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7

2008.12.30

내겐 정말 감동적인 그녀

‘내 인생의 황당과 감동 사이’

  • 정명수 수필가·‘서른 개의 열쇠’ 저자

    입력2008-12-22 18: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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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도우미 순애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어느 화창한 날, 그녀와 함께 차를 몰고 황령산으로 약수물을 뜨러 갔다. 라디오에서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기자가 나와 한참을 떠들더니 “이상 쫛쫛쫛 논평이었습니다”라고 마무리했다. 무심코 듣고 있던 순애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 말에 갑자기 박장대소했다.

    “이모, 금방 그 아저씨 이름이 ‘놈팽이’래요. 하하하.”

    그런 그녀는 기억력도 좋다. 라디오 논평만 나오면 “아이구! 그 놈팽이 아저씨 또 나왔어요”라며 슬며시 웃는다. 그토록 즐거워하는데 핀잔을 줄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러게, 이름을 왜 하필 놈팽이라고 지었노?” 하고 말았다.

    하루는 그런 그녀에게 전화 거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했다. 처음에는 6과 9를 헷갈려하던 순애가 피나는 노력 끝에 어느덧 10까지는 무난히 읽을 수 있게 됐다.

    어느 날 내 휴대전화 번호를 크게 적어 놓고 순서대로 다이얼 누르는 법을 가르쳐줬다. 한참 연습을 하고 혼자 눌러보게 했더니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선지 번호 누르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조금만 더듬거린다 싶으면 “다이얼이 늦었으니 다시 걸어주시기 바란다”는 신호음이 이어지곤 했다. 안타까워하는 순애를 다독이며 나는 또 “그놈의 휴대전화는 무신 놈의 번호가 그렇게 많노”라며 죄 없는 전화기를 나무랐다.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요즘 들어 깜빡깜빡 잊어버리는 것이 많은 나와 점점 똑똑해지는 순애가 비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겐 정말 감동적인 그녀
    아닌 게 아니라 그녀와 나의 ‘교감’은 부쩍 늘어나는 듯하다. 얼마 전 슈퍼마켓에서 막대 모양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집에 왔다가 마침 순애가 똑같은 아이스크림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 적도 있다. 순애는 또 “어머! 이모랑 나랑 텔레파시가 통했나 봐요”라고 자연스럽게 ‘과학용어’를 구사하며 까르르 웃었다.

    낫 놓고 기역자는 몰라도 누구보다 잘 웃는 순애. 나에겐 그녀가 늘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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