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2008.09.09

낯섦 혹은 상상 뛰어넘는 매력

미술시장의 새로운 블루칩 제3세계 미술 … 인도·라틴 기획전 잇따라 열려

  • 김민경 주간동아 편집위원 holden@donga.com

    입력2008-09-01 14: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낯섦 혹은 상상 뛰어넘는 매력

    1.인도의 떠오르는 작가 지티시 칼랏의 작품 ‘Collidonthus’(2007). 실제 자동차 크기로 마치 자동차의 유골 같다. 2.‘인도 현대미술 4인전’에 참여한 작품. 친탄 우파디의 ‘Have a nice day’(2008)’, 3. 비엠 카마드의 ‘Stored Stories’(2008).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이란 미술의 종말에 대처하는 서구 미술가들의 고육지책이며 그럴듯한 변명이다. 아름다움에 대해 미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은 종국엔 전시장에 변기를 가져다 놓기도 하고, 자신의 똥으로 통조림을 만들기도 했으며, 상어를 토막내 놓기도 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누가 더 추악하고 엽기적인지를 겨루는 경쟁장을 방불케 한다. 오죽하면 한 비엔날레에 ‘현대미술이 꼭 추할 필요는 없다’는 현수막이 내걸렸을까.

    오랫동안 무시 비교적 저평가

    서구의 미술가들과 미학자들이 난감해하는 동안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정치적 구호와 팝아트를 결합해 새로운 형식에 도전했으며, 인도 작가들은 고달픈 현실을 응시하는 내적 존재를 발견했다. 또한 멕시코 등 남미의 거장들은 민족적 수난을 마술적 환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제3세계라고 불리는 아시아(러시아를 포함)와 라틴아메리카의 미술은 현대미술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직접적이며 과잉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이미지와 형태가 인간에게 불러일으키는 원초적인 감정이지만 서구의 모호한 현대미술에 익숙해진 관객에겐 또 다른 낯섦이 되는 것이다.

    지적이고 개념적인 미술에 경도된 세계 미술계는 오랫동안 제3세계의 미술 작품들이 가진 힘을 애써 무시해왔다. 중국과 인도, 러시아, 라틴아메리카의 현대미술이 재발견된 것은 이들 국가의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이들 나라 컬렉터들이 세계 미술계의 큰손으로 등장하면서부터다.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이 여전히 상한가를 치는 가운데, 비교적 저평가된 인도와 러시아 현대미술 작품들이 ‘포스트 차이나’의 컬렉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뉴욕과 파리의 대형 미술관들이 제3세계의 현대미술전을 기획해 ‘분위기’를 조성했고 크리스티 같은 옥션이 적극적으로 인도 작가들을 소개한 결과, 인도의 경매회사 오시안은 지난 2년 동안 국제시장에서 인도 작가의 작품 가격이 14배 올랐다고 발표했다.

    올해 경매에서 ‘탄생’이란 작품 가격에 26억을 기록한 프랜시스 뉴턴 수다, 수보드 굽타, 라잔 크리시난 등이 세계적인 스타작가로 떠올랐다. 중국 현대미술에 대해 ‘거품론’을 제기하는 한국 미술계도 인도 작가들을 발굴하는 기획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8월28일~9월24일까지 아라리오 서울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여는 지티시 칼랏(1974년생)은 독일과 미국, 광주 비엔날레 등의 전시를 통해 국내외적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 인도 뭄바이에 살고 있는 그는 인도의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을 팝아트와 전통적인 인도 미술로 절묘하게 표현했는데, 한편으로 ‘야만’적이며 다른 한편 ‘신비’로운 그의 작품은 그 자체가 ‘뭄바이’적인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8월23일까지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인도 현대미술 4인전’은 한층 더 ‘팝’적이다. 1970년대에 태어난 네 명의 작가 친탄 우파디, 비엠 카마드, 지지 스카리아, 딜립 샤르마는 햄버거나 콜라, 미니스커트, 고층 아파트 같은 현대 서구문명의 상징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인도의 신비주의적 시선 속에선 하나의 우화가 되기도 한다.

    소재·장르 구속 없는 비판정신

    낯섦 혹은 상상 뛰어넘는 매력

    4. 딜립 샤르마의 ‘Flying_Dragon’(2008), 5. 지지 스카리아의 ‘Observatory’(2008). 지지 스카리아는 한국에서 자주 전시를 가지는 작가로 한국 국립 창동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해 첨성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6. 라틴아메리카의 거장인 디에고 리베라의 ‘종료의 역사’ 연작.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11월9일까지 열리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은 디에고 리베라와 그의 아내이자 세계 여성주의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준 프리다 칼로,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페르난도 보테로, 루시오 폰타나 등 라틴아메리카의 ‘거장’급 작가 84명의 작품 120점을 선보이는 대형 전시다. 갤러리에서 열리는 인도작가전이 현대미술 감상의 ‘실전편’이라면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은 제3세계 미술을 제대로 배우는 일종의 ‘교과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세계 미술 작품들은 서구 현대미술이 봉착했던 문제를 언제나 ‘상상하지 못했던 표현기법’(박지향, 아라리오 갤러리 큐레이터)으로 돌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재나 장르에 구속되지 않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또한 예술가들의 사회비판적 정신이 얼마나 보편적이며 눈부신 가치인지도 보여준다.

    제3세계 미술 작품들은 1980~90년대 한국의 민중미술과 많이 닮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중미술이 가진 것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제3세계 미술을 이해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