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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笑笑한 일상’⑨

“헌금하시는 걸 보니 살림살이 괜찮은가 봐요”

“헌금하시는 걸 보니 살림살이 괜찮은가 봐요”

“헌금하시는 걸 보니 살림살이 괜찮은가 봐요”
주말마다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갈 일이 종종 생겼다. 대부분 출판 일에 관계된 것들이었다. 주중엔 출근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 토요일 오전에 올라갔다가 막차를 타고 내려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KTX를 타고 올라갈 때도 있으나, 그래도 1만원 저렴한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더 많았다. 주중이나 주말이나 버스전용차로제를 시행하고 있으니 막힐 일도 없었고,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었다. 한숨 늘어지게 자다 보면 서울이었고, 다시 모자란 잠을 보충하다 보면 광주였다. 예전보다 더 푹신해진 좌석과 더 따뜻해진 히터 덕분에 고속버스에 오르면 뭐랄까, 조용한 수면실에 들어선 기분이 들곤 했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여행을 즐기는 기분이야 마음 편할 때 이야기이고 내겐 그저 모자란 잠, 부족한 잠을 보충해주는 곳이 고속버스였다. 휴게소에서조차 내리지 않고 침을 흘리며 자는 달콤한 잠.

한데, 지난주 금요일엔 직접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처가에 가져다줄 짐이 많았고, 가는 길에 천안 부근에 들를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꽤 먼 거리인지라 부담이 됐지만 어쩌랴, 아내가 부탁한 항아리(장모님은 그 항아리에 연꽃을 심으신다고 했다)를 등에 지고 고속버스를 탈 수는 없는 일. 자판기 커피 한 잔 뽑아들고 운전대를 잡았다.

천안에서 볼일을 다 보고, 안성휴게소에서 한 번 쉴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차도 많지 않았고, 도로에 고장난 차나 사고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매번 잠만 자면서 지나던 길을 운전대를 잡고 바라보니 보이지 않던 풍경들도 새로 보이고, 그래서 살짝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문제는 오산 근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앞차와의 간격이 좁아지는가 싶더니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고, 이내 정체가 되었다. 평일 버스전용차로제가 시작되는 부근이었다. 전용차로로 들어서려는 버스들과 그곳에서 빠져나오려는 자가용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계속됐고, 그래서 차들은 자주 브레이크 등을 밝히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흠, 뭐 한 3km 지체되겠네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평일이니까 차들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어, 이런 계산이었다. 예상 시간보다 한 30분 늦겠네, 그 정도쯤이야. 나는 느긋하게 마음을 먹었다.

한데 얼마 뒤 나타난 교통상황판 속 문자들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놓고 있었다.



‘기흥 → 서울요금소 정체, 달래내고개 → 반포 정체’.

정확한 거리 계산을 할 순 없지만, 그 말인즉슨 지금 고속도로는 수십km가 정체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몇 시간이 될지도 알 수 없는 체증. 나는 좀 막막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처가에 짐을 내려놓고 만나야 할 사람이 두 사람이었고,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구입해야 할 책이 대여섯 권이었다. 서점이야 포기한다고 해도, 사람 약속은 오래전에 해놓은 일인지라 절대 펑크를 내선 안 되었다. 나는 계속 속으로 계산을 했다. 약속장소 먼저 가고 처가는 맨 나중에 들러야겠군, 지금이라도 전화를 해서 약속장소를 강남 쪽으로 바꿀까? 나는 계속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며 고민했다. 에이, 그래도 세 시간이나 일찍 계산해서 나온 건데 설마 그 시간도 못 지킬까봐, 나는 나 자신을 계속 다독거렸다.

그러나 기흥에서 서울요금소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린 다음부턴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로 약속 하나는 다음 날로 미루고, 장모님에게도 많이 늦을지 모른다고 더듬더듬 얘기를 했다. 그래도 나머지 약속 하나는 포기할 수 없어, 계속 정체된 고속도로 위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아, 이 사람들은 무슨 일 때문에 고속도로 위에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다닐 땐 하지 않던 생각이었다. 정체가 되니, 자연 옆 차선 자동차 안 사람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였다. 어떤 차에는 뒷좌석까지 전단지가 가득 차 있었고, 어떤 소형차에는 사람들이 여섯 명이나 타고 있었다. 혼자 운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담배를 물고 있었고, 모두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누구 하나 그냥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나온 것 같지는 않았다. 모두들 바빠 보였고, 그래서 더 조급해 보였다. 허나 어쩌나, 가끔 보이는 교통상황판은 계속 정체, 정체 중이니 이미 까매진 속은 더 까매질 수밖에.

서민 속사정 모르는 대통령의 발언

그날 나는 두 가지 약속 중 어느 하나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자정 무렵 처가에 도착하니, 잠결에 나온 장모님은 계속 내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그 모습이 죄송스러워 나도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얼마 전 대통령이 정부부처 합동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말에 차가 밀리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국민이 경제적 어려움을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런 식으로 한번 말해보겠다. ‘교회에 나가서 헌금하시는 것을 보니 살림살이가 괜찮은가 봅니다.’

길게 말하지 않고 짧게 말하겠다. 이런 일반화의 오류는 온당치 않다. 밀리는 고속도로 차 한 대, 한 대 안에는 어떤 사연을 갖고 길 위로 나섰는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중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바로 그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길 위로 나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대통령 관용차를 타고 다니면 밀리는 차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차 때문에 다른 차들을 다 막아서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연,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을 터.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훈계가 아닌,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말 한마디에 이토록 상처받은 것도 꽤 오랜만의 일이다.



주간동아 2009.01.13 669호 (p7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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