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2009.01.27

빵 터졌다, 신났다! 개그 웹툰

캐릭터, 서사, 개연성 없이 한국적 일상 소재로 인기몰이

  • 김송은 만화전문지 ‘팝툰’ 기자

    입력2009-01-29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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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터졌어요.” 최근 한국 개그만화의 대세는 웹툰이다. ‘빵 터졌다’는, 웃기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듣고 싶어할 최고의 찬사를 웹툰 작가들이 듣고 있다. 인기를 얻고 있는 ‘마음의 소리’ ‘낢이 사는 이야기’ ‘2차원 개그’ 등은 모두 내로라하는 포털사이트의 얼굴마담격 작품들이다. 웹툰들은 인터넷의 인기를 기반으로 종이 만화책으로 잇따라 선을 보이는 중이다.

    포털 기반의 개그만화에는 세 가지가 없다. 캐릭터가 없고, 서사가 없으며, 개연성이 없다. 하지만 작가도 독자도 개의치 않는다. ‘빵 터질’ 한 부분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쇼핑하는 사이사이 스크롤로 빠르게 내려 보는 동안 큰 웃음을 선사하는 웹툰들을 소개한다.

    빵 터졌다, 신났다! 개그 웹툰
    ★ 자신을 희생해 웃음을 선사한다 | 조석 ‘마음의 소리’

    허무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한 친구 왈, 라면을 먹고 밥을 말아먹으려 밥통을 열었더니 취사 버튼을 누르지 않아 생쌀이더라, 다른 친구는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고 휴대폰 문자함을 열어보니 전교 1등에게서 온 정답이 가득 적힌 메시지가 있더라 등등. 무심히 시작한 쓸데없는 대화는 이상한 경쟁심으로 열기를 띠어가고, 급기야 ‘배틀’이 된다.

    2006년 개인 블로그에 연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네이버 만화 담당자의 눈에 띄어 정식 웹툰 연재를 시작한 ‘마음의 소리’는 조석 작가를 인터넷 최고의 스타만화가로 부상시켰다. 요즘 개그만화에 세 가지가 없는 대신 조석의 만화에는 캐릭터 대신 작가 자신이 있고, 서사가 없는 대신 일상이 있으며, 개연성이 없는 대신 작가의 독특한 상황 해석 능력이 있다.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해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인터넷 만화 초기에 주목받았던 ‘스노우캣’이나 ‘마린블루스’의 연장선상에 있고, ‘빵 터지는’ 부분은 ‘트라우마’ ‘와탕카’ 등 패러디를 기반으로 한 반전 만화의 영향 아래 있다.



    그러나 조석의 만화가 이들과 다른 점은 자신을 희화화하는 ‘애티튜드’다. 실수담이나 굴욕담을 주로 소개하며, 게으르고 소심하고 비굴한 자신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 것에서 독자들은 공감을 넘어 친근함을 느낀다. 새해 목표를 ‘나 하나쯤이야’로 세우는 천연덕스러움은 새해 벽두, 바짝 긴장한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하다.

    빵 터졌다, 신났다! 개그 웹툰
    ★ 이상하지만 사랑스런 가족 이야기 | 서나래 ‘낢이 사는 이야기’

    ‘남자 조석’으로 불리는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도 작가 자신이 주인공으로,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일들에서 웃음을 뽑아 올린다. 낙천적이다가도 소심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자책하다가도 쉽게 자기 합리화하는 작가의 캐릭터가 귀엽다. 조석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족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인데, 특히 브로콜리 모양의 머리를 한 엄마가 큰 웃음을 선사한다.

    영화를 보다가 해커를 가리켜 “저 사람이 해킹가야” “정원관이 예전 소방관 멤버였어” 하는 식의 의도하지 않은 말실수라든지, 결혼 전 엄청 마른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왜 그렇게 마른 사람과 결혼했냐고 묻자 “마른 장작이 더 잘 탄다”는 부모 자식 간에 나누기엔 부적절한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뱉는 센스가 일품이다. 사람들과 중국집에서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을 땐 자장면이 불더라도 공동의 탕수육을 먼저 먹고, 나중에 자장면을 먹어야 한다는 생활의 지혜를 전수해주는 아버지, 군대 간 동생 식이, 독립해 집을 나간 언니 등 이상하지만 사랑스러운 가족을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따뜻하게 전해진다. 대학 휴학 중에 연재를 시작해 이제는 졸업하고, 전업 만화가가 된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빵 터졌다, 신났다! 개그 웹툰
    ★ 반전 개그는 진화한다 | 마인드C ‘2차원 개그’

