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2008.09.09

새터민 아이들과 ‘경제야 놀자!’

대학생경제교육봉사 회장단 이색수업 실생활과 밀접한 경제용어 재미있게 습득

  • 김은지 자유기고가 eunji8104@naver.com

    입력2008-09-01 13: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새터민 아이들과 ‘경제야 놀자!’

    신문을 보며 사고 싶은 물건을 찾고 있는 새터민 아이들과 UJAT 자원봉사 대학생들. 일상 속의 물건들을 통해 자연스레 경제관념을 익히는 것이 ‘경제야 놀자’ 수업의 주제다.

    “나중에 신용카드 고지서가 나오면 60만원을 갚아야 하는 거예요.”(봉사자 김유진 씨)

    “에이~ 선생님, 너무 많이 쓰셨네요.”(웃음)

    다양한 지불방법을 알아보고 신용카드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 ‘경제야 놀자’ 레벨2반의 민호(가명)가 선생님에게 잔소리를 한다. 민호는 지난해 12월부터 수업을 들어온 터라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는 것은 물론, 때로 농담도 하면서 선생님에게 친근감을 표현한다. 한편 오늘 처음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현(가명)이는 “‘지불’이 뭐예요?” 하고 묻는다. 봉사자 선생님은 “우리가 뭔가를 살 때 돈을 내는 것과 같이 값을 치르는 거야”라고 경제용어를 일상적인 말로 설명해준다.

    새터민 청소년 경제교육 ‘경제야 놀자’는 2007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최근 청소년 경제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은행이나 여러 기관에서 경제 ‘조기’교육을 하고 있다. 비영리 경제교육봉사단체인 JA KOREA도 2002년부터 초중고,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초등학교에서 경제 프로그램을 가르쳐보니 반응이 참 좋았어요. 하지만 일반 초등학생 외에 특히 자본주의에 익숙지 않은 아이들에겐 이런 프로그램이 좀더 필요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따로 모임을 결성하게 됐어요.”(UJAT 회장 김유진 씨)



    3단계 레벨 분류 거의 일대일 수업

    JA KOREA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대학생 몇몇이 이렇게 의기투합해 UJAT(대학생경제교육봉사 회장단)를 결성한 것이다. UJAT는 몽골학교, 정동다문화학교, 한누리학교(새터민기관)를 찾아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누리학교에 취재를 간 8월 중순은 방학기간으로 월·수·금 주3회, 2시부터 5시까지 ‘경제야 놀자’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신문을 펼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오려 교재에 붙여보세요. 다 붙이고 나면 어떻게 지불할 건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적어보세요.”(김유진 씨)

    학생들은 신문 속의 물건을 보면서 애완견을 살까, 두통약을 살까 한참 고민한다. 결국 학생들이 고른 것은 각각 MP3, 음식, 산삼이다. “건강을 생각해야죠”라며 산삼 사진 뒤에 풀칠을 하는 철웅(가명)이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퍼즐이나 카드를 이용하고 조별활동을 하는 등 입체적인 수업을 준비해요.”(봉사자 이세원 씨)

    ‘경제야 놀자’는 새터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면 금방 출석률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전에 학생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를 조사하고 일일 시장, 면접놀이 등 흥미로운 활동을 기획한다. 레벨1부터 3까지 반을 나눠 7명의 선생님이 거의 일대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 레벨1반의 수업은 ‘도넛 만들기’. 상품 생산을 체험하고, 단위생산과 조립라인의 생산방법을 배워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실제로 도넛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종이에 그려진 도넛을 잘라 색칠을 한다. 정말 도넛을 만드는 줄 알았던 학생들이 실망한 표정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날 때 선생님이 나눠주는 도넛을 먹으며 좋아한다.

    “새터민 아이들이라고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또래의 여느 아이들처럼 왈가닥인 아이도 있고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는 아이도 있죠. 하지만 한번 마음을 열면 더 정들고 친해져요.”(봉사자 이주연 씨)

    전문가 초빙 특별한 시간도 마련

    새터민 아이들과 ‘경제야 놀자!’

    신문을 보며 사고 싶은 품목을 적고 있는 학생.

    경제용어나 개념이 낯선 것은 새터민이든 새터민이 아니든 마찬가지다. 실생활과 밀접한 지식을 배우는 경제교육의 특성상 새터민 아이들도 수업내용을 금방 이해하고 쉽게 익힌다.

    “마치 조기유학을 가면 외국어를 유창하게 배울 수 있듯, 새터민 아이들은 한국 문화와 경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빠릅니다.”(봉사자 최창익 씨)

    “전에 ‘음식 만들어 팔기’를 하려고 샌드위치를 만들었어요. 다른 건 다 무리 없이 이해하는데 ‘샌드위치’라는 말을 모르더라고요. 수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적 체험을 나눠요.”(봉사자 이선화 씨)

    다만 선생님들은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 아픈 상처를 가진 학생들에게 가족에 대해 묻거나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보통 저희 경제프로그램에서는 ‘자아(自我)-우리 가족-마을-도시-지역-나라-세계’ 이렇게 하나씩 배워가는데 한누리학교에서는 ‘자아’와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가르쳐요. 대신 아이들이 더 흥미로워하는 거, 아이들에게 필요한 걸 선택해서 가르치죠.”(봉사자 유경희 씨)

    아이들의 꿈을 조사해서 전문가를 초빙해 특별한 시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한번은 국제변호사와의 만남을 가졌는데 수업에 별로 관심 없던 한 중등부 학생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 뿌듯했다고.

    “다른 분들은 땡볕에 밖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저희가 하는 일은 그저 실내에서 아이들 즐겁게 가르치는 일이라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이주연 씨)

    아이들을 정말 사랑해서일까? 3시간 동안 수업에 에너지를 쏟는 일이 ‘그저 실내에서 아이들을 즐겁게 가르치는 일’로 느껴지나 보다. 오늘 이주연 씨는 수업에 필요한 교재와 준비물을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 한누리학교로 왔다. 노원구의 집에서 양천구에 있는 한누리학교까지 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일찌감치 오전 11시에 나섰다. 수업은 오후 2~5시지만 수업 전에 모여 한 시간 동안 교재연구를 해야 하므로 1시까지 도착했다.

    이씨뿐 아니라 UJAT 멤버 대부분이 일산이나 서울 외곽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온다. 곧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야 하는 이세원 씨도 ‘힘 닿는 데까지’ 가르쳐보려고 시간을 쪼개 나오고 있다.

    “이번 여름 진짜 더웠잖아요.(웃음) 그렇게 더운데도 저희를 가르치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죠. 앞으로도 이런 시간 많이 가졌으면 좋겠어요.”(‘경제야 놀자’ 수업에 참여한 이모 학생)

    이제 대학교 4학년, 취업 준비로 고민도 많고 바쁘다. 하지만 같이 활동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더 열심히 살게 된다는 UJAT 대학생들. 그들의 멋진 모습을 보면서 무더운 날씨를 잊을 만큼 마음이 시원해졌다.

    ‘주간동아’가 따뜻한 세상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주간동아가 만난 따뜻한 세상’에 소개할 사연, 인물 또는 단체를 찾습니다.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귀띔해주세요. 훌륭한 업적을 세운 분도 좋지만,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살 만한 세상’을 만드는 힘은 작지만 착한 움직임에서 시작되니까요.

    ☏ 연락처 02-361-0966 comedy9@donga.com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