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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년, 한국을 일으킨 글로벌 기업 ①|삼성전자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지난해 매출 1034억 달러로 전 세계 전기전자업계 3위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 2008년은 대한민국 건국 60년이 되는 해다. 1948년 갖은 악조건에서 출발한 한국경제는 그간의 여러 가지 국내외적 역경을 극복하며 국부를 창출했다. 이 같은 성공신화의 견인차는 기업이었다. 걸출한 최고경영자(CEO)의 남다른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글로벌 기업을 탄생시켰다.건국 60년을 맞아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온 대표기업들을 재조명한다. <편집자>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설치된 삼성 광고 전광판.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박모(31) 씨는 미국에 있을 때 북한 관련 뉴스가 보도되면 난감해지곤 했다. 주위 미국인들이 남한과 북한을 구별하지 못해 박씨에게 “너희 나라에 핵무기가 실제로 있느냐”는 등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던 것.

몇 번 시달리다가 그는 ‘삼성’ 덕분에 곤경에서 벗어났다. ‘South Korea’와 ‘North Korea’를 자꾸 혼동하는 미국인에게 ‘Samsung Korea’라고 말했더니 이후엔 헷갈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Samsung’과 ‘South’가 둘 다 ‘S’자로 시작하기도 하거니와 삼성 브랜드가 그만큼 유명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수업 시간에도 삼성 덕을 자주 봤다. 국제경영, 마케팅, 경영전략 등의 과목에서 삼성전자의 성공 사례를 소개해 교수와 동료 학생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스터디 팀을 꾸릴 때도 박씨는 여러 학생들이 자기 팀으로 유치하려는 ‘0순위’로 꼽혔다. 박씨가 삼성전자 자료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씨는 경영학 교과서를 사면 으레 책 말미에 붙은 색인을 들여다본다. 거의 대부분의 책에 ‘Samsung’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박씨는 뿌듯함을 느끼며 형광펜으로 관련 내용을 색칠한다. 박씨는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는 삼성에 대해 막연한 반감을 가졌다. 재벌, 부(富)의 편중, 무(無)노조 등의 이미지가 떠오른 탓이다.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는 김모(48) 박사도 미국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삼성의 사례를 선택해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할 즈음이어서 관심의 대상이 될 때였다.



정부 고위 관료를 지낸 정모(60) 씨는 ‘자식 농사’를 잘 지었다는 찬사를 들을 때마다 흐뭇해진다. 박봉과 격무에 시달린 중앙부처 공무원 처지 때문에 두 아들을 충분히 뒷바라지하지 못했지만 장남은 삼성전자에, 차남은 메이저 언론사 기자로 취직했다. 장남을 결혼시킬 때 사돈 측에서는 “삼성전자에 다닌다면 대한민국 일등 신랑감”이라는 반응이었다.

삼성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삼성의 인지도가 더 높다. 한국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애니콜 신화’ 덕분에 삼성 브랜드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수두룩하다. 상당수 외국인 소비자들은 삼성이 최선진국 기업의 브랜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건희 전 회장 퇴임 탓 리더십 걱정하는 분위기도

한국의 국가대표 선수 격인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최근 들어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삼성전자가 세계 무대에서 고전하는 기미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삼성을 상징하는 이건희 전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임 탓에 경영 리더십을 걱정하는 분위기도 심상찮다. 삼성전자의 기술 프로젝트를 여러 번 맡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공대 K교수는 “삼성전자가 지난 몇 년간 호황에 너무 안주해 절체절명의 각오로 기술개발에 매달리던 개척정신이 쇠퇴한 듯하다”며 걱정했다. 삼성전자의 경영상황을 오래 연구한 장세진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지난 4월에 낸 저서 ‘삼성과 소니’에서 삼성전자의 문제점에 대해 “공포경영으로도 불리는 기업문화 때문에 삼성 직원들은 재직 중에 엄청난 충성심을 갖지만, 해임당한 경우에는 그에 버금가는 배신감과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며 “후발주자로서의 겸손함이 사라지면서 내부의 자만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경영성과가 높아짐에 따라 내부조직의 문제에 둔감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삼성전자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조언을 하는 모 인사는 “경직된 조직문화가 오늘날 위기의 불씨를 낳았다고 보는데, 골프를 못 치는 임원을 머리가 나쁘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게 한 사례”라면서 “역설적이지만 그런 위기론이 조직문화 쇄신을 위해서는 오히려 다행스런 계기이며 최근 들어 임직원들이 이를 자각하기 시작한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인근에 자리한 삼성올림픽홍보관을 관람 중인 관광객들(왼쪽). 베이징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 광고판.

