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7

2008.08.05

뇌물 실체 밝히면 여러 명 다쳐?

‘김귀환 파문’ 확산 한나라당 전전긍긍 … 친이 vs 친박 싸움 보이지 않는 힘 개입 가능성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7-29 13: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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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랫동안 깊이 곪았던 것들이 한 번에 터진 거죠. 한바탕 내리고 그치는 소나기는 아닐 거예요. 이번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의원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봐요.”(현 서울시의회 의원)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지만 상식을 초월할 겁니다.”(전 서울시의회 의원)

    한나라당 김귀환(59·광진2) 서울시의회 의장의 뇌물 스캔들이 심상치 않다. 이번 파문에 한두 명이 거론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30명이 무더기로 걸렸다. 게다가 돈의 출처가 막강한 권력을 지닌 서울시의회 의장 자리를 노린 현역 의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범상치 않다.

    김 의장에게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시의원 30명의 실명이 공개되면서 사태는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야권에선 18대 총선 시점에 현직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김 의장에게 후원금을 받은 사실까지 공개함으로써 ‘김귀환 스캔들’의 여파는 이미 여의도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현재 드러난 사실 빙산의 일각?



    이번 파문이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불붙으며 여야 간 진흙탕 폭로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가뜩이나 ‘고립무원’ 처지인 이명박(MB) 정부는 또다시 도덕적 상처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김 의장이 당 소속 시의원 30명에게 3900여 만원의 수표를 전달한 혐의를 포착하고 그 실체 규명의 ‘공’을 검찰로 넘겼다. 시의원들은 김 의원에게 받은 돈을 생활비와 주식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아직 1000만원가량의 수표는 은행으로 입금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영장에서 ‘지지 부탁’이라는 표현으로 김 의장이 돈을 건넨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당 내부 관계자들의 의혹 제기와 제보가 경찰 수사의 실마리가 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에선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김 의장의 행보가 시의장선거와 직접 연관됐으리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의장선거 과정을 지켜봤다는 서울시의회 A의원은 “의장 자리가 갖는 권한, 비례대표 의원으로 낙점받을 수 있는 향후 진로, 의석을 독점하다시피 한 한나라당 내에서 의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정황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한다면 분명 일이 있어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라면서 “현재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시의회 의장으로 확정되는 한나라당 시의장 후보 선거가 있던 6월18일 전후에 김 의장 주변에서 벌어진 일련의 정황들은 상당히 눈길을 끈다. 특히 이날 ‘친(親)박근혜’계 인사인 김 의장이 ‘친이명박’계 다른 후보와의 경합에서 초반에 다소 밀리던 구도를 반전시킨 배경을 놓고 시의회 주변에선 숱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서울시의회 의원도 “친이와 친박의 세가 8대 2로 짜인 구도에서 김 의장이 과반수를 얻은 배경에 모종의 ‘힘’이 작용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1차 투표에서 100표 가운데 30표 정도를 득표했던 김 의장에게 2차 투표와 본회의에서 ‘친박’계열이 아닌 한나라당 특정 의원들의 표가 집중된 것은 아무 일 없이는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의장 후보 선거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제기했다.

    김 의장이 한나라당 시의장 후보로 선출된 다음 날 경찰이 기습적으로 김 의장 계좌를 압수수색한 일 역시 그의 혐의를 그냥 흘려 넘길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특정 후보를 겨냥한 악성 루머에 의해서가 아니라, 꽤 정확한 내부 정보에 의해 수사기관이 움직였던 것. 제보 과정을 떠나 전체적으로 ‘친박’ ‘친이’ 구도의 갈등과 회유의 행보가 되레 당의 발목을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뇌물 스캔들의 파문이 커지면서 기존 시의원 30여 명 외에 또 다른 돈줄기가 있는지의 여부도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야권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과연 수표만…’이라는 의문 어린 시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의회 의원 B씨는 “실명이 거론된 30여 명의 의원 사이에선 돈을 받은 명단에서 빠진 김 의장 측근들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김 의장이 전달한 돈의 흐름은 의장선거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시의회 박병규 대표의원(구로2)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소속 의원이 이번 일을 반성하고 있고,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원천적으로 돈이 오가는 비리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나 정치권이 제기한 의혹 중에는 왜곡되고 억울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생명 위기 김 의장 무슨 말 할까

    선거에서의 지지 명목으로 돈을 주고받은 점에 대해 박 의원은 “돈을 받은 행위 자체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30명 의원들에게 확인해보니, 그들은 김 의장이 주는 돈을 대부분 관행상의 격려금 정도로 생각했고 의장선거 지지와는 무관하게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의원은 “시의원들은 책임 당비조로 월 20만원씩을 내는데 이 비용은 환급된다. 그런데 (김 의장이) 대표 입장에서 의장선거 시점에 당비 환급액을 건네기가 부담스러워 무심코 4월에 돈을 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선거 과정이 과열된 점은 사실이지만 의원들이 받은 돈을 선거와 관련짓는 것은 마녀사냥식 접근이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파문이 커지고 있는 이번 뇌물 스캔들이 과연 검찰 수사에서 어떤 결과로 귀착될지 주목된다. 중요한 것은 김 의장의 입. 그의 한마디에 또 한 번 한나라당 내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가 확인한 결과 김 의장이 소유하고 있는 유명 여성 의류업체 ‘마드모아젤’(지난해 7월 진양어패럴로 회사명 변경)이 6월9일 김 의장 부인에 의해 법인 청산됐다. 결국 김 의장은 자신의 성공 기반까지 정리한 채 시의장 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7대 시의원 선거 과정에서 서초·강동 지역 출마가 벽에 부딪히자 광진으로 지역구를 옮겨 당선된 뒤 본격적인 주류 정치인으로서 도전을 감행한 김 의장. 이번 뇌물 스캔들로 스스로 탈당하며 정치생명에 큰 위기를 맞은 그의 다음 선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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