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2008.08.19

썰렁한 남북관계 해법은 없나

키워드로 본 한반도 현주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8-08-11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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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反)공화국 대결 소동에 매달리고 있는 이명박 패당은 6·15, 10·4 공동선언을 부정하는 데로부터 그 이행을 완전히 파기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이명박 패당은 오늘의 북남관계가 파국적인 사태로 번져가면 시대와 민족 앞에 책임지게 될 것이다.”

    민간인을 사살하는 도발을 저지른 조선인민군 금강산지구 군부대의 대변인은 “금강산지구의 관광지와 군사통제구역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적대행위에 강한 군사적 대응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8월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다.

    서울과 평양은 마주 달리는 기관차를 떠올리게 한다. 남북관계 경색의 한 축엔 10·4 공동선언이 있다. 노무현 정부의 ‘부실어음’이 이명박 정부의 ‘허점 많은’ 대북 독트린과 맞물리면서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현재 남북 간에 ‘살아 있는’ 대화라인은 하나도 없다. 대화가 없는 상황에서 감정의 골이 패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왜 악화일로를 걷게 됐을까? ‘서울식’과 ‘평양식’이 충돌하는 한반도의 오늘을 종횡(縱橫)으로 톺아봤다.

    1 South | 차별화



    썰렁한 남북관계 해법은 없나
    이명박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노무현 정부와의 차별화를 강조한다. ABR(Anything but Roh·모든 것을 노무현과 반대로) 성향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포용정책이 화해협력의 물꼬를 트는 데는 기여했으나 ‘퍼주기’ ‘저자세’로 점철됐다고 여긴다. 노무현 정부가 ‘대화 유지 우선 정책’으로 북한에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10·4 공동선언을 재검토해 ‘우선 할 것’ ‘나중에 할 것’ ‘못할 것’으로 구분하기로 했다. 또 6·15, 10·4 공동선언보다 남북기본합의서에 곁점을 찍었다. 이 합의서는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체결됐다.

    North |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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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27일 남북 국방장관회담이 열린 평양 송전각 초대소. 김일성 북한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남측 인사가 말했다. “저거 내려야지!”(남측) “당신은 아버지 어머니도 이거, 저거로 부르나!”(북측)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액자 말이지. 그건 내려야 하지 않소!”(남측) “남의 집에 와서 아버지 어머니 보고 이거, 저거 하는 사람들과 무슨 말을 하나!”(북측) 이튿날 오전 북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속으로 이거 통일하자면 제도, 개념을 갖고 논의하면 안 된다고 느꼈다. (‘초상’을 내리라는 말이) 뼈저리게 들렸다.” 평양은 10·4 공동선언을 ‘장군님의 위대한 업적’으로 소개한다. 북측 체제 속성상 10·4 공동선언의 부정은 장군님의 ‘업적’을 부인하는 것이다. 북한이 10·4 공동선언을 재검토하겠다는 한국과 대화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북측 체제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10·4 공동선언의 부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이명박 대통령은 “10·4 공동선언을 ‘어떻게 이행해나갈 것인지’ 북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7월11일 국회 연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가소로운 잔꾀”라며 이를 거부했다. 북한은 10·4 공동선언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2 South | 물길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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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의 물길을 바로잡고자 했다. ‘주기만 하고 받는 건 거의 없는’ 퍼주기를 지양하겠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원국(남한)과 피지원국(북한)의 역학관계를 바로잡으려고 했다. 기(氣) 싸움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더라도 ‘갑(甲)’의 지위를 확보해야만 서울의 뜻대로 평양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식량난을 겪는 평양이 고개 숙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이었다. 10·4 공동선언의 이행은 평양이 ‘길들여진 뒤’ 북한의 태도를 보면서 풀어갈 문제로 여겼다.

    North | 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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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은 8월2일자 노동신문을 통해 “일본은 반성과 사죄도 없이 약탈한 문화재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반환에 대해 담보나 약속 없이 수염을 내리쓸고 있다. 조선 문화재 파괴 및 약탈 죄악을 하루빨리 청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논의에서 일본이 북한에 지급할 식민지배 배상금 규모로 최소 100억 달러가 거론된다고 한다. 북한은 더 많은 배상금을 요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중국도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대북 경협자금 집행에 나설 태세다. 북-미, 북-일 관계가 호전되거나 개선되고 북-중 관계가 다져지면서 서울을 향한 북한의 절박함이 준 것이다. 러시아도 중국과 나진항의 이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서울과 거래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나올 만큼 평양의 대외관계가 활로를 찾은 것이다.