‘삼성전자 호’라는 거함을 이끄는 선장 격인 이윤우 부회장은 지난 5월 취임사에서 “스피드와 효율 중심의 경영혁신을 기본으로 하고, 창조경영으로 발전시켜 삼성전자를 21세기의 진정한 초일류기업으로 만들자”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한 바 있다. 솔선하는 리더십을 보이기 위해 이 부회장은 미국의 메모리카드 업체인 샌디스크 인수를 타진하고 해외 사업장 점검차 외국 출장을 강행군한다. 합리적인 ‘이윤우 리더십’이 격랑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임직원들이 적지 않다.

삼성전자는 삼성그룹의 간판기업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삼성’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휴대전화 부문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정상급 기업이므로 소비자들에게 매우 친숙하다.

전 세계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는 얼마나 될까. 무려 177억 달러로 평가된다. 2006년 161억 달러, 2007년 169억 달러에서 올 여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다. 삼성전자는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부터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올림픽 후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올림픽 마케팅은 삼성 브랜드를 짧은 시일 안에 세계적 브랜드로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구실을 했다.

삼성그룹은 그룹 전체를 총괄 지휘하는 조직인 전략기획실이 해체됨에 따라 각 계열사가 삼성 브랜드의 가치를 함께 키우자는 취지에서 브랜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최근 브랜드위원회에서는 스포츠 마케팅에 더욱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계열사 가운데 이 분야에서 삼성전자가 앞장설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소비자와 ‘감성적 소통’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글로벌 브랜드 캠페인 2.0’이란 마케팅 전략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전자제품에 예술혼을 불어넣어 명품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를 상징하는 인물을 연속적으로 띄운다. 이 ‘아이콘 시리즈’의 첫 대상자로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를 선정했다.

전자제품과 예술혼의 결합으로 전 세계 호평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작업 중인 연구원(왼쪽)과 삼성전자 이윤우 대표이사 부회장.

9월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삼성 디지털 전시회장에는 발렌티노를 비롯한 패션, 영화계 유명인사들이 줄줄이 입장해 오스카상 수상식장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연단에 선 발렌티노는 “삼성전자가 디지털 기술을 통해 디자이너들의 영감을 혁신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생각한다”면서 “아이콘 시리즈의 첫 대상자로 뽑혀 무척 영광”이라고 말했다.

‘붉은 실 :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영감과 열정’이란 주제로 뉴욕에서 일주일간 진행된 이 전시회는 장소를 영국 런던으로 옮겨 9월14~19일 열렸다. 발렌티노의 생애, 경력, 디자인 과정, 주요 작품 등을 삼성전자의 HDTV와 풀HD 캠코더로 보여줬다.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지난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디지털 가전전시회 ‘CES 2007’의 삼성전자 부스가 해외 바이어와 업계 관계자들로 붐비고 있다(왼쪽). 삼성 서초사옥 조감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 브랜드전략팀장인 심수옥 전무는 “발렌티노의 모험심과 심미안을 잘 전달했다고 본다”면서 “한 단계 진화된 이런 마케팅 활동을 통해 글로벌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거듭날 것”이라 말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은 63조1800억원, 당기순이익은 7조4300억원이었다. 미국 달러화 표시의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는 지난해 매출액이 1034억 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 전기전자업계에서 ‘동메달’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 1000억 달러 매출 기록은 한국 기업으로서는 처음이다. 금메달은 지멘스, 은메달은 HP(휼렛패커드) 몫이었다.

