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6

2008.07.29

공직 30년 ‘타협의 귀재’ 고래 싸움에 곤혹의 시간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7-21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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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무직 고위 공무원 가운데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은 정진철(53·사진) 국가기록원장일 것이다. 재임 기간 매스컴 탈 일이 없다는 국가기록원장이 7월 들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겠지만 처한 상황이 정반대라 이슈 인물로 거론되는 것이 내키지 않을 듯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 사본을 봉하마을 사저에 보관한 것을 두고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청와대 관계자들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그 논란의 중심에서 명쾌하게 과실 여부 해석을 내려야 하는 그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그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에 직접 남긴 “우리가 갖고 있는 대통령기록물을 비롯한 200만권이 넘는 기록정보자원을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도록…”이라는 인사말의 한 구절처럼 국가기록 접근에 대한 자율성과 자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지는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게 주변의 반응이다. 그러나 이번 문제가 규정을 떠나 정치 쟁점화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정 원장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정 원장은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조심스러운 행보가 오히려 노 전 대통령 측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은 정 원장이 봉하마을을 방문한 직후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본 것도 봤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놓은 말도 뒤집어버린다. 어디에 눈치가 세게 보이는 모양이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어떻게 보면 정 원장 처지에선 공직생활 30여 년 중에 가장 불편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별로 걱정할 게 없다는 반응. 조직에 순응하고 일을 모나지 않게 처리하는 그의 ‘스펀지’적 성향이 이번에도 드러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행정고시 21회 출신으로 1979년 공직에 발을 들인 정 원장은 ‘타협의 귀재’라 불릴 만큼 친화력과 인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2003년에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공보관으로 승진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얼굴을 알렸다. 정 원장에게 붙은 수식어는 ‘인사 전문가’. ‘공무원 성과 관리’를 주제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이 분야의 실력파다.



    성격, 인간관계, 출신, 조직에서의 경력을 보면 ‘무색무취’, 조금 비꼬아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하다. 공보관 시절 “전현직 장관의 행보가 오락가락한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직접 신문에 기고해 오해를 푼, 때로는 ‘과감한’ 성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찌 됐든 보수와 진보의 양 끝단에 자리한 전현직 대통령 간의 자존심 대결, 그 무게중심에서 ‘색깔’은 관심 없다는 정 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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