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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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우리냐” 찍힌 공기업들의 반격

토공·인천공항공사·기술보증기금 등 통합·민영화 부당성 호소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8-11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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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우리냐” 찍힌 공기업들의 반격

    주택공사와의 통합에 반대하는 토지공사의 신문에 게재한 의견광고.

    민영화 혹은 통폐합 대상으로 지목된 공기업들은 요즘 죽을 맛이다. 정부의 칼날이 날아들 방향도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조직 내 각종 이해관계를 조율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하자니 정부 눈치가 보이고 찬성하자니 조직을 지켜낼 자신이 없는 공기업들은 어느 때보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특히 현 정부에서 기관장이 바뀐 공기업들은 “정부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눈치 보기만 하고 있어 조직 내 반발만 키우고 있다.

    주택공사 vs 토지공사

    사실상 민영화 혹은 통폐합이 결정된 공기업들은 저마다의 손익계산에 따라 바삐 움직이고 있다. 비금융 공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통폐합 기관이 된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와 한국토지공사(이하 토공)가 그렇다.

    “공적 기능과 경쟁력을 상실한 적자기업 주공이 토공을 흡수해 경영 부실을 만회하려고 한다. 설립 취지도 다르고 역할도 다른 두 기관의 통합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토공 관계자)

    대한민국 대표 부동산 공기업인 토공은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기업 선진화(민영화 및 통폐합) 방안이 ‘주공을 살리기 위해 토공을 죽이는’ 정책이 됐다며 ‘저항’ 중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 통합 반대 광고를 게재하는 등 장외투쟁에 돌입한 지도 오래다. 토공 측은 주공이 토공을 흡수하기 위해 정치권을 상대로 무차별 로비를 해왔다고 주장하면서 특정 정치인의 이름까지 거론한다.



    반면 토공의 공격을 받고 있는 주공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34개에 달하는 업무 중복, 국민 상당수가 통합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 등을 줄줄이 내놓으며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론 토공에 대한 서운함도 감추지 않는다. 주공 관계자의 말이다.

    “토공이 통합에 반대하는 것이야 선택의 문제고 자유지만, 그 과정에서 주공에 대한 악의적인 주장을 많이 내놓고 있다. 통계를 왜곡하고 신문광고 등을 통해 주공을 비난하는 모습은 기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8월4일 주공은 토공과의 통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통합 인터넷 사이트(www.tonghab.co.kr)를 개통해 논란을 키웠다. 이 사이트에는 주공과 토공이 통합돼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한 정부 및 주공의 입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두 기관의 갈등은 점점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설사 물리적 통합이 이뤄진다 해도 화학적 결합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민영화·통폐합

    비금융 공기업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이하 인천공항)의 민영화 논란이다. 인천공항은 전국 14개 공항을 관리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와의 통폐합도 거론되고 있어 골치를 앓는다. 인천공항 측은 “이제 겨우 흑자 경영에 접어든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망가뜨리는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이라며 정부 시책에 반발하면서도, 막상 정부 입장이 나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발만 구르고 있다. 통폐합 및 민영화를 반대하는 인천공항 노조 강용규 위원장은 “이미 정부 관계자들에게 ‘동북아 허브 공항을 포기할 생각이면 민영화해도 좋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공항은 어떤 분야보다 규모가 큰 서비스산업이 되고 있다. 외국 공항을 사들이거나 외국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공항을 민영화한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인천공항 측은 5월 정부의 민영화 계획이 나오던 때부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인천공항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공항은 성격상 초기 자본금이 많이 들어가지만 완공된 이후부터는 대규모 시설투자 없이 수익이 창출된다. 인천공항은 효율적인 운영을 통해 영업이익률 40% 이상의 성공적 공기업이 됐다. … 정부에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주는 알짜 공기업을 팔아야 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인천공항을 민간에 넘긴다고 했을 때 인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본이 어디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국내 재벌 아니면 해외 투기자본이 될 것이다. …(민영화가) 정권의 도덕성 문제로 귀결될 것이며,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정책이다.”

    신용보증기금 vs 기술신용보증기금

    ‘준정부 부문 선진화 계획’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역시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돼온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이하 기보)이다. 이들 기관의 줄다리기도 볼만하다.

    최근 한이헌 기보 이사장은 정부의 기보와 신보 통합 논의와 관련해 “보증기관을 섞으려는 것은 정책논리상 모순”이라며 정부 정책에 반발해 화제가 됐다. “두 기관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가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낳았음에도 통합이 논의되고 있으며, 마치 통합이 공기업 개혁처럼 인식되고 있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이사장이 바뀐 신보는 기보와는 가는 길이 다르다. 신보 측은 최근 나오고 있는 기보와의 통합 논의에 대해 “정부 정책에 공기업이 이러쿵저러쿵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신보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미 2005년 12월 신보와 기보 두 기관이 합의를 통해 업무를 구분한 바 있어 정부에서 주장하는 업무 중복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 상태”라고 말함으로써 업무 중복을 이유로 통합을 주장하는 정부 정책에 ‘약간’의 의문을 표시하는 정도로 입장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

    산업은행 민영화

    금융 공기업 분야에서는 산업은행이 유일하게 민영화가 결정됐다. 산업은행은 올해 말까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 2012년까지 민영화를 마무리한다는 계획까지 밝힌 상태. 계획대로 사업이 추진된다면 산업은행은 곧 산업은행, 대우증권, 산은자산운용, 산은캐피탈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산은지주회사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민영화 분위기에 대해 산업은행 측은 “예정된 것일 뿐”이라며 담담한 반응이다. 다만 “공기업이라는 보호막이 없어지는 만큼 경쟁시장에서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할 일이 많다”는 견해만 밝혔다.

    특히 산업은행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와 산업은행 민영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새 정부의 정책의지가 아닌,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됐던 일”이란 설명이다. 이러한 산업은행의 주장 뒤에는 최근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해 논란을 일으킨 한국개발펀드(KDF)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맡게 되는 정책금융기관 KDF에 각종 국책은행, 공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산업은행과 마찰을 빚었던 점을 염두에 두고 나온 주장이라는 것.

    이와 관련해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미 7월부터 민영화에 대비해 준비단을 만들어 운영해왔으며, KDF를 두고 나왔던 논란은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측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경영으로 투자은행으로서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SOC 공기업 민영화·4대 보험 통합

    반면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핵심이던 에너지 분야 공기업 민영화와 4대 사회보험 통폐합은 논의 대상에서 사라졌다. 발전 자회사에 대한 민영화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대표적인 예다. 이미 기업 분리가 완료됐지만 민영화 추진 단계에서 불어닥칠 변화의 바람을 가늠하지 못해 눈치를 보던 분위기는 최근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민영화가 된다 해도) 크게 변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변화의 바람을 피했다는 안도감이 든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 징수기능 통합이 화두였던 공공 부문의 경영 효율화 문제도 당초 계획보다 대폭 축소되면서 관련 공기업들은 짐을 덜었다. 사회보험 징수기관의 설립 계획도 무기한 연기돼 정부 계획은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 국민연금관리공단 측은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하고 따른다는 것이 우리 공단의 기본 입장이다. 국가 차원의 경영 효율화를 위해 당연한 것 아닌가”라면서도 달라진 분위기를 반기는 눈치가 역력하다. 한 관계자는 “이제 남은 과제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휴인력의 활용방안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정부 정책방향을 알 수 없어 속병만 앓았는데 이젠 좀 편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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