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5

2008.12.16

낚시 가는 척 흘리고 친구집에서 은둔

노건평 씨 잠적 9일 추적기 언론에 대한 극도 불신이 기피로 이어진 듯

  • 김해 = 윤희각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toto@donga.com

    입력2008-12-08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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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 가는 척 흘리고 친구집에서 은둔

    12월1일 오후 늦게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노건평 씨.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에 연루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66) 씨는 11월24일자 ‘동아일보’ 1면에 자신의 이름이 처음 거론된 이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이날 오전 8시 반부터 기자와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자택에서 1시간가량 인터뷰를 한 뒤였다. 인터뷰 도중 그의 집으로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가 집을 다녀간 직후 신문, 방송사의 전화와 취재 요청이 잇따르자 그는 부인 민미영 씨에게 “남해에 낚시하러 가겠다”고 말한 뒤 곧장 집을 나섰다. 그리고 12월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받고 2일 새벽 3시경 자택으로 돌아가기까지 그의 행방은 아흐레 동안 오리무중이었다. 노씨는 이 기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 낚싯대는 챙겨 떠났지만… 노씨는 11월24일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이후 몇 차례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그날그날 언론보도에 대해 궁금해했다. 기자는 신문과 방송에 거론된 의혹에 대해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농협의 세종증권 매각 과정에서 정화삼 씨 형제를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소개해준 대가로 돈을 받았는지가 첫 번째 질문이었다. 정씨 형제가 경남 김해시 내동에 차린 성인오락실의 실소유주가 노씨라는 의혹과 이들에게 오락실 수익을 받았는지 여부도 물었다. 그가 대검찰청에 출두하기 전까지 검찰이나 언론이 제기했던 의혹들이다.

    이에 대한 노씨의 대답은 늘 “사실과 다르다” “돈을 받은 적 없다” “절대 죄를 짓지 않았다”였다. 아흐레 동안 여러 차례 통화했지만 노씨는 유독 자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다. 기자가 “만나고 싶다” “어디에 계시냐?” “부산 친척집에 계시다는 게 맞느냐?” “기자회견을 하는 게 사실이냐?” “남해에서 낚시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그의 근황을 물어봤다.

    언론매체는 11월24일부터 ‘지인과 남해 일대에서 낚시하고 있다’ ‘남해 낚시터 인근 시장에서 생선회에 소주를 한잔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놨다. ‘부산 동래에 있는 조카사위 정재성 변호사(법무법인 부산)의 집에 있다’ ‘기자회견을 하러 봉하마을로 가겠다’는 보도도 있었다.



    취재 결과 노씨가 11월24일 자택을 나설 때 낚시도구를 챙긴 것은 사실이지만 남해에는 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부는 겨울 낚시는 위험요소가 많아 함부로 출조하지 않는다. 자신을 집요하게 취재하는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일부러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노씨의 한 측근은 “봉하마을에서 가까운 진영읍내의 친구 집에 머물면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며 수차례 결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은 “(노씨가) 낚시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는 마당에 한가롭게 낚시를 할 만큼 낚시광은 아니다”라며 “이동할 때도 취재진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지인의 차량을 이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언론이 싫어요 노씨가 아흐레 동안 행방을 감춘 것은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으로 보인다. 2002년 12월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날, 노씨는 모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끊임없이 동생 뒷바라지를 한 ‘자랑스러운 대통령의 형님’으로 평가받았다. 언론들이 앞다퉈 그와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곳곳에서 시골 어른의 소박한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언론에 비친 그의 모습은 좋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2003년 5월 노씨의 거제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이듬해 3월 남상국 전 대우건설 회장에게서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기자들은 봉하마을로 몰려갔다. 2004년 7월 그는 이 사건 및 부동산 의혹과 관련해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은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 후 또 한 번 말썽이 일었다. 담당 재판부가 판결문 낭독에 이어 “대통령 임기가 많이 남았으니 자중자애하고 각별히 처신을 조심해 다시는 대통령 친인척으로 인한 물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으로 3분에 걸쳐 훈계문을 읽었다. 그러자 노씨는 다음 날 바로 재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고만 하면 될 일이지 훈계를 왜 하느냐. 훈계는 판사의 권한 밖 아니냐”며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바로 구설에 올랐다. 이 재판장은 아직 창원지법에 근무 중이다.

    법원 출두 과정에서 법관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것도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일부 언론은 기사 제목에 ‘법관 노건평’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노 전 대통령 취임 뒤 약 1년 반 동안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긍정이 아닌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지인들은 이 때문에 “건평 씨가 언론에 의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조사를 받은 다음 날 12월2일 오전, 그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론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만일 내가 무혐의를 받으면 명예회복을 해줄 것인가?” “모 방송사는 사주가 바뀌고 나니까 목욕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모양”이라며 자신을 집중 조명한 데 대해 불쾌해했다. 특정 신문에 대해서는 “악질적”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 자살 해프닝 노씨가 아흐레 동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곳곳에서는 여러 해프닝이 벌어졌다. 11월26일 오후 그는 한 언론사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분을 삭이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통화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이 와전돼 11월26일 밤 노씨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검찰과 경찰에 퍼졌다. 자살 시도 장소가 부산의 모 호텔이라는 괴담도 나왔다. 자해 과정에서 피를 흘렸다는 구체적인 상황까지 묘사됐다. 검찰과 경찰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자살 시도 장소가 부산의 모 호텔’이라는 소문이 떠돌자 부산지방경찰청은 당시 정보과 형사와 지구대 당직 경찰을 출동시켜 부산 시내 모든 호텔을 샅샅이 뒤졌다. 또 하루 동안 자살 시도와 관련된 첩보를 입수하느라 전전긍긍했다. 이내 경찰은 노씨의 말이 와전돼 생긴 해프닝이라고 결론 내렸다.

    검찰 출두 전날인 11월30일 밤 자택에서 노씨 조모의 제사가 있었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수십명의 취재진과 카메라가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자택 앞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절이라도 한번 하려고 했는데 (집 앞에 기자들이 너무 많아) 안 되겠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노씨의 최근 처신은 자신에 대한 의혹을 부풀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게 중론이다. 자신을 둘러싼 새로운 의혹이 계속 불거지는데도 그는 해명은커녕 몸을 숨기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아흐레 동안의 잠적 끝에 노씨가 외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12월1일,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리고 4일 검찰은 법원의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그를 구속했다.

    “죄를 짓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하는 노씨 자신과 ‘친노’ 인사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둘러싼 의혹의 진실은 하루빨리 밝혀져야 한다.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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