    ◎ 경제적 수단을 이용해 북한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북한 개방화 전술’은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북한은 “도와달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독이 든 사과’(조건이 붙을 것으로 예상되던 식량·비료 지원)를 포기하고 긴장의 수위를 높였다. 평양이 서울의 쌀·비료를 외면한 데는 대외관계 호전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더욱 강력한 대남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게 대북 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3 South | 행동 대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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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구상의 키워드는 북한이 ‘착한 행동’에 나서면 ‘당근’을 들고, ‘나쁜 행동’을 벌이면 ‘채찍’을 들겠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개성공단 2단계 사업과 10·4 공동선언 이행은 ‘지켜야 할 약속’이 아니라 일종의 ‘인센티브’다. 북한의 비핵화 이행 단계에 따라 10·4 공동선언의 합의를 집행한다는 것이다.
    North |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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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은 이명박 정부가 10·4 공동선언을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피력하자 이 대통령을 ‘매국역적’ ‘모리간상배’ ‘협잡꾼’이라고 칭하면서 공세에 나섰다. 10·4 공동선언은 남과 북의 수뇌가 합의한 서류라는 점에서 약속 이행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 10·4 공동선언은 개성공단도 절름발이인데 해주 특구를 서둘러 ‘약속하고’, 현장도 제대로 둘러보지 않은 채 조선협력단지를 ‘합의한’ 노무현 정부의 ‘부실협상’ 결과물이다. 10·4 공동선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경제담론은 제5항에 담겨 있는데, 특히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 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는 대목이 경제와 평화를 패키지로 엮은 조항이다.

    이 조항을 톺아보면 북한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다. 공동어로구역,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는 북한이 바라는 대로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현찰’이다. 그러나 남측이 제기한 한강 하구 공동이용 등은 회임 기간이 긴 ‘배서된 어음’이다. NLL(북방한계선) 무력화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사안에서 북한이 ‘단기적 성과’를 얻을 수 있고, 한국의 제안은 ‘추진해나가기’로 한 셈이다.

    북한은 10·4 공동선언을 압박용으로 사용하며 이명박 정부와의 협상에서 실리를 챙기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 인도적 지원과 납북자 문제를 연계하면 “10·4 공동선언의 약속을 먼저 지켜라”면서 어깃장을 놓을 태세였다. 평양도 지난해 10월 노무현-김정일 회담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구한 40만t의 식량 지원이 시행되지 않은 데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 말 부실어음을 날린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행동 대 행동’은 대북지원과 남북경협을 상생적, 협력적 관점의 ‘통일 투자’가 아닌 북한을 개방화하는 ‘도구’로만 여기는 듯한 모습이다. 비핵·개방3000 구상의 맹점은 ‘현장용’이 아니라 ‘관념적 정리’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을 ‘무엇으로 어떻게’ 유인할지에 대한 각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전임 정권’이 합의한 문서를 ‘후임 정권’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정상적 외교관계에선 결례다.


    4 South | 정상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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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목표 중 하나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테러를 지원한다는 오명을 씻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평양의 개과천선이 없다면 북한은 ‘비정상 국가’이고, 남북은 경제협력이나 목표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North | MB(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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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이후 평양은 “MB의 실체를 모르겠다”고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삼갔다. 실용주의를 내세운 이 대통령을 깎아내릴 까닭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은 지난해 10월부터 여러 루트로 이명박 캠프에 노크했다. 이명박 정부를 바라보는 평양의 태도는 ‘기대’(대선 이전과 직후) → ‘의구심’(2월25일 취임사 이후) → ‘배신감’(3월26일 통일부 업무보고) → ‘무시’(4월 이후)로 바뀌었다. 평양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기대도 갖고 있었다. 명목상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이 대통령 취임식 때 보내는 안을 제안할 만큼 전향적 태도도 보였다. 또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남북문제에 대해 호의적으로 언급해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는, 과거 연을 맺었던 남측 인사들을 평양이 달래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러나 10·4 공동선언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발언이 서울에서 나오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평양은 4월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逆徒)’라고 지칭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최근 평양에선 ‘MB와 볼 일 없다. 5년간 서로 안 봐도 좋다’는 반응도 나온다고 한다.

    ◎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강조하는 것은 대화 상대의 현실적 바탕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듯한 서울의 접근법이 평양의 봉남(封南)을 부채질했다는 주장이다. 북-미, 북-일이 외교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북-중, 북-러는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잘못됐으니 다 바꾸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정상국가’라는 단어는 평양이 ‘그러마’라고 받을 수 있는 수사(修辭)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은 ‘서울식’으로 말하고, 평양은 그런 서울에 ‘평양식’으로 대응하면서 ‘맞불’이 튀는 셈이다.


    5 South | 후순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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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은 사실상 남북문제를 정책 시행에서 후순위에 두었다. 경제살리기 테제가 강조되면서 남북문제의 중요성이 묻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000 구상을 가다듬기도 전에 남북 경색이 시작된 셈이다.

    North | 자존감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말과 행동으로 자존감을 건드렸다고 여긴다고 한다.

    ◎ 한국 정부는 7월24일 발표된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 성명에서 ‘10ㆍ4 공동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지지’라는 문구를 빼고자 동분서주했다. 7월30일 폐막된 비동맹운동 장관급 회동 때도 10ㆍ4 공동선언을 둘러싸고 남북간 외교전이 벌어졌다. 서울이 국제무대에서 10ㆍ4 공동선언의 가치를 깎아내리자 평양은 도발의 당사자 격인 군부대 대변인의 담화로 대응했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대화의 유지에 목을 맸다. 또한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10ㆍ4 공동선언은 잘못된 대북 기조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할 말을 하면서’ 선(先)비핵화-후(後)경제지원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은 그러나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결을 거꾸로 짜르자’고 덤비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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