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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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받아주고 ‘탁’ 밀어주고 환상의 복식조 떴다

직장서 선의의 경쟁과 협력 부러운 시샘 … 서로 공통점 있을수록 ‘일 궁합’ 최고

  • 백경선 자유기고가 sudaqueen@hanmail.net

    입력2008-09-01 12: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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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받아주고 ‘탁’ 밀어주고 환상의 복식조 떴다

    1987년부터 함께 방송을 진행해온 강석 씨(왼쪽)와 김혜영 씨.

    “너랑 같이 연기하게 된 건 나에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2005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황정민 씨가 ‘너는 내 운명’의 파트너 전도연 씨를 바라보며 한 말이다. 살아가면서 일 궁합이 잘 맞는 이성동료, 즉 오피스 와이프와 허즈번드를 만나는 것 역시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 기적을 이룬 이들은 혹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푸르덴셜생명보험㈜의 이준희(32·미혼) 대리와 최영희(30·미혼) 대리는 각각 시스템 개발팀과 보존팀에 소속해 있다. 업무상 두 팀은 접촉이 가장 많다. 그래서 두 사람은 2004년 최 대리가 입사한 이후 줄곧 함께 일해왔고, 집 방향이 같아 쉽게 친밀감을 쌓을 수 있었다.

    상호 보완관계 회사생활 든든한 ‘빽’

    “워낙 방대한 고객을 관리하다 보니 저희 보존팀은 시스템 개발팀의 도움을 많이 받아요. 급한 일이 있으면 모두 이 대리님을 찾죠. 만일 저와 다른 사람이 동시에 부탁하면 제 부탁을 먼저 들어달래려고 미리 손 좀 쓴 거예요.(웃음) 오피스 허즈번드야말로 회사생활을 하는 데 든든한 ‘빽’이거든요.”(최영희 씨)

    최 대리는 이 대리를 친오빠처럼 따르고, 이 대리는 최 대리를 친동생처럼 챙긴다. 이 대리는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최 대리를 키웠다고 말한다. 한창 연애 중이라는 이 대리에게 두 사람이 너무 친해 여자친구가 싫어하지 않느냐고 묻자 “회사에 여직원이 많은데 그들이 모두 여자친구의 적”이라며 웃는다.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여자친구와 오피스 파트너 모두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요. 농담도 선을 넘지 말아야 하고, 술을 마실 때도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하죠. 늘 마음속으로 ‘여기까지만’이라고 선을 그어요. 술 마시면서 분위기 좋다고 ‘내일 영화 보자’ 이건 안 되잖아요. 맥주는 마셔도 영화는 안 돼요. 이 선을 지키지 않으면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고, 그러면 동료로선 끝이죠.”(이준희 씨)

    헬스케어 전문 홍보대행사 엔자임의 선병택(25·미혼) 씨와 손수지(25·미혼) 대리는 입사동기이자 동갑내기다. 이들은 지난해 2월 입사한 이후 팀을 이뤄 일하기도 했지만, 생일파티 같은 자잘한 일을 함께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워낙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혼자 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요. 그런 점에서 상호 보완적이죠. 갑자기 모르는 게 생기면 서로에게 몰래 메신저로 물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창피하거나 자존심 상해 못 묻는 것도 저희끼리는 스스럼없거든요. 더구나 서로 마주 앉아 있고요.”(손수지 씨)

    가까이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사귀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럴 때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란다. 주변을 의식하면 관계가 어색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주위의 호기심과 오해에 태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에게 ‘이성적 감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일하면서 볼 것, 못 볼 것 다 보여줘 더 이상 숨길 게 없고, 서로에 대한 환상도 일찌감치 접었다는 두 사람은 현재 각자 애인이 있다. 이 때문에 서로 연애상담자로도 활약하고 있다고. 특히 선씨가 여자친구를 사귈 때 손씨가 많은 도움을 줬다.

    “저는 담아두지 못하고 그때그때 표현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여자들에게 더 조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오피스 파트너가 남자다 보니 말하기가 편해요. 늘 묵묵히 받아줘서 고맙기도 하고요.”(손수지 씨)

    “아침마다 큰 빵을 사와요. 저까지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 짜증낼 땐 동생 같다가도 그렇게 티 안 나게 챙겨줄 땐 누나 같아요.”(선병택 씨)

    한국MSD제약의 김민정(34·기혼) 차장과 김경국(30·기혼) 대리는 남녀라는 차이보다 부모라는 공통점으로 찰떡궁합이 된 사례다. 이들은 2년 전 육아 대상 백신 마케팅기획 단계에서부터 팀을 이뤄 활동했다. 처음 한 팀이 됐을 당시 김 차장은 이미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김 대리는 막 아빠가 된 상태였다. 미혼 사원이 다수인 상황에서 두 기혼자는 특히 뛰어난 팀워크를 선보였다.

