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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한 엄마들, 英 쇼크에 빠지다

유아 학대 살해, 보상금 노린 실종 자작극 … 영국이 자부하던 아동보호시스템 비상

비정한 엄마들, 英 쇼크에 빠지다

비정한 엄마들, 英 쇼크에 빠지다

런던 북부에 마련된 ‘베이비 P’ 묘지에 많은 영국인들이 인형과 꽃다발을 두고 갔다. 지난해 8월 생후 17개월에 사망한 이 아이는 친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에 시달린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온나라가 갓난아이의 비극적 죽음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영국 국민 중 누구도 두 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에드 볼스 영국 아동부 장관이 발표한 장문의 성명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사건에 쏠린 영국인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공영뉴스채널 ‘BBC 뉴스 24’는 볼스 장관의 성명 발표를 생중계로 내보냈다.

몇 주 동안 영국 부모들을 분노하게 했던 여아 살해 사건은 피해 어린이의 인권을 고려해 ‘베이비 P’ 사건이라는 이니셜로만 세상에 알려졌다. 런던 북부 해링게이 지역에서 생후 17개월 된 아이가 온몸에 수십 군데의 상처를 입은 채 시체로 발견된 것.

발견 당시 아이는 등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든 상태였다. TV 뉴스에 아이가 입고 있던 피 묻은 옷이 공개됐고, 이어 아이의 얼굴도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베이비 P’는 생후 9개월부터 부모에게 상습적인 구타를 당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의 엄마는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받은 전력도 있었다.

딸 감금해놓고 실종 신고



그러나 부모의 자녀 학대라는 사건 개요보다 정작 영국인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정부의 아동보호시스템이었다. 국민들은 해당 지역 경찰, 의료기관, 사회복지사 등이 이미‘베이비 P’에 대한 수십 차례의 아동학대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아동보호 책임을 지고 있는 이들 중 누구라도 ‘베이비 P’를 학대 부모에게서 떼어내 보호시설에 맡겼더라면 끔찍한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것은 아동보호 책임을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 당국자의 발언이었다. ‘베이비 P’ 사건 조사를 주관한 해링게이 지역의 아동보호국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타깝긴 하지만 아이를 죽이려고 작심한 사람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느냐”며 ‘감독기관 책임론’을 부인하고 나섰다.

어린이의 안전과 복지 문제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최우선시해온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이 당국자의 발언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민심은 들끓었고 이 관계자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심지어 가족들을 살해하겠다는 협박편지까지 날아들었다.

결국 아동부 장관이 직접 나서 사건 재조사를 지시했고, 해링게이 지역의 아동보호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됐다. 해당 지자체장은 보고서가 공개되자 곧 사임했고, 문제 발언의 당사자도 면직 조치됐다.

아동부 측은 보고서에서 경찰, 의료기관, 사회보호시설 등 유관기관 간 정보 공유나 업무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감독 당국보다 가족의 책임이 더 무겁다’는 일선 지자체의 주장에 맞서 ‘아동보호에 관한 한 사회적 책임이 우선’이라는 영국 사회 저변의 인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것이었다.

고든 브라운 총리의 최측근 중 한 명이기도 한 에드 볼스 장관은 “아동보호에 관한 한 예산 부족이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각급 교육청이 나서 전국적으로 아동보호시스템을 불시 점검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영국인들을 또 한 번 당혹스럽게 한 사건이 공개됐다. 한동안 신문 방송을 떠들썩하게 했던, 올해 아홉 살 난 소녀 샤론 매튜 실종 사건의 범인이 바로 샤론의 어머니인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모두 다섯 명의 서로 다른 남편에게서 일곱 명의 자녀를 둔 샤론의 어머니는 딸의 실종으로 언론의 관심을 끈 뒤 보상금을 타내려는 생각에 이런 자작극을 꾸민 것으로 드러났다. 이 비정한 어머니는 한때 딸의 양아버지였던 남자의 지인과 공모해 이 남자의 집에 딸을 감금해놓고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다.

경찰이 샤론을 찾기 위해 수색 작전을 펴고 언론이 관심을 보이자 어머니의 행동은 더욱 대범해지기 시작했다. TV 카메라 앞에 서서 연일 딸을 찾아달라고 호소하는가 하면, ‘가족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사람이 딸을 납치했을 것’이라며 남은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동정심을 유발하기까지 했다.

샤론 어머니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속아 넘어간 경찰은 300명이 넘는 병력을 동원해 사상 유례가 없는 수색 작전을 펼쳤다. 여기에 투입된 예산만 해도 수십 억원이 넘는다. 영국 전역에 있는 수색견 중 70% 이상이 동원되기도 했다.

영국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더 선(The SUN)’지가 제보자에게 40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 때만 해도 이 비정한 엄마의 계획은 착착 먹혀드는 듯했다. 그러나 실종 24일 만에 공범의 집 침대 밑에서 샤론이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실마리를 찾아가게 된다.

정부의 충실한 아동 보호 필요성 재확인

샤론을 한 달 가까이 감금했던 공범은 범행이 들통나지 않도록 아홉 살 어린이에게 ‘생활수칙’을 직접 작성해 외우게 했다. 또한 샤론을 혼자 놔두고 외출할 때는 줄에 묶어놓는 등 육체적 학대도 잇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샤론 사건에 대한 영국 언론의 관심 역시 ‘베이비 P’사건 못지않았다. 특히 딸을 찾아달라며 울먹이던 처량한 어머니와 모든 것이 밝혀진 뒤 법정으로 끌려가는 사악한 여성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많은 이들이 어린이를 상대로 한 흉포한 범죄에 치를 떨었다.

그런데 샤론 일가도 2003년부터 보호당국의 ‘지속적 관찰대상’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베이비 P’ 사건과 마찬가지로 결손가정 아동보호 책임을 맡고 있는 유관기관들이 좀더 세심한 모니터링과 적절한 보호대책을 강구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사건인 셈이었다.

정부는 이들 유관기관에 샤론 일가족이 어떻게 보호 관찰되고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독립적 기관을 지정해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베이비 P’ 사건과 맞먹는 줄줄이 퇴출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베이비 P’와 샤론 사건을 통해 영국 사회는 값진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나쁜 부모보다는 충실한 정부의 보호가 아이의 미래에 훨씬 좋다는 깨달음이 그것이다. 영국은 지금 ‘부모에게 버려지는 아이는 있을지언정 정부로부터 버려지는 아이는 없도록 하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8.12.30 667호 (p58~59)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g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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