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0

2008.08.26

오늘의 한국에 대한 한 일본인의 쓴소리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8-20 11: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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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한국에 대한 한 일본인의 쓴소리

    <b>여러분 참 답답하시죠?</b> 모모세 다다시 지음/ 사회평론 펴냄/ 379쪽/ 1만2800원

    일본에서는 ‘한국 혐오증’을 다룬 책이, 반면 한국에서는 ‘일본 때리기’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일본은 ‘없다’거나 ‘있다’며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고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이란 책이 베스트셀러 행진을 하던 때였다. 그즈음 1971년부터 포항제철 건설에 참여하는 등 30년 가까이 한국 산업화 현장에서 일해온 모모세 다다시 도멘 서울지점장도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18가지 이유’란 다소 도발적인 책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제목만 그럴 뿐, 책에서 한국인을 의도적으로 자극하거나 폄훼하려는 자세는 엿볼 수 없었다. 애초 책 제목을 ‘한국 사람이 되고 싶은 일본인’이라 붙이고 싶었다고 서문에서 밝힐 만큼 한국인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고, 1998년에는 ‘한국인이 그래도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18가지 이유’를 펴냈으니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두 책이 나오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이제 한국에서 체류한 지 39년이나 됐으며, 도멘에서 정년퇴직하고 일본 3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미쓰이 물산의 한국 법인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0년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등 과거 민주화 세력이 통치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국민은 그 시절에 만족하지 못했고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이명박 정부의 사람들은 그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이라 폄하하면서 어떻게든 과거와의 단절을 꾀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저자의 눈에는 IMF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는 기적을 이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도달해 선진국 진입을 꿈꾸며, 새로운 대통령까지 맞이한 한국인들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번 책은 한국 사람이 진정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고가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저자는 무엇보다 섬세한 정서로 남을 배려할 줄 알았던 한국 사람의 모럴을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정이나 인심, 예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자신보다 공동체를 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등 한국인에게 특히 많았던 심성은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황금만능의 물질 숭배라는 광풍만이 불고 있다는 것이다.

    모럴은 달리 말하면 ‘조금 멀리 보는 눈’이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찾을 줄 아는 안목이다. 그렇게 바라보면 영어 몰입교육이나 대운하 건설, 졸속 쇠고기 협상, 청계천 복원 등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등장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모국어를 지키기 위해 그토록 투쟁했던 한국인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어를 등한히 하니 어리둥절할 뿐이란다. 나라의 혼이라 할 수 있는 국어와 국사까지 영어로 가르치겠다니 발상이 신기하다고 비꼰다. 산악국가에서 일부러 운하를 파서 효율성 떨어지는 운송 수단을 마련하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며, 137억원이라는 세금을 들여 청계천을 복원해 엄청난 전기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홍수피해 지역부터 돌봐야 했다는 지적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또 수문장 교대 행사에 연간 17억원, 이를 대행하는 업체에 64억원을 들이면서 남대문 경비업체에는 겨우 월 30만원을 지불했다가 그마저도 5년간 무료로 해주는 업체로 바꿨는데 그런 일을 꼼꼼하게 따질 줄 모르니 똑같은 사고가 반복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한 후보의 측근이 좋은 공약이 없느냐고 물어와 3000만원 미만 소득자의 세금 감면과 대기업 세금 확대(사회복지), 여성 정책 확대(여성교육), 북한과의 평화조약 체결(외교와 경제) 등 세 가지 공약을 제안했다고 한다. 대기업은 경제연구소를 세우기보다 세금을 잘 내는 편이 국민을 위한 가장 확실한 미래투자라는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과 사교육으로 아이를 키우기 힘든 현실에서 육아 복지 정책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능력이 뛰어나고 교육수준도 높은 여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 등에는 특사를 보내면서도 정작 북한을 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경청해볼 만한 지적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삼일고가도로를 75일 만에 철거하는 놀라운 추진력이 아니라 살림 잘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한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권의 성격보다 민주적 절차와 순리대로 일을 해나가는, 즉 ‘기본’을 지키는 일이라는 지적과 맥락이 닿아 있다. 국민소득 몇만 달러, 경제성장률 몇 %, 세계 경제 몇 위, 일자리 몇만 개 창출 등 경제와 돈에 대한 구호를 내세우기보다는 한국인의 가슴을 흔들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면 국민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모든 충고는 ‘돈 많아 잘사는’ 부자나라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문화나라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라는 것에 귀결된다. 책 마지막에 저자는 죽을 고비를 넘긴 대수술의 경험도 털어놓는다. 그래서인가. 행간에서는 올해 고희인 저자의 넉넉한 마음이 읽힌다. 물론 그의 세세한 지적은 가슴을 쓰리게 한다. 건국 60년을 맞이해 한 일본인의 아픈 지적을 되새겨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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