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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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복회 계주, 돈을 갖고 튀어라?

도주 중 부동산에 의문의 근저당·가압류 … 3자 내세워 채권 회수 막나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12-24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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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복회 계주, 돈을 갖고 튀어라?

    사건 수사에 중요한 인물인 공동계주 박모 씨가 검거되지 않아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다복회 사건과 관련, 경찰 수사관들이 또 다른 공동계주 윤씨의 논현동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압수품을 갖고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 호화판 귀족 계모임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복회’ 사건 수사가 계주의 기소로 일단락된 듯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 치 앞을 점칠 수 없는 점입가경 양상이다. 검찰은 12월5일 계원들을 낙찰계, 번호계에 가입시킨 뒤 일부 계원들의 낙찰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된 계주 윤모 씨를 기소했다. 검찰은 윤씨가 146명에게서 372억원에 이르는 곗돈을 받은 뒤 돌려주지 않고 이 돈 대부분으로 자신의 사채를 갚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검찰이 언급한 피해자 수나 피해 액수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윤씨를 고소한 계원들을 기준으로 계산된 것이다. 아직 고소하지 않은 고액 계주나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말은 못하고 좌불안석인 피해자들까지 합한다면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피해를 입은 계원들의 고소가 이어지고 있다. 사건 수사부인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 이종구 검사 역시 12월1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기소 발표 뒤 추가로 몇 건의 고소가 있었다”고 전했다.

    예전 근무 회사가 뜬금없이 가압류

    더구나 윤씨와 함께 계를 조직한 공동계주 박모 씨, 총무 김모 씨가 수사망을 피해 도주한 상황이다. 윤씨가 운영한 인테리어 업체 대표이사이기도 한 박씨는 계 전체의 자금 흐름을 꿰뚫고 있는 실무 책임자. 윤씨의 구속영장에서도 박씨의 임무가 ‘계주 대행으로 불입금 수신 및 관리를 총괄’이라고 적시돼 있을 만큼 이 사건 수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이런 박씨는 다복회 사건이 터진 뒤 곗돈 거래상황을 알 수 있는 장부와 다복회 구성원, 운영방식, 채무 관계 등을 알 수 있는 기록까지 갖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윤씨 등이 계원들에게서 받은 곗돈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되고 어디에 쓰였으며, 또 다른 배후가 있는지에 대한 수사가 다소 미진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윤씨의 입에만 의존하는 소극적인 수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복회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진 박씨가 두 달째 도주 중인 정황상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처럼 박씨의 도주 이후 행보 등이 다복회 수사의 최대 관건으로 떠오른 가운데 박씨의 재산에서 심상치 않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계주의 재산상 변화는 피해자들의 채권 회수 문제와 직결되는 대목. 이미 사건 초 피해자 130여 명에게 사건을 의뢰받아 채권 환수작업을 벌이고 있는 임윤태 변호사가 이 부분을 우려한 바 있다.

    계주가 자신의 재산에 대한 대다수 소액 피해자들의 채권 회수 움직임을 차단하고 있다는 게 그 골자. 이럴 경우 소액 피해자들은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통해 채권 권리를 얻어야 하는 복잡한 변수가 생긴다. 임 변호사는 윤씨 재산에 대해 “부동산에 근저당이 잡혀 있는 등 재산이 빠르게 이전되는 중”이라며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주간동아’ 확인 결과, 박씨의 재산에서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잠적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러 부동산에 근저당과 가압류 등이 무더기로 걸리고 있는 것. 실제 채권자일 수도 있으나 일부 건은 의도적으로 근저당과 가압류를 걸었으리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윤씨의 인테리어 업체 M사 명의로 매입한 서초동 5층 건물, 그리고 박씨 명의로 구입한 서울 행당동과 서초동 아파트에 대해 11월12~14일과 12월에 걸쳐 법원에서 여러 건의 가압류가 결정됐다.

    특히 박씨 명의의 서초동 W아파트에는 12월11일 홍콩에 본점을 둔 외국법인 C사를 채권자로 해 4억원의 가압류가 설정돼 있는데, 공교롭게도 C사는 과거 박씨가 대표이사로 있던 무역 중개 및 요식 법인 영업소의 본점으로 확인됐다. 회사가 전 대표이사의 재산을 뜬금없이 가압류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서초동과 행당동 아파트에는 근저당권도 잡혀 있다. 특히 박씨가 충남 당진에 자리한 S철강의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이틀 뒤인 9월19일에 철강법인 명의로 10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됐다. 여기서도 회사가 신임 대표이사에게 채권을 요구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

    다복회 계주, 돈을 갖고 튀어라?

    다복회 계주 윤씨가 아들 명의로 운영했던 한우전문점.

    큰손 계원과 일반 계원 간 고소전 충돌

    박씨가 잠적하기 직전인 10월20일에는 W아파트 등기에 유명 음식점 대표이사인 L씨가 근저당권자로 50억원이 근저당 설정됐다. 역시 L씨가 올해 세운 법인 주소지가 박씨의 서초동 건물과 일치하는 등 의문점이 발견된다. 이 부분에 대해 임 변호사는 12월1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L 대표 본인도 상당액을 손해봤다고 주장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전했다.

    한편 다복회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몇몇 ‘큰손’ 계원과 일반 피해자들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명 정도의 ‘큰손’들이 일반 계원들의 행보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걸어 양측이 대립하고 있는 것.

    임 변호사는 “큰손들은 대부분 수십억원 이상의 곗돈을 부은 재벌가 출신들로, 윤씨가 검거되기 직전 윤씨에게서 공증을 받아놓고 지금은 대다수 피해자들과 협조하지 않은 채 한편으로는 일부 피해 계원들을 빼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본인들의 채권 확보만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 임 변호사는 이들이 공증 금액을 부풀렸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임 변호사 측은 급기야 ‘큰손’들을 고소까지 한 상태다. 고소 혐의엔 윤씨 재산권에 대한 사기와 강제집행면탈 외에 이들이 다복회 사건 발생 전 윤씨를 납치 감금하고, 서류를 절취했다는 대목도 포함돼 있다.

    납치, 감금 부분에 대해 윤씨 본인도 검찰 조사에서 실제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종구 검사는 “(윤씨가) 일부 계원들이 계를 빼앗기 위해 자료를 가져갔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계주 기소 이후 더 뒤죽박죽돼버린 다복회 사건. 수사 기관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모든 것이 덮일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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