양적인 성장뿐 아니라 발전상도 만만찮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60나노 2기가 D램, 30나노 64기가 낸드 플래시 등 첨단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의 사업 부문은 크게 5개로 나뉜다.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정보통신, 디지털미디어, 생활가전사업 등이다. 2007년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반도체 부문(18조6600억원)과 정보통신 부문(19조5500억원)이 쌍두마차 구실을 한다. 이들 2대 부문은 2004~2007년에 각각 연간 18조~19조원대의 매출액을 올려 선의의 경쟁을 벌였다. 반도체 부문의 D램과 정보통신 부문의 애니콜이 자존심을 걸고 승부를 겨루는 양상이다. 매출액 성장세로 보면 LCD 부문이 2004년 8조6900억원, 2005년 9조7100억원, 2006년 11조7000억원, 2007년 14조6600억원 등으로 단연 앞선다.

현재 세계 1위 제품 11개 … 4년 내 20개 이상으로 확대 방침

삼성전자에서는 대규모 사업부문 조직에 ‘총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반도체총괄’ ‘LCD총괄’ ‘정보통신총괄’ ‘디지털미디어총괄’이 그렇다. 생활가전사업은 ‘생활가전사업부’다. ‘총괄’이라는 단어는 그 조직 자체가 독자적인 기업단위로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만큼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 막중하고 권한도 막강하다.

반도체총괄은 세계 반도체산업을 선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분초를 다투는 기술개발 경쟁에서 앞서나가는 덕분이다. 그러나 D램과 낸드 플래시가 지난해 이후 과잉 공급돼 업계 전체가 고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에서는 56나노 공정을, 낸드 플래시에서는 42나노 공정을 도입해 원가경쟁력을 높여 돌파구를 찾았다.

LCD총괄은 베이징올림픽 특수와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시장에서의 LCD TV 보급 확대에 힘입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경쟁업체들의 원가절감과 매출 확대로 시장경쟁이 치열하다. 삼성전자는 대형 패널을 중심 제품으로 내세우면서 TV 부문에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LED, FHD 등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정보통신총괄은 800만 화소 카메라폰, 전면 터치스크린폰 등 여러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여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시장 준비에도 박차를 가한다. 중국 인도 등 신흥지역에 유통망을 확대하는 데도 주력한다.

디지털미디어총괄의 경우 평판 TV의 높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LCD 모니터, 디지털 AV, 레이저 프린터 등 전략제품이 잇따라 호평을 받고 있다. 생활가전사업부는 드럼세탁기, 시스템 에어컨, SBS 냉장고 등이 좋은 반응을 얻어 고무된 분위기다.

삼성전자는 내년 11월1일에 창립 40년을 맞는다. 미래전략을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다. 매출 100억 달러 이상의 주력사업을 메모리, 휴대전화, LCD, DTV 등 4개 부문에서 앞으로 프린터, 비메모리(시스템 LSI) 등을 추가해 모두 6개 부문으로 확대한다. 세계 1위인 메모리, LCD, DTV는 원가나 품질 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하는 혁신제품을 계속 내놓아 업계 지존 자리를 유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반도체 D램의 경우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미세하게’ 등 3대 차별화 전략으로 후발업체를 따돌린다는 전략이다. D램 주력 제품을 512Mb에서 1Gb로 교체하고, 차세대 D램인 DDR3로 성능을 높이고, 주력 공정을 50~60나노대로 올려 경쟁업체의 70~80나노 공정보다 더 미세한 작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LSI는 공정기술 혁신으로 조기에 일류 수준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잡았다. 스마트카드칩, 디스플레이 구동칩, MP3 플레이어용 칩 등 일류화 8대 제품을 집중 육성한다. 시스템 LSI 분야에서도 2002년 세계 20위, 2003년 18위, 2007년 14위 등으로 꾸준히 순위를 높이고 있다. 권오현 총괄사장이 “이 분야를 확실히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 2위인 휴대전화는 고객 중심으로 제품 구조를 개선하고 글로벌 운영 효율을 높여 1위인 노키아를 추월하고 3위 모토롤라를 더욱 뒤로 제칠 작정이다. 삼성의 휴대전화는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최고급 제품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삼성전자의 제품 가운데 현재 세계 1위 제품은 11개다. 앞으로 4년 이내에 20개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새로운 사업영역도 개척한다. 미래 성장 엔진인 바이오·헬스, 에너지·환경 등에서도 기술 확보와 사업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디지털미디어총괄이 밝힌 주요 미래 제품은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풀HD의 4배 해상도인 UD(Ultra Definition) TV △3차원 인터랙티브 TV △초박형 LCD TV 등이다.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

혁명, 또 혁명…디자인이 살길이다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삼성 TV ‘PAVV’.

