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5

2008.07.22

눈으로 보는 새빨간 거짓말

  • 류한승 미술평론가

    입력2008-07-16 09:5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눈으로 보는 새빨간 거짓말
    이야기 또는 내러티브는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에 주로 이용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미술에서도 이 같은 내러티브가 전시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박재영의 개인전 ‘보카이센 스터디스(Bokaisen Studies)’에서 찾아보자.

    작가는 일본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이순신을 흥미롭게 표현한 설화를 접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참전한 일본군이 이순신을 무시무시한 괴물로 묘사한 것이다. 비록 이 설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멸했지만, 괴물의 일본 이름이 ‘보카이센’이었다.

    박재영은 ‘보카이센’의 이름을 빌려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산한다. 동물학 박사 존 팬시어는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작은 섬에 도착한다. 박사는 섬을 탐사하면서 원주민 할아버지가 정신 나간 사람을 고치기 위해 주술 행위를 준비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주술을 위해 특이한 동물이 필요했는데, 동물학 박사에게도 그 동물은 낯선 것이었다. 그루지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존 박사는 어렸을 때 ‘보카이센’이라는 동물의 이야기를 들었고, 이 동물이 보카이센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원주민들은 제의 중 동물에게 말을 시켰고, 제의가 끝난 후 동물을 죽여 살을 나눠 가졌다. 박사는 동물을 가지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반대로 그렇게 하지 못하고 동물의 사체 중 둥글고 반질반질한 부분만을 얻어온다.

    “우리가 믿는 것이 진짜?” 근본의문 던져

    눈으로 보는 새빨간 거짓말

    박재영 ‘Scene86-06c:Certification Model’ ,박재영 ‘Scene96-08:Incubator for Bokaisen’(오른쪽부터)

    도쿄 연구소로 돌아온 박사는 이 독특한 물질을 진공 케이스에 넣었는데 거기서 세 마리의 새끼가 생겼다. 그중 두 마리는 도쿄 연구소에 보관하고 한 마리는 그루지아 연구소로 보냈다. 1년 뒤 관찰해보니 두 연구소의 동물이 눈에 띄게 다른 것이었다. 연구 결과 박사는 이 동물(보카이센)이 어미라고 각인하면 그 어미가 시키는 대로 모양을 바꾸며 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사는 인간이 원하는 쪽으로 보카이센을 성장시키면 유용한 동물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내용을 세상에 발표한다.



    이후 박사는 유명해졌고 점차 보카이센보다 대외관계에 치중한다. 너무 바빠진 박사는 직접 보카이센을 키울 수 없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함께 보카이센을 키울 수 있는 전자장치를 개발한다. 전문가들은 의견을 교환해 전자장치를 조정하고, 그에 따라 보카이센을 인정하는 인증서를 발급한다. 이제 과학기술과 인증서가 있어야 보카이센으로 불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보카이센이 성장하는 모습은 전 세계에 순회를 통해 전시되며, 순회전 중 하나가 바로 이번 전시다.

    ‘우리가 믿는 것이 진짜일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박재영은 ‘가상의’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그의 보카이센은 점차 본질과 분리돼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즉 가상이 실재보다 더 진짜 같은 하이퍼리얼(hyperreal)로 변해간다. ~7월23일, 덕원갤러리, 문의 02-723-7774



    전시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