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1

2008.11.18

한 가족 파탄낸 몹쓸 학교폭력!

집단폭행·성추행 겪고 PTSD 시달리는 중학생 가족도 정신적 충격과 치료비로 고통스런 나날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8-11-13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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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내내 엄마는 불안해했다. 혹시 아이가 돌출행동을 하지 않을까 연신 인터뷰 룸 밖을 쳐다봤다. 북받치는 설움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내가 왜 이래야 합니까? 아들이 왜 저렇게 됐나요?” 인터뷰는 그렇게 자주 끊겼다.

    엄마는 지난 1월22일 한 방송사 교양정보 프로그램에 ‘왕따 아이의 복수’란 제목으로 아들의 사연이 방영된 양옥희(51) 씨. ‘왕따 아이의 복수’편은 어느 날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한 아들 현민(가명·15) 군을 도와달라는 양씨의 제보에 제작진이 제주의 한 중학교를 찾아 현민 군의 폭력성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자다가도 불쑥 가해 학생 잡으러 간대요”

    현민 군은 1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집단폭행을 당했고, 강요에 의해 친구와 싸움을 해야 했다. 가해 학생들은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는 바지를 벗기고 성추행했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현민 군은 오히려 폭력적으로 변했고, 화장실에서 치약과 샴푸로 눈을 씻으며 “강해져야 해. 울면 안 돼”라고 중얼거리는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를 보였다. 2007년 9월 현민 군은 폭력 가해자가 돼 등교정지 처분을 받았다.



    “학교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현민이가 폭력적이라서 등교를 정지시킨다기에 처음엔 황당했죠.”

    한 가족 파탄낸 몹쓸 학교폭력!

    눈을 씻으며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현민 군의 방송 당시 모습.

    제주시교육청은 방송 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민 군에 대한 치료 지원을 약속했다.

    그로부터 10개월. 모자(母子)에게 바뀐 것은 제주에서 서울로 이사한 것과, 현민 군이 국립정신병원에 입원해 6개월 치료받은 뒤 부설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것뿐이다.

    당초 서울 중곡동 현민 군 집에서 진행하려던 인터뷰는 아이가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는 엄마의 염려로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사 인터뷰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넷을 하면 잠시 안정을 찾는 현민 군은 ‘주간동아’ 사무실 빈자리에서 인터넷을 했다.

    “아들 발과 제 발을 끈으로 묶고 잡니다. 제주도에 있을 때부터 자다가도 불쑥 가해 학생을 잡으러 간다는 거예요. 그땐 우도까지 가서 이틀을 보내며 안정시켰죠. 요즘은 제주는 아주 멀다고, 잊으라고 합니다.”

    현민 군은 1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55만원짜리 49㎡(15평) 주택에서 엄마 아빠, 형과 함께 산다. 뇌출혈 후 치료 중(장애 5급)인 아빠(56)는 현민 군의 복수심이 타오르면 역부족이다. 가장이 된 엄마는 가사도우미로, 식당 일로 가족을 부양한다. 차상위 계층으로 인정돼 일부 병원비를 보조받지만 화병을 잘 다스린다는 한약 등 월평균 100만원 약값이 버겁다.

    순간 인터뷰 룸의 문이 열렸다. 현민 군이 들어서며 “어떤 여자가 지나가면서 기분 나쁘게 째려보는데요, 때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다. 양씨는 아들을 달랬다. 이후 현민 군은 세 번 더 인터뷰 룸 문을 열고 비슷한 질문을 되풀이했다.

    학교·가해자와 보상문제 해결 안 돼

    “아직 저래요. 분노 때문이라는데…. 가끔은 (가해 학생에게) 사과 받으러 가재요. 사과 받는다고 낫습니까? 보면 오히려 더 (분노가) 끓어오를 텐데요.”

    그는 담임교사가 현민 군의 폭행 사실을 인지하고 설문조사를 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아들의 편지만이라도 먼저 보여줬더라면 이 정도는 안 됐을 것이라고 흐느꼈다. 당시 담임교사는 “그게 무슨 애절한 편지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 방송돼 누리꾼(네티즌)들의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

    방송 후 가해 학생 부모들이 찾아와 사과했고, 학교장은 합의를 보자고 했단다. 하지만 현재까지 보상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양씨는 10월17일 ‘법적 조치 예고’ 내용증명을 학교로 발송했다.

    “당시 A 교장(지난 8월 정년퇴직)이 합의를 보자고 했어요. 학교안전공제회 보상심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 수차례 장애진단서를 보냈어요. 그런데 차일피일….”그는 ‘집안이 파탄났는데 돈은 무슨’ 하며 자책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은 ‘가해 학생들은 (폭력에 대한 처벌로) 청소 몇 번(봉사활동) 하고 지금도 학교에 잘 다니는데’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엄마는 이제 힘이 부쳐 보였다. “아들이 갑자기 ‘엄마 그때 뭐했어요? (가해 학생들이) 나 때리고 심부름 시킬 때 뭐했어요?’라고 쏘아붙여요. 그땐 ‘미안하다. 몰랐구나. 힘들었겠구나’라고 합니다. 언제까지 이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보상액은 어느 정도?

    학교·공제회 6000여 만원 맞춘 듯


    현민 군 사건의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다. “아는 게 없다”는 반응이었다. 제주시교육청의 지원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듯했다.

    제주학교안전공제회에 현민 군의 장애급여 보상심사 청구가 접수된 것은 지난 7월29일.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2007년 9월1일 시행)이 개정되면서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공제회에서 먼저 보상하고 가해자에게 금액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일종의 구상권(求償權) 행사인 셈. 현민 군의 경우 가해 학생이 명확히 존재하므로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보상이 늦어지는 걸까. 제주학교안전공제회 측은 “법률 시행 후 보상심사위원회 등 운영규정을 만들어야 했는데 시간이 걸렸다. 최근 위원회가 구성돼 조만간 학교 측에 당사자 간 해결 권고안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신설 규정에 따라 당사자 간 해결이 안 되면 90일 이내에 보상심사를 청구해 위원들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장애급여의 경우 사무국 권고에 대해 불복률이 높아 추가 절차 규정이 필요했다는 얘기인데, 1년여 시간이 지나 보상심사 규정을 만들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A 교장과 공제회 측은 합의금으로 6000여 만원에 맞춘 것으로 확인됐다. 공제회 측은 “A 교장이 6000만원 정도면 합의가 될 것 같다고 하기에, 장애급여를 계산해보니 대략 3000만~4000만원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고 했다.

    A 교장은 가해 학생 부모와 교사 등을 대상으로 별도로 3000여 만원을 모았으며, 이 돈은 현재 학교에 보관 중이다. A 교장은 “금액이 구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면 합의가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씨는 “모금부터 공제회 규정 신설까지 알려준 게 하나도 없다.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 황우여 의원실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 학생 성범죄(성희롱, 성폭력) 사건은 2003년 22건에서 2007년 71건으로 223%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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