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8

2008.10.28

자살은 더 큰 고통의 시작이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10-22 10: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자살은 더 큰 고통의 시작이다

    <b>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b> 오진탁 지음/ 세종서적 펴냄/ 256쪽/ 1만2000원

    1993년 일본 사회는 출간 첫해에만 82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완전 자살 매뉴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대표는 독자에게 ‘이렇게 하면 죽을 수 있구나’ 하는, 모종의 해방감을 안겨주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해석했다. 이런 책을 읽는 독자는 대부분 치유 불능의 병을 안고 있다는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인데, 그런 소외감에서 해방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아무리 매뉴얼을 좋아하는 일본이지만 이런 것까지 책으로 펴내고 또 그렇게 많이 읽힌다는 게 신기했다. ‘무사들의 할복을 용인하는 일본이니 그렇겠지’ 하고 가볍게 넘겨버린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2년에 자살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고라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한 ‘국민 여배우’가 자살하는 바람에 사회적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유명인이 죽은 다음 동조 자살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엄연하니 자살은 이미 개인 차원을 넘어선 중대한 사회문제다.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은 철학자 오진탁이 바람직한 죽음문화의 형성을 위해 펴낸 책이다. 그는 철학이 사회적 기여와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철학학회에는 참석하지도 않고 오로지 생사(生死)학의 연구와 교육, 그리고 사회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자살 방법을 세세하게 알려주는 책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다.

    생사학의 국내 최고 권위자인 저자는 생사학을 건강한 죽음문화를 모색하고 삶과 죽음의 균형 있는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고심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생사학에서는 죽음을 삶과 동등하게 인간의 일생을 구성하는 필수 단계로 보기에, 건강한 죽음을 건강한 삶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웰다잉’이다. 잘 죽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저자는 자살해선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살이 더 큰 고통을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살자들은 자살로 모든 고통이 소멸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살 시도자들은 가사 상태에서 겪은, 현실보다 더 무섭고 괴로운 고통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최면치료요법’이라는 임상경험에 따르면, 각자의 삶에 주어진 책임을 참을성 없이 벗어던진 환자들은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품게 되고, 자살을 선택한 순간부터 영혼은 후회와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자살은 자신의 신체 상태만을 변화시킬 뿐 상황을 바꾸지는 못한다. 자신을 옥죄어온 현실의 문제는 죽음 이후에도 그대로 남는다. 삶과 죽음의 순간, 죽음 이후는 우리 영혼에게 하나로 이어진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삶에서는 원래 감당해야 했던 과제와 함께 자살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잘 이해하면 결코 자살하지 않는다.

    자살자들은 왜 나만 고통을 당하는가, 자살하면 현재의 고통에서 단숨에 벗어날 수 있다, 이 세상과 사회가 나를 자살하게 만든다, 자살하면 세상과 완전히 결별할 수 있다는 네 가지 이유로 자살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이유들은 그야말로 오해일 뿐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크고 작은 고통과 고난의 순간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살자들은 자살을 정당화하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경제불황의 장기화, 외로운 독거노인, 군부대 폭력과 욕설, 성형수술의 유행, 인터넷의 역기능과 악플, 지나친 학습부담 등을 대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다. 사회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도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죽어줄 수도 없다. 또 죽음은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기회로, 육신이라는 낡은 옷을 벗는 것에 불과하다. 죽음의 과정이 인연이 다한 육신의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통과의례임을 직시한다면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죽음으로 이 세상과 완전히 이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며, 또한 죽음을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자살은 더 큰 고통의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자살을 크게 줄이려면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갖도록 죽음과 삶의 참된 의미를 가르쳐야 한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한다. 책에서는 수많은 자살 사례가 예시된다. 책의 끝에는 저자가 대학에서 행한 자살예방교육의 경험담이 붙어 있다. 나 또한 청소년기에 자살소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 저자의 강의를 들은 대학생들이 더욱 살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삶의 고통은 우리 영혼이 비루하고 유한한 육신의 삶을 넘어 아름다운 영혼으로 성장하도록 신이 내린 선물일 뿐이란 것을 깨닫기 바라며….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