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8

2009.01.06

책상머리 무역영어 END!

현장 ‘생생 영어’로 시험 개편 … 출제진에 무역 실무자 대거 포함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8-12-31 1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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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머리 무역영어 END!

    서울 중구 정동에 자리한 대한상공회의소의 시험 접수처. 무역영어 응시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09년 취업자 증가 수가 올해보다 10만명 줄어든 4만여 명에 그칠 것.’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2009년 일자리 전망은 우울하다. 안 그래도 치열한 청년들의 취업 전쟁은 올해 더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구직자 처지에서 자격증은 전쟁터 병사의 총알만큼이나 소중한 재산. 그런 차원에서 각광받는 자격증 가운데 하나가 2009년 ‘대수술’을 앞두고 있어 주목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시행하는 무역영어 시험이 그 주인공.

    무역영어는 무역 관련 영문서류 작성 및 번역 등 영어 구사 능력과 무역 실무지식을 평가하는 국가 공인 자격시험이다. 해외여행이 규제되던 1967년, 해외출장 자격이 있는 사람을 가리기 위해 처음 시행됐다. 그러다 2000년 국가 공인 자격시험으로 ‘승격’한 이후 취업 준비생들에게 각광받는 시험으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1만7051명이던 응시생 수가 2008년 2만3345명으로 3년 사이 37%나 늘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20대 응시생 비중이 갈수록 증가해 현재는 80% 정도 된다”고 밝혔다. 현대종합상사 남모 차장은 “입사 지원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역영어 1급 혹은 2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며 “자격증 소지자에게 가점을 준다”고 말했다.

    그런데 2008년 들어 이 시험의 출제 경향이 달라져 응시생 사이에서 ‘혼란’이 빚어졌다. 2008년 6월 시험에서 1급에 합격한 박모(25) 군은 “기출문제가 몇 개 보이지 않은 데다 지문이 길어지고 생소한 문장도 많았다”고 말했다. 무역영어 관련 인터넷 동호회에는 40%가량 되던 합격률이 20%대로 낮아졌을 것이란 말도 오간다.



    응시생들의 설왕설래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던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간동아’의 취재 요청에 ‘시험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무역영어 담당자는 “그동안 무역학과 교수들이 문제를 출제해왔는데, 2008년에는 영어 원어민과 무역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에게 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담당자는 “새해부터는 아예 현업 종사자들을 출제진에 포함시킬 계획”이라며 대대적 시험 개편을 예고했다.

    그동안 ‘죽은 영어’ 비판 제기돼

    시험을 확 바꾸기로 작정한 이유는 그동안 무역 현장과 동떨어진 문제가 출제돼, 자격증 소지자라 해도 무역 실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최근까지도 ‘S/S’(증기선을 뜻하는 Steam Ship의 약자), ‘telex’(텔렉스·전신기로 외국과 교신하는 방식) 같은 단어가 시험에 나왔는데, 요즘 시대에 증기선이나 텔렉스를 사용하는 기업체는 거의 없다.

    실제 영어권 국가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문장들도 무역영어 시험이 ‘죽은 영어’를 출제한다는 비판의 원인이 됐다. 2007년 시험에 출제된 문장 ‘We are prepared to allow you a special discount of 5% on any order…’에 대해 비즈니스 영작문을 가르치는 미국인 강사 로 클라인 씨는 “실제 영어권 사람들은 ‘be prepared to’보다 ‘be ready to’를 더 자주 사용하고, 판매자가 할인을 허락(allow)한다는 표현은 공손하지 않게 들린다”며 “이 문장은 ‘We are willing to offer you a special discount…’로 바꾸는 게 자연스럽다”고 조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2009년부터 교수들과 무역 실무 종사자들을 절반씩 섞어 출제진을 구성할 계획이다. 실무자 그룹에는 관세사, 종합상사와 은행의 무역 담당자 등이 포함될 예정. 이 때문에 응시생들은 기출문제집에 의존하기보다 무역 실무에 쓰이는 영어를 찾아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무역영어 시험 감수에 참여한 바 있는 한기문 한국HSBC은행 상무는 “한국은행이나 수출보험공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무역 관련 자료를 구해서 숙지하는 등 발품을 팔아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1월 말부터 달라지는 무역영어 시험에 대해 홍보할 것”이라며 “벼락치기가 아닌, 영어를 ‘진짜’ 잘하는 사람이 합격하는 시험으로 자리매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취업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자격증 하나 쉽게 따지 못하는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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