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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독서 노트

현대인 보금자리에 관한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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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보금자리에 관한 사회학

낭만아파트
허의도 지음/ 플래닛미디어 펴냄/ 288쪽/ 1만1000원

88서울올림픽 무렵 작은 아파트를 살까, 전세로 들어갈까 망설인 적이 있다. 빚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결국 전세를 택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아파트 값이 두 배로 뛰는 것이 아닌가. 그 후 우여곡절 끝에 32평형 아파트는 하나 마련했다.‘낭만아파트’의 저자는 1억7000만원에 전세로 살던 집을 1000만원 낮춰 아예 사라는 집주인의 제안을 거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 아파트가 1~2년 만에 4억원 이상 폭등한 경험을 밝힌다. 그는 아직 아파트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몇 번의 갈아타기로 강남의 10억~20억원을 호가하는 고급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무용담을 무수히 듣고 있다.

월급쟁이 서민들이 꿈꾸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소설가 이외수가 ‘사람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라 일갈한 아파트다. 아파트는 ‘한국의 간판 관광상품’이라고도 한다. 도무지 보여줄 것이 없는 나라에서 외국인들을 기절하게 만드는 것은 거대 병영의 콘크리트 막사처럼 이어진 아파트뿐이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다.

아파트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현대성의 기호이자 결정적인 아이콘이다. 아파트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읽으면 지금 이 나라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낭만아파트’는 아파트를 키워드로 우리 시대의 위험한 문화코드 읽기에 나선 매우 의미 있는 책이다.

이 책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아파트는 박정희 정부 시절 산기슭마다 우후죽순 늘어나던 판잣집 등 불량건축물의 대체재였다. 정통성 없는 군사혁명 세력이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 내건 대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인기가 없었다. 1970년에는 와우아파트 붕괴의 충격까지 겪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1970~80년대 강남 개발붐이 일어나면서 아파트는 재산 증식의 도구로 발돋움한다. 한국 아파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프랑스인 발레리 줄레조는 이 같은 아파트 거품을 ‘한국사회에서 구성된 결과물’이라 정리했다. 그는 거품의 직접적 원인을 권위주의 산업화 기치를 내건 1970년대와 80년대 정치풍토 아래 정부, 재벌, 중산층이라는 삼각 특혜 동맹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가 인구성장을 관리하고 봉급생활자들을 경제발전에 헌신하도록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고, 이에 건설업자와 중산층이 호응했다는 것이다.



강남 개발의 시동이 걸리고 난 뒤부터 아파트 분양 당첨은 주거공간의 확보가 아니라 거액의 돈벌이 수단이었다. ‘아파트 공화국’은 ‘강남 공화국’으로 바뀌어 ‘강남 8학군’ ‘대치동 엄마’ 같은 신조어를 양산했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자 노태우 정부는 1987년 주택 200만 호 건설 카드를 던졌다. 하지만 88올림픽 성화가 불타오른 다음 아파트 값은 더 뛰어올랐다. 전두환 정부 시절부터 가격억제 해법으로 제시된 신도시 건설은 오히려 가격상승만 부채질했다. 서민의 열광으로 탄생한 노무현 정부마저 선거공약이었던 아파트 원가 공개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가격폭등을 유발했다. 집권 말기에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이른바 ‘세금폭탄’ 정책을 내걸었지만 집권당의 선거패배 원인만 제공한 셈이 됐다.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공약이 등장해 서울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잘 고른 아파트 하나, 열 직장보다 낫다’는 속설마저 있는 마당에 아파트로 부자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묻지 마 투표’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아파트가 양극화의 상징이 된 이 땅에서는 아파트를 소유하게 되면 보수주의자가 된다고 한다. 결국 지난 총선에서는 보수주의 물결이 휩쓴 셈이다. 그런 흐름을 읽은 이명박 정부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7월24일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재산세와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인하 카드를 들고 나왔다. 명분은 중소형 아파트들의 급매물이 쌓이고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할 정도로 건설경기가 침체됐다는 것이다.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버블 붕괴 당시 일본 아파트의 가격 폭락,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 등 외부 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난공불락의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또한 그런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는 듯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단한 몸을 쉬게 하는 편안한 공간으로의 ‘낭만아파트’를 꿈꾼다. 하지만 대안은 없어 보인다. 최근 대도시 근교의 타운하우스와 교외형 전원주택 등 단독주택의 쾌적함과 아파트의 편리함을 동시에 갖춘 집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저자가 그런 흐름에 기대를 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무성한 아파트 숲을 지나 이어지는 길의 끝은 아스라이 굽어드는 오솔길이 아니라 벼랑이라 보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는 어이없게도 바퀴벌레에게 희망을 건다. 아파트는 이제 단위 세대가 한 층을 사용하는 플랫형에서 층마다 엘리베이터나 계단이 연결된 홀이 있고 홀을 중심으로 둥글게 연접돼 있는 타워형(홀형)으로 진화 중이다. 주상복합아파트는 대부분 타워형이다. 어둡고 습하며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 서식하는 바퀴벌레가 첨단기술을 동원한다 해도 맞바람이 통하지 않을 타워형 아파트에 덤벼든다면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니 바퀴벌레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는 자조에 씁쓸할 뿐이다.



주간동아 2008.08.12 648호 (p78~79)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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