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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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생활 백서

문명화된 사회 매너가 곧 실력이다

  • 김민경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입력2008-10-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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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너 생활 백서

    일러스트레이터·조은명

    “매너 없이 미스 A가 하나 남은 주차 자리를 가로채는 거야. 나이도 어린 여자가 매너 없이 그랜저를 타고 말이야.”

    오늘도 무(無)매너 부장의 하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하직원을 흉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인사는 “어, 왜 이렇게 돼지가 됐어?” “머리가 훤해졌네” “주름이 자글자글한데 올해도 시집 안 가나?” 등 아픈 곳에 던지는 한 줌의 소금. 모두들 슬슬 피해간다. 그러나 모든 매너지수(MQ) 박약자의 특징은 타인의 반응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점.

    그는 ‘을’의 상대가 보낸 e메일에 답을 하는 법이 없다. 업무상 오가는 e메일 명함에 늦둥이 딸아이 사진을 첨부함으로써 아이가 없는 외국인에게 특별한 악감을 사는 것도 무매너 부장만의 스타일이다. 다른 팀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나 다른 팀의 아이디어를 임원 회의에서 ‘특종 보도’함으로써 그의 부서 전체가 ‘무매너’하다는 눈총도 받는다.

    식당에선 물수건에 침을 뱉고, 종업원들에겐 으레 반말을 하는 그가 유일하게 ‘매너’를 빛내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와인모임과 골프장에서다. 와인과 골프에 무지하던 시절엔 “와인은 아무거나” “골프는 사치”라고 말하던 그가 대세에 굴복해 저녁마다 와인강좌와 골프연습장에 다녔다. 그 시간만큼 야근수당을 챙긴 건 물론이다. 요즘 그는 와인을 주문할 때마다 소믈리에를 불러 “와인이 갔다” “덜 열렸다”며 ‘와인 매너’를 과시한다. 골프장에선 어제 술을 마셔서, 스윙을 고쳐서, 의무방어전을 해서 ‘갑자기’ 공이 맞지 않는다는 변명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무매너 부장은 와인 상식 말미에 결국 알마비바 같은 와인을 주문해 소주나 맥주를 섞어 돌리거나, 18번 홀에서 오비를 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바로 카트로 가버리는 것으로 하루가 가기 전에 ‘진상 무매너’의 본색을 드러낸다.

    사회학자 노버트 엘리아스의 주장처럼 ‘매너란 곧 문명화(civilizing process)’고, 지식과 교육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말할 때 무의식중에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고위 관료가 물을 먹거나, 정상회담에 국산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이라고 내놓은 일이 외교 망신이 되는 건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당대의 문명이 요구하는 매너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사회에서 비(非)매너는 종종 ‘악덕’과 동일한 결과를 빚곤 한다. 특히 글로벌, 다문화 사회에선 ‘몰라서’ 매너 없고 무례한 인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매너는 실력이다. 매너도 아는 만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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