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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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팔아 돈벌이 이 죽일 사행 게임

업주들 유령 장애인단체 앞세워 호객행위 … 정상 등록 후 유통과정서 개·변조 불법 영업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08-11 13: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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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팔아 돈벌이 이 죽일 사행 게임
    “합법적인 심의를 마친 안전한 PC게임, 게임도 즐기고 장애인도 후원하세요.”

    거리를 걷다 보면 이 같은 문구가 인쇄된 전단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전단지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도 010-8672-78××, 010-9294-40×× 등 버젓이 전화번호까지 공개한 채 호객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이것들이 한국장애인생존권연대, 장애인협회중앙회 등의 이름으로 마치 장애인 단체에서 정상적으로 심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인 게임을 운영하는 것처럼 표시돼 있는 점이다. 게임을 즐기는 것과 동시에 장애인 후원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합법적 게임에 장애인 후원까지 한다면 일견 긍정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확인 결과 인터넷상이나 전단지에 번호가 적힌 휴대전화는 꺼져 있거나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국장애인생존권연대 등 장애인 단체 홈페이지 역시 해당 페이지가 표시되지 않고 접속이 되지 않았다.



    불법 사행성 게임을 단속하는 한 경찰관은 “성인 게임 안내에 나와 있는 장애인 단체는 대부분 장애인 몇 명을 내세운 유령단체”라며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도 단골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만 받는 경우가 많다. 전화를 받아도 바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여러 단계의 접선을 거칠 만큼 보안이 철저하다”고 설명했다.

    게임 즐기고 장애인 후원? 실제론 도박장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성인 PC방. 광고에서는 장애인 단체가 운영한다고 했지만 실제 PC방 안에는 장애인이 한 명도 없었다. PC방 안은 담배연기로 자욱했고, 눈이 충혈된 채 말없이 게임에 몰두하는 40, 50대 중년들의 모습만 보였다.

    “우리는 다른 PC방과 다릅니다. 게임을 하려면 다른 PC방을 이용하세요”라는 종업원의 말처럼 이곳은 일반 PC방이라기보다는 오락실에 가까웠다. PC방 모니터 화면에서는 모두 돌고래가 돌아다니는 것이 흡사 예전에 전국을 들썩이게 한 ‘바다이야기’ 게임을 연상시켰다. 다른 한쪽에선 손님들이 바둑이, 포커, 뉴맞고 등 온라인 도박게임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종업원 송모(28) 씨는 “장애인 단체는 눈가림식으로 내세운 것”이라며 “불법 온라인 도박게임 이외에도 PC방에 따라서는 불법 판정을 받은 바다이야기, 황금성 등을 비밀리에 운영하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정상적인 게임물 등급을 받고 성인PC방으로 문을 연 뒤, 오락실 기능을 추가하는 편법을 주로 쓴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유령단체를 내세워 불법 사행성 게임을 운영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해당 업주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시행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송길룡)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사행성 오락실 집중 단속을 통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7명을 구속하고, 수익금 16억원을 환수했다. 경기지방경찰청도 올 상반기 경기지역 불법 사행성 게임에 대한 단속을 벌여 2029곳을 적발해 129명을 구속하고 31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단속에도 합법을 가장하고 유령단체를 내세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는 등 업주들의 대응도 진화하고 있다.

    경찰청 생활질서과 김철 경위는 “일단은 게임물등급위원회로부터 등급심사를 받아 정상적인 게임기로 등록한다”며 “하지만 유통과정에서 프로그램 개·변조를 해 베팅 및 승률을 조작하고 예시와 연타 기능을 갖춘 게임기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게임물등급위원회 프로그래머들도 개·변조 여부를 확인하는 데 한두 달이 걸린다”며 “일선 경찰관들이 전문적인 프로그램 개·변조 여부를 확인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털어놨다.

    업주들이 장애인 단체를 내세우는 이유는 합법을 가장하고, 적발 시 조금이나마 처벌을 경감해보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많다. 불법 사행성 게임을 수사하는 일선 한 경찰관은 “불법으로 사행성 게임을 하다 적발됐을 때 장애인 단체라고 하면 처벌 수위를 낮출 여지가 있지 않겠냐”며 “이런 틈새를 노려 장애인 단체를 유령단체로 내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장애인 팔아 돈벌이 이 죽일 사행 게임

    불법 사행성 게임 안내 전단지. 한국장애인생존권연대에서 운영하는 합법적인 성인 PC게임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는 유령 장애인 단체를 내세운 경우가 많다.

    검찰 관계자도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워 실제 업주들이 처벌을 피하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장애인 단체를 돕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업주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짜 장애인 단체의 난립에 정식으로 등록된 장애인 단체들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관계자는 “정식 장애인 단체가 맞는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업주들이 유령단체를 내세우기도 하고, 실제로 등록된 장애인 단체에 후원금을 지급하고 명칭을 도용하는 경우도 많다”며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장애인 단체가 도매금으로 지탄받는 선의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러한 선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장애인 단체와 같은 유령단체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려는 실제 업주들과 명의를 빌려준 이들에 대해서도 강력히 처벌하기로 했다.

    법무부 형사기획과 관계자는 “실제 운영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바지사장인 경우에도 단순히 이름을 빌려줬느냐, 운영에 참여했느냐 등 관여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처벌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세 달에 억대 수입 뿌리치기 힘든 유혹

    검찰 역시 앞으로 단속에 걸렸을 때 실제 업주 대신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알선업자에 대해 추가로 수사할 예정이다.

    정부합동(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 단속으로 불법 사행성 게임이 한때 수그러드는 듯했지만 다시 유령단체를 내세우며 고개를 드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성인 PC게임방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불법적인 사행성 게임의 경우 두세 달만 운영해도 현찰로 억대의 돈을 벌 수 있다”며 “아무래도 이런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령단체까지 내세워 합법적인 게임임을 강조함으로써 피해를 보는 것은 도박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애꿎은 장애인들이다. 장애인 단체들은 업주들이 유령단체를 앞세워 불법 사행성 게임을 하는 것은 자신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라고 강변한다. 유령 장애인 단체 뒤에 숨어 불법을 서슴지 않은 업주에 대한 일벌백계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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