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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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센 놈

  • jockey@donga.com

    입력2008-11-03 0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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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봐도 좋은 기회란 건 말입니다, 말 그대로 누가 봤기 때문에 좋은 기회가 절대 아닙니다.”

    지난해 초 인기리에 방영된 MBC TV 메디컬 드라마 ‘하얀 거탑’에 나오는 대사 중 일부입니다. 드라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까지도 이른바 ‘거탑 폐인’으로 만든 이 드라마는 훌륭한 연기와 OST는 물론, 적지 않은 명대사들 덕분에 시청자들 사이에 화젯거리였습니다.

    ‘누가 봐도 좋은 기회.’이 같은 기회를 좇은 수많은 투자자들이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경제위기 탓에 체념하고 불면의 밤을 보내며, 때론 스스로 목숨까지 내던지는 게 2008년 가을 대한민국의 자화상입니다.

    펀드에 수천만원을 넣었다가 원금의 반 혹은 3분의 2를 날리거나, 떨어지는 집값 등 자산가치 하락으로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며 신경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뚜렷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호되게 덴 기억의 상처 때문이기도 할 테지요.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불안감을 떨치려면 나뿐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생각을 가져라”고요.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도 몇 마디 하더군요.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10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다.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 “문제는 심리적인 것이며, 실제 이상으로 상황에 과잉 반응하고 공포심에 휩싸이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다.”

    틀린 말이 아닌데도 좀처럼 마음이 후련해지지 않는 이가 비단 저뿐일까요?

    저는 오히려 ‘시골 의사’로 잘 알려진 경제평론가 박경철 씨의 다음과 같은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바로 그날, 자신의 주식투자서 완간을 기념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의 전망도 추종해야 할 미래가 아니다” “누구의 전망이라도 ‘가능성의 기준’으로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낙관론 쪽인지 비관론 쪽인지조차 모르겠다.”

    그 역시 증시 폭락에 대해서는 “불안심리 자체가 불안의 요인”이라고 분석했지만, 지나치리만큼 단정적인 대통령의 말보다는 훨씬 진솔하게 들립니다. 박씨는 덧붙입니다. “결국 봄은 올 테니 그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시장은 살아남는 자에게 돈을 벌게 해준다. 그러나 어느 것이 살아남는 방법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헤밍웨이의 말대로 해는 또다시 떠오르겠지요. 하지만 살아남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찬란한 태양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얀 거탑’의 명대사에 더욱 공감 가는 요즘입니다.

    “센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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