삼성전자는 1996년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이후 강력한 혁신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CEO 직속의 디자인경영센터를 가동, 상품을 개발하기 전 디자인을 먼저 확정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 센터에서는 삼성의 첫 ‘10 밀리언 셀러’ 제품인 T100(일명 이건희 폰)에서부터 보르도TV에 이르기까지 명작을 줄줄이 내놓았다. T100은 휴대전화업계 최초로 TFT-LCD를 도입해 삼성전자 휴대전화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격상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보르도TV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을 꼼꼼히 분석해 기존 TV 개발의 초점이었던 화질, 음질 등 기능 중심에서 벗어나 디자인 요소를 강화했다. 덕분에 세계 LCD TV 시장에서 처음으로 선두에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전 세계 소비자를 눈여겨 살펴야 하는 만큼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중국 등에 해외디자인연구소를 세웠다. 이곳에서 각각 현지의 소비자 행태와 디자인 감각을 분석한다.디자인 전문 교육기관인 SADI를 운영해 인력을 기른다. SADI는 뉴욕의 명문 디자인 학교 파슨스와 손잡고 선진화된 커리큘럼을 진행한다. 제품디자인학과에는 경영학 생물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전공의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몰려와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전자는 2005년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2 디자인 혁명’을 선언하면서 △독창적 디자인과 유저 인터페이스 체계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을 뼈대로 한 4대 디자인 전략을 밝힌 바 있다.


창업 초기 비화

여공들 지문 문드러질 정도로 일해


‘한국’ 몰라도 ‘삼성’은 안다 177억$ 가치 ‘명품 브랜드’

서울 중구 삼성본관.

삼성전자는 창업 초기 가전제품 생산업체였다. 사운을 걸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83년 2월 초. 당시 일본 도쿄에 머물던 이병철 삼성 회장이 64KD램 제조에 나서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150여 명의 엘리트 사원으로 구성된 신규사업팀은 신들린 사람처럼 국내외를 뛰었다. 해외 두뇌 확보, 설계기술 도입은 물론 미국 현지법인을 세우고 국내 공장을 건설하는 일 등을 한꺼번에 서둘렀다.

다행히 미국 내에서도 꽤 알려진 한국인 고급 두뇌들을 ‘애국심’에 호소하며 스카우트했고, 미국 마이크론사(社)와 일본 샤프사로부터 64KD램 기술 일부를 도입했다. 1983년 8월 64KD램 조립생산에 성공한 데 이어 그해 12월 드디어 자체 개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 소식은 외국 업체에 충격을 던졌다. 그 짧은 기간에 삼성이 개발한 사실이 불가사의한 일로 비쳐졌다. 이런 ‘개발신화’는 야전용 침대에서 잠시 자고 눈만 뜨면 연구에 몰두하는 한국 기술자들의 열정에 의해 이뤄졌다.

가전제품업체로 흑백 TV를 생산할 때인 1974년 무렵, 여공들이 흘린 피땀도 오늘날 삼성전자의 모태가 됐다. 수출 물량을 생산하느라 바쁠 때는 종업원들이 일주일 동안 집에도 가지 못하고 전기담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곤 밤을 새면서 일했다. 김광호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얼마나 일을 시켰던지 여공들은 발이 부르터 신발을 못 신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했다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노력했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간 여공이 지문이 문드러져 주민증을 만들지 못하고 울면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울었지요. 아픈 기억들이지만 좋아서 열심히 일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렇게 일을 시키면 악덕 경영자라고 쫓겨날 겁니다.”




주간동아 2008.10.14 656호 (p54~58)

  • 고승철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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