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1

2009.01.27

여우 주연·조연상 동시 거머쥔 ‘영국의 장미’

  • 서동현 W Korea 피처에디터 donghyun.seo@doosan.com

    입력2009-01-19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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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 주연·조연상 동시 거머쥔 ‘영국의 장미’

    케이트 윈슬렛(왼쪽)과 남편 샘 멘데스 감독.

    1월11일 제6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여우조연상 부문 시상자인 제니퍼 로페즈가 ‘더 리더’의 케이트 윈슬렛을 수상자로 발표하자, 윈슬렛은 뭔가 적힌 종이를 꺼내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흥분을 감추진 못했지만 종이에 적힌 ‘꼭 감사해야 할 사람들 리스트’를 하나하나 호명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시상식 풍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를 발표할 때였다. 시상자 카메론 디아즈의 입에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케이트 윈슬렛”이 다시 한 번 호명됐다. 골든글로브에서 20년 만에 ‘여성 2관왕’이 탄생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윈슬렛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울먹였다. 남편 샘 멘데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축하의 키스를 받고 벅찬 감격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는 진정 행복해 보였다.

    케이트 윈슬렛의 첫 오디션은 16세 때 피터 잭슨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1994)이었다. 발그레한 장밋빛 볼과 고집스럽지만 열정이 느껴지는 눈빛, 그리고 안정된 연기력을 갖춘 그녀는 이안 감독의 1995년 작 ‘센스 앤 센서빌리티’,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1996년 작 ‘주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햄릿’ 등 그녀만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작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우아한 영국 여배우의 계보를 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1997년, 세기의 러브 스토리 ‘타이타닉’으로 전 지구적 명성을 얻기에 이른다. 물론 상대역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보다 덩치가 더 좋아 이모 같아 보인다는 이유로 소녀 팬들의 원성을 듣긴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힘은 위대했다. 이미 21세 때인 1996년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후 ‘최연소로 다섯 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타이타닉’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2002년 ‘아이리스’로 여우조연상 후보 그리고 ‘이터널 선샤인’과 ‘리틀 칠드런’으로 다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정작 수상의 영광은 그녀를 비껴갔다.

    보기보다 화끈한 성격인 그녀는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하는 대신 “다섯 번이나 노미네이트되고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번 골든글로브가 그녀에게 ‘상복 없는 배우’라는 머쓱한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게다가 상을 거머쥐게 한 두 영화 모두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다.



    2007년은 그녀에게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해였다. 남편이자 ‘아메리칸 뷰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능력자 샘 멘데스와, ‘타이타닉’으로 만난 소울메이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하는 ‘꿈의 프로젝트’여서다. 리처드 예이츠가 1961년 발표한 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부부가 삶에 치여 꿈과 영혼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불안과 고독으로 피폐해진 여인의 모습을 절절하게 연기한 그녀가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곧장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더 리더’에 합류했다. 역시 1995년 발표한 버나드 슈링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 배경인 작품이다. 그녀는 스무 살이나 어린 소년 마이클과 사랑에 빠지는 한나 역을 맡아 40년이란 세월 동안 펼쳐지는 비밀스럽고 아픈 사랑을 보여준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자신의 전매특허인 ‘애절하고 사연 있는 사랑’을 원숙하게 연기해냈다.

    지난 2년 동안 숨 쉴 틈 없이 연기하고 또 연기한 케이트 윈슬렛에게 남은 것은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의 찬사와 환호에 감사의 키스를 보내는 일 정도다. 물론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그러나 이 화끈한 다혈질의 영국 여자를 다시 한 번 울릴지도 모르는 ‘아카데미 시상식’도 남아 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편 샘 멘데스를 두고, 디카프리오에게 먼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고맙다”고 했던 문제의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2월19일 국내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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