 바뀌어 보인다. 그렇기에 이성에게는 꽃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된다. 그 꽃이 시들지 않으면 좋으련만.

결론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꽃남 증후군이 부각된 가장 큰 이유는 여성이 바라보는 남성들이 너무 ‘찌질’하기 때문이다. 아니, 남성과 살아가야 하는 결혼생활이 찌질해 보이기에 꽃남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진다. 찌질한 현실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미지, 그것이 바로 꽃남이요, 꽃남을 통해 소비하는 이미지다. 이것은 테리우스가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19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상적인 결혼관, 아니 이상적인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나 환상에서 만들어진 남자의 이미지가 꽃남 열풍인 것이다. 파티하는 분위기를 동경하면서 친구 같은 이성 상대를 찾는 여성들이 로맨티스트의 성격 특성을 가진 ‘백마 탄 왕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심리가 꽃남으로 구현된다. 찌질한 현실이 싫어 판타지를 현실 속 이미지로 삼고 싶어하고, 환상 속의 또 다른 자기 모습을 현실 속 남성 속에서 찾는 것이 지금 한국 여성들이 꽃남에게 열광하는 심리다.

예쁘고 쿨한 ‘그놈 얼굴’ 환장하거나 환상이거나

2000년대 중반 문을 연 서울 청담동의 한 고급 레스토랑. 미남 직원들을 내세워 여심(女心)을 잡는 데 애썼다. ‘꽃미남’을 찾는 여성 소비자들이 늘면서 유통, 서비스업종에는 미남 마케팅이 더욱 흔해지고 있다.

야리야리한 도련님들 살판난 세상

타인에게 자신 알리기 외면, 보이는 것도 한몫


얼마 전 친하게 지내는 여성들과 송년모임 약속을 잡았다. 그들은 강남구 청담동에서 인기가 높은 H라는 일식주점엘 가자고 했다. 내가 그 집 음식맛이 좋냐고 묻자 그들은 “맛이야 어디나 그게 그거지만 그 집은 서빙하는 오빠들이 예뻐”라고 답했다.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실제로 그 주점에 가보니 여성 점원은 없고 주방부터 홀 서빙까지 모든 점원이 남성이었다. 그것도 키는 다들 175cm가 넘고 최근 유행하는 머리 모양을 한 날씬한 몸매의 20대 총각들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술을 주로 파는 곳인데도 손님의 반 이상이 여성이었다(거기가 어디냐고 묻는 e메일은 보내지 마시길…).

‘요즘은 이런 게 유행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돌이켜보니 ‘메트로섹슈얼’이라는 말이 회자된 지도 오래고, ‘꽃미남’이라는 말도 일상화한 것 같다. 안정환 이후 화장품 광고에 남성이 출연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게 됐다. 대중의 환호를 받는 남성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예전 같으면 하나같이 ‘기생오라비’로 불릴 스타일이다. 세상이 어찌 된 것일까.

보기 좋은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분명하다. 1993년 미국의 레인겐과 케르난이라는 학자는 외모의 편차가 큰 조사원들을 선발한 뒤 기부금 모금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조사원의 기부 성공률은 42%로, 그렇지 않은 조사원의 성공률 20%보다 월등히 높았다. 화술의 차이가 아니라 오직 외모차로만 말이다. 이러니 극심한 비즈니스 경쟁 속에서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이 ‘머리가 좀 나빠 보이고 성질이 좀 더러워도’ 외모가 출중한 점원을 채용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만 해도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 것 같다. 얼마 전부터 급격히 살이 불자 안 하던 운동을 시작했고, 배가 나온 데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사람을 보면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로 그 사람의 경쟁력과 자기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몸과 체형에는 ‘계급’이 투영되기도 한다. 20세기 이후 서구화한 사회에서는 영양이 과잉 공급되면서 비만이 늘었다. 중세의 왕을 그린 그림을 봐도 잘 먹고 잘 쉬어 퉁퉁해진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시절엔 살찐 얼굴과 몸이 부와 신분의 상징이었던 셈. 하지만 현대에는 운동과 다이어트, 몸매 관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을 상류층에다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본다. 반면 그럴 여유가 없어 칼로리 높은 정크 푸드를 먹고 만성 운동부족으로 ‘술통형 몸집’이 된 사람들은 하위계층으로 간주한다. 어느 정도는 경험적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적당한 근육, 날씬한 몸매가 ‘계급’

그런 정점에 세칭 ‘꽃미남’이 있다. 인간의 이미지는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의 통합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거울에 비친 자기 이미지는 두 가지 면을 모두 투영한다. 삶이 자신 없고 재미없어질수록 거울 속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경쟁력도 그렇다. 내면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정확한 평가를 받는 것은 한순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외모는 순간적인 인상 평가로 가능하다. 그래서 예부터 소개팅하기 전에 주선자가 “성격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과거에 이런 평가는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일방적인 면이 많았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성도 여성들에게 선택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니 예전의 마초적 외모로는 그녀들의 간택을 받기 어려워졌다. 찰슨 브론슨, 실베스터 스탤론, 임성민으로 이어지던 남성미의 상징은 이제 휴 그랜트, 이준기, 이민호에게 깃발을 넘겨주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경험적으로 안다. 살을 찌우거나 울퉁불퉁한 근육을 만드는 것보다 적당한 근육과 날씬한 몸매, 잘 다듬어진 외모를 유지하는 것이 몇 배는 어렵다는 것. 그리고 현대 여성들이 힘과 근육으로 자기주장을 밀어붙이는 마초적 남성보다 마음 맞는 게이 친구처럼 섬세한 배려심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남성들을 더 원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외면적 요소가 내면적 요소보다 중요해진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찰나적이고 표상적으로 흐르다 보니 ‘성격이 진국’이라 해도 그것을 알리고 이해시킬 만큼 정서적 교감을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바쁘고 또 조급하다. 그러니 자신을 타인에게 알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내면이 아니라 외면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고 유효한 방법이다.

이렇게 현대사회의 남성들과 그들의 사회적 생존에는 100년 전 프로이트는 상상도 못했을 덕목들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옛날에는 사냥 못하고 힘 못 쓴다고 주눅 들었을 야리야리한 도련님들에게 광명세상이 열렸다. IT(정보기술)가 돌도끼를 이긴 셈이다.



주간동아 2009.02.17 673호 (p22~25)

  •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swhang@yonsei.ac.kr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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