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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 릴레이 에세이

잡아놓은 물고기와 선물의 기쁨

‘내 인생의 황당과 감동 사이’

잡아놓은 물고기와 선물의 기쁨

내책상 위 달력에는 매달 여러 개의 기념일이 표시돼 있다. 각기 다른 스티커로 표시해둔 날짜들은 남편이 군대를 제대한 지, 우리 둘이 처음 만난 지, 또 결혼한 지 며칠이 됐는가를 나타낸 것들이다. 주위에서는 “대단하다”고도, “아직까지 그러고 사냐”고도 한다. 남이야 뭐라 하든 기념일을 챙기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 기다리기만큼이나 설레는 일이다.

연애시절 남편이 가장 두려워한 질문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였다. 그는 질문을 받자마자 오늘이 그 많은 기념일 중 과연 무엇인지,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털어놨다.

“자기야, 기념일이 중요한 건 알겠어. 근데 매번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남편에게 ‘기념일 = 선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모양이었다. 되짚어보니 남편에게 매번 선물을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찔렸다.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물질적인 것에 그치는 선물이 우리의 기념일을 압도하지 않게 해야겠다는. 그러나 여전히 선물은 준비하기로 했다. 이번엔 남편이 무엇을 준비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도록 우리 둘 모두를 위한 선물을 말이다.

잡아놓은 물고기와 선물의 기쁨
그 후 나는 함께 찍은 사진으로 우표를 만들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았던 편지를 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둘이 나란히 입을 수 있는 파자마를 준비하기도 하고 같이 찍은 사진으로 액자를 만들어 그의 책상과 내 책상에 올려놓기도 했다. 남편이 선물을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면서 소중한 기념일을 챙길 수 있는 나만의 배려인 셈이다.

얼마 전 아내를 위해 기념일 좀 챙기라고 조언하는 내게 한 남자 동료가 뻔한 레퍼토리로 대꾸했다. “잡아놓은 물고기한테 먹이 주는 거 봤어?”

그는 모르는 게다. 그가 만든 어항 속에서 그의 사랑스러운 눈빛을 먹고 사는 행복한 물고기의 마음을.



주간동아 2008.11.04 659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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