    “회사 업무에서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보다 일하는 스타일이나 방식,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는 게 더 중요하죠.”(김민정 차장)

    회의시간 싸우고 평소 수시로 의견 조율

    ‘척’ 받아주고 ‘탁’ 밀어주고 환상의 복식조 떴다

    왼쪽부터 푸르덴셜생명보험의 이준희 대리(왼쪽)와 최영희 대리. 엔자임의 선병택(왼쪽) 씨와 손수지 대리.

    천연물 전문기업 유니베라(옛 남양알로에)의 이경원(44·기혼) 부장과 조복희(44·미혼) 상무. 두 사람은 2004년 조 상무가 유니베라에 스카우트된 이후 각각 영업팀과 마케팅팀의 본부장을 맡으며 함께 일해온 동갑내기 파트너다.

    “처음부터 잘 맞았던 건 아니에요. 초기엔 의견 충돌이 잦았고 견해 차이도 쉽사리 좁혀지지 않아 엄청 싸웠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잘 맞더라고요. 한 달에 한두 번 이상 출장을 함께 다니면서 더욱 친해진 것 같아요. 나이가 같고 살아온 환경이 비슷해서인지 잘 통하는 부분이 있고…, 외모도 닮지 않았나요?(웃음)”(이경원 부장)

    선의의 경쟁관계라는 이들은 회의시간엔 여전히 치열하게 싸운다. 두 사람 다 영업팀과 마케팅팀의 수장으로서 팀을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고. 단 회의가 끝나면 수시로 티타임을 가지며 의견을 조율한다. 마치 상사에게 지적받은 부하직원들이 서로를 위로하면서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처럼, 두 사람 역시 업무성과가 좋을 때보다 뭔가 문제가 있을 때 “더 똘똘 뭉치게 된다”고 말한다. 이는 목적의식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사적으로 관계를 확대시키진 않는다. 사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되면 업무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학창시절 여자친구들보다 회사의 남자동료가 편해요. 친구들이 육아나 살림에 대해 대화할 때 저는 할 말이 없지만, 남자동료들과 회사 업무나 스트레스 같은 것에 대해 말할 땐 할 이야기가 많거든요. 물론 남자동료들과 일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동물(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동료들이 저를 덜 경계하고 친근하게 여기는 등 좋은 부분도 있어요.”(조복희 상무)

    방송계와 공연계에는 ‘진짜 부부’라고 오해할 만큼 찰떡궁합 커플들이 많다. 1987년부터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함께 진행해온 강석(56·기혼)과 김혜영(46·기혼) 씨는 ‘환상의 콤비’를 넘어 ‘환장의 콤비’로 불린다. 20년 넘게 함께하다 보니 이들을 부부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부부 맞죠?” 해도 ‘네’, “부부 아니죠?” 해도 ‘네’라고 대답한다. 하도 많이들 물어봐서 그냥 사람들이 원하는 답을 해주는 것이 편하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땐 부부 같고, 일이 끝나면 부부가 아니니 둘 다 맞는 말이라고. 김씨는 강씨에 대해 “인생의 반을 함께한 오빠는 남편과는 또 다른 운명적 존재”라고 말한다.

    “한번은 저도 모르게 남편에게 ‘석이 오빠’라고 한 거예요. 석이 오빠가 입에 밴 거죠. 그러니까 남편이 그러데요. 그렇게 좋으면 가서 강석이랑 살라고.(웃음) 그런데 저만 그런 게 아니라 강석 씨도 그런 일이 있었대요. 부인에게 ‘혜영아’ 그런 거예요.”(김혜영)

    그래도 이런 ‘사건’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휴가 때면 함께 여행을 떠날 만큼 서로의 배우자들과 가깝게 지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성의 오피스 파트너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해도 엄연히 남녀관계인 만큼 상대 배우자와의 관계 설정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상대 배우자와도 돈독한 관계 형성

    ‘척’ 받아주고 ‘탁’ 밀어주고 환상의 복식조 떴다

    유니베라의 조복희 상무(오른쪽)와 이경원 부장.

    “혜영이가 ‘싱글벙글쇼’를 시작하고 바로 이듬해인 1988년 결혼했어요. 결혼식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방송을 마친 뒤 제가 결혼식장까지 데려다 줬죠. 그때 신랑에게 건네주는 데 정말 맘이 짠하더라고요.”(강석)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큰오빠와 막내 여동생 같다고 말한다. 20년 넘게 함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서로를 이성으로 보지 않은 것과 더불어 서로에게 경쟁의식을 갖지 않은 데 있다.

    “다른 사람들까지도 우리를 남녀관계로 보지 않아요. 가끔 방송을 하러 지방에 갈 때가 있는데, 호텔에서 각기 자고 다음 날 둘이 팔짱을 낀 채 나와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신문에 났을 텐데 말이죠.(웃음)”(강석)

    “20년 넘게 함께 방송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둘 다 마이크에 대한 욕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게 방송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데 욕심을 내지 않으니 싸울 일도, 신경전을 벌일 일도 없어요. 또 싸운다고 해도 금방 풀리고요. 자존심 같은 것은 내세우지 않아요. 싸우면 부부는 등 돌리고 각 방을 쓰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게 안 되잖아요. 어쨌거나 함께 웃으며 방송해야 하니까요.”(김혜영)

    한 사람이 ‘아’ 하면 다른 한 사람이 ‘어’ 하고 받아줄 만큼의 호흡을 자랑하면서도 이들은 결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단다. 말 한마디 잘못해도 잘리는 냉혹한 방송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끼리 더 똘똘 뭉치는 것 같다고.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라고 말한다.