    포털사이트 야후에 연재하는 마인드C의 ‘2차원 개그’는 반전 개그의 궁극을 보여준다. 단 두 컷으로 이뤄졌지만 개그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2차원적 반전 : 목욕탕 라커룸에서 두 아이가 수건 끝을 잡고 빙빙 돌리고 있다. 장난치지 말라고 야단하는 엄마. 그런데 수건 끝을 보니, ‘사용 후 꼭 돌려주세요’라고 써 있다.

    ○ 허무개그 : 한 남자가 헉헉거리며 천칠백이십육, 천칠백이십칠… 숫자를 세다 ‘더는 못하겠어요. 전 여기서 포기할래요’라고 하자, 다른 남자가 ‘포기란 단어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라고 일갈한다. 와이드 샷으로 잡은 배경은 진짜 배추밭이다.

    ○ 뻔뻔한 언어유희 : 지하철역에서 헌팅당했다는 여자가 집에 와서 쓰러지는데, 등에는 화살이 꽂혀 있다.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유치하고 썰렁하다는 비난부터 작가가 천재라고 추앙하는 분위기까지 반응이 다양한데, 사회적 맥락과 언어의 중의성, 상황의 아이러니까지 두루 포착해 개그 소재로 사용하는 작가의 센스와 노력은 늘어나는 조회 수와 추천 수로 보답받고 있다.

    ★ 일상과 추억에서 건져 올리는 웃음 한 조각 | 김양수 ‘생활의 참견’

    월간 ‘PAPER’ 기자이기도 한 김양수의 만화 ‘생활의 참견’은 지난해 말부터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했지만, 역사는 더 오래됐다. 자신이 일하는 잡지에 연재하던 만화로 이미 단행본도 나와 있다. 자신의 경험과 주변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이 만화는 술자리에서 ‘내가 옛날에 겪은 일인데 말야…’로 시작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드는 입심 좋은 친구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한 부분을 따뜻하게 조명하고, 추억 속에서 발견하는 웃음은 유쾌하다.

    빵 터졌다, 신났다! 개그 웹툰
    ★ 본격 괴작 | 귀귀 ‘정열맨’

    김정열이라는 고등학생의 학교생활을 그린 ‘정열맨’은 개그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필수 코스로 거치는 후루야 미노루의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 우스타 교스케의 ‘멋지다 마사루’의 뒤를 잇는 ‘본격 괴작’이라 부를 만하다. 오징어덮밥을 좋아하는 단순하고 힘이 센 정열맨과 ‘찌질한’ 학교생활을 탈피하고자 노력하는 허새만, 선생님이 ‘진도 나가자’고 말하면 밖으로 나가는 ‘저질개그’를 선보이는 김진도 등 4차원 급우들이 선보이는 이야기는, 실수로 깡패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된 평범한 남학생이 주인공인 ‘크로마티 고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큰 스토리 라인 없이 독특한 캐릭터가 펼치는 산발적 개그가 난무하는 이 만화가 포털사이트에 당당히 연재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의 사람이 이용하는 포털은 서비스하는 콘텐츠에 대해 보수적인 편인 만큼, 국내 개그만화 향유자의 취향이 다양해졌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한 시상식에서 개그콘서트의 ‘황 회장’ 황현희가 “웃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비장한 수상소감을 말해 화제가 됐다. 웃음을 주려는 개그맨들의 눈빛에 어리는 ‘웃기고 말겠다’는 각오와 스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가끔 부담스럽다. 요즘의 개그만화는 그에 비하면 몇 단계 느슨하다. 일상이 개그가 되고, 개그가 일상이 되는 이 만화들은 짤막하고 접근도 쉬워 사무실에서 일하는 중간 중간 보기에 좋다. 한순간 모니터에 커피를 뿜을 수도 있으니 방심은 금물. 잠깐의 웃음으로 터질 것 같던 스트레스가 날아가고, ‘빵 터졌어요’라고 리플을 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재분을 모은 단행본이 나와 있으니 마음에 드는 작품은 소장해주는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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