    신우철(39·기혼) PD와 김은숙(36·기혼) 작가는 2004년 여름을 달군 ‘파리의 연인’을 비롯한 연인 시리즈와 지난 5월 종영한 ‘온에어’까지 네 편의 작품을 연이어 함께 만들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은 약속한 듯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가 김은숙 작가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네 작품을 함께 한다는 것은 인간에 대한 믿음 없이 업무적인 마인드만으로는 불가능하죠.”(신우철 PD)

    “드라마를 쓰다 보면 나 혼자만의 검증으로는 자신이 없어요. 정확한 시각을 가진 사람의 검증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전적으로 감독님을 믿어요. 대본을 자주 고치게 하는 것이 감독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작가 처지에서 그리 좋진 않을 것 같다고 말해요. 사실 지나가는 누군가가 저에게 ‘이 부분은 재미없는데’ 하면 저 역시 ‘너나 잘해’라고 할 거예요. 하지만 감독님이니까, 믿으니까 기꺼이 고치는 거죠. 덕분에 많이 발전도 했고요.”(김은숙 작가)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성이기보다 동성 같은 존재라고 한다. 김 작가는 “감독님은 저를 남동생처럼 생각하는 것 같고, 저 또한 감독님을 큰언니처럼 생각한다”고 말한다. 일의 특성상 작업실에서 함께 생활해야 할 때도 많은데, 서로를 이성으로 생각하면 일하기가 쉽지 않다고.

    두 사람이 지금껏 환상의 콤비를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드라마에 대한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역시 회의를 하다 보면 의견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기에 나쁜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 양보하거나 집요하게 설득하거나, 아니면 공감하는 부분을 찾아 함께 수정한다.

    서로의 영역 인정하고 존중

    ‘척’ 받아주고 ‘탁’ 밀어주고 환상의 복식조 떴다

    왼쪽부터 한국 MSD제약의 김민정 차장(오른쪽)과 김경국 대리. ‘온에어’ 김은숙 작가(오른쪽)와 신우철 PD.

    ‘온에어’ 종영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석 달만 놀자고 약속했다. 이제 약속한 석 달이 다 돼간다. 9월에 이들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시 뭉친다. 감독과 작가 두 사람이 지나치게 친밀하면 작품이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친밀감과 거리감을 적당하게 유지하면서.

    “완전 망하면 모를까, 감독님과 계속 함께하고 싶어요. 솔직히 부담감이 커지는 건 사실이에요. 신인 감독, 신인 작가와 하면 드라마가 안 됐을 때 감독 탓, 작가 탓을 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핑계 댈 게 없어요. 우리는 우리 탓인 거예요. 계속 함께하기 위해 더 노력하고 공부해야죠.”(김은숙 작가)

    연출가 겸 작가 성재준(34·미혼) 씨와 음악감독 겸 작곡가 원미솔(31·미혼) 씨는 두 사람의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서 ‘재미 콤비’로 불린다. 11년 전 PC통신 뮤지컬 동호회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2005년 뮤지컬 ‘뮤직 인 마이 하트’에서 성씨가 작사와 연출, 원씨가 작곡과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후 ‘싱글즈’ ‘폴라로이드’에서도 연출가와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환상의 호흡 비결에 대해 두 사람은 “서로의 스타일을 이해하니까 특별히 이야기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있다”면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호흡이 잘 맞아 일이 쉽게, 빨리 진행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다. 두 사람 다 미혼이다 보니 ‘둘이 사귀라’는 말을 자주 들어야 하고, 더불어 이러한 관계가 다른 관계의 확장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오피스 커플로 꼽히는 것에 대해 “좋으면서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둘이서만 작업하겠다고 고집한 적이 없는데도 자꾸만 커플로 묶어놓고 절대 깰 수 없는 한 팀으로 생각한다는 것.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 업무에서 이들은 다른 음악감독이나 연출가와 일할 때보다 오히려 덜 만난다는 점이다. 이들은 함께한 시간에 영향을 받기보다 “일 궁합은 타고난 것”이라고 말하는 쪽이다.

    “다툰 적도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경우 제가 한 작업을 성씨에게 디밀어도 서로의 상상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까 ‘오케이’하는 편이에요. 저 역시 성재준씨가 지적한 부분을 거의 받아들이고요.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믿는 거죠.”(원미솔 씨)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인터뷰한 환상의 복식조 모두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한결같았다. 앞으로도 변함없길, 오랫동안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로 남길 바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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