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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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 901만원 ‘꿀꺽’… 의원님들 밥값은 하셨나요?

식물국회 40일 동안 저마다 지역구 관리·외유 …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주장도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07-14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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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점휴업이던 국회를 뒤로하고 외유를 다녀온 의원도 있다. 민주당 의원 9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한나라당 의원도 20명 넘게 해외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비 901만원 ‘꿀꺽’… 의원님들 밥값은 하셨나요?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임종석(44·회사원) 씨는 국회의사당을 볼 때마다 분하고 화가 난다. 그는 기름값 오름세가 부담스러워 자동차를 집에 두고 출근한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펀드는 반 토막 났고 물가 상승세는 가파르다.

    그는 봉급생활자 처지에서 앞으로 가정을 꾸리기가 고단하겠다는 걱정도 가끔씩 해본다.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기사를 가리킨 뒤 그는 “18대 국회가 개원 한 달 넘게 놀았다. 참 나쁜 국회다”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18대 국회는 7월10일 ‘지각 개원’했다.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41일 만의 일로 헌정 사상 가장 늦은 개원이다. 상임위 구성과 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샅바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일하는 국회’는 좀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송구스러워 세비 반납” vs “세비 반납? 그거 쇼다”

    “세비 반납요? 그거 다 쇼예요, 쇼. 젊은 의원들이 세비 반납하자고 하는데 나처럼 노력한 사람은 제외돼야죠.”



    L의원(자유선진당)은 국회가 ‘개점휴업’이던 40일 동안 “결코 놀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국정 공부는 물론 책도 무지하게 많이 읽었다”고 한다.

    “17일가량 지역에 머물렀다. ‘내 얼굴 좀 보자’는 사람도 많고, 효도잔치 같은 것도 많다. 서울과 지역을 오가는 데 기름값이 하루 10만원 넘게 든다.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위해 물밑 노력도 하고 있다. 내가 쉬는 게 아니다.”

    L의원은 “40일 동안 국회의원으로서 기초를 잡을 수 있었다. 지역의 문화발전과 관련한 법안도 세 건이나 준비하고 있다”며 웃었다.

    299명의 18대 의원들은 6월20일 첫 세비를 받았다. “일도 안 하면서 세비만 받아간다” “불한당(不汗黨)이 따로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송구하다”면서 세비로 송아지 4마리를 구입한 뒤 지역구에 위탁해 화제가 된 의원도 있다.

    “나는 40일간의 의정활동에 대한 반성으로 세비를 반납했다. 개별적으로는 일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본회의 상임위 활동을 안 했는데 어떻게 국민이 주신 돈을 받을 수 있겠는가. 세비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받은 돈을 사회복지 시설에 기부했다.”(자유선진당의 또 다른 L의원)

    국회법은 ‘국회의원 임기 시작일(5월30일)로부터 7일째(6월5일)’에 개원식을 갖도록 규정돼 있다. 원(院) 구성은 ‘선택’이 아닌 국회의 ‘의무’다. 일을 게을리하면서 법도 어긴 셈이다.

    의원들이 받은 첫 세비는 901만원. 6월 세비(846만6400원)에 5월30, 31일 수당이 더해졌다. 차량 유지비, 사무실 운영비를 포함하면 1인당 수령액은 1100만원이 넘는다. 의원들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7·9급 비서를 각각 1명씩 둘 수 있다. 의원과 보좌진에게 첫 달 지급된 돈을 모두 더하면 90억원이 넘는다.

    “세비 반납은 국민에게 용서를 비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근로자가 무단결근을 하면 퇴출당하고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면 퇴학당하지 않는가.”(한나라당 H의원)

    국회가 공회전(空回轉)한 40일 동안 국회 의원회관에선 의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초선의원들은 지역구에 머무르는 예가 많았다. 한나라당 K의원은 “개원이 늦어지면서 남은 시간을 지역구 관리하는 데 썼다”며 웃었다. 한 의원 보좌관은 “배드민턴 동호회를 찾는 게 주요 일과인 의원도 있다”면서 “대부분 의원들이 지역구에 머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지역구 상주하다시피 하며 체육대회까지 챙기기도

    무소속 C의원은 지역구에 상주하다시피 한다. 지역사업 예산을 따내고자 관계자들을 불러 만나고, 현장을 다니면서 공사도 챙긴다. “공사 감리 담당자도 아니면서…”라는 비딱한 시선도 있으나 그는 아랑곳 않는다. 국회가 공전된 데다 소속 정당도 없는 자유로운 처지여서 지역사업 챙기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또 다른 무소속 L의원은 일주일에 4, 5일을 지역구에서 머물렀다. 4, 5월엔 체육대회를 주로 다녔고 6월엔 지역구의 각종 이취임식이 많았다고 한다. 국회가 ‘쉬는 동안’ 그는 보좌관 1명과 여비서관 1명만 의원회관에 남겨두고 나머지 보좌진은 지역구에서 민원을 해결하게끔 했다. L의원처럼 보좌진 2~4명을 지역구에 상주시키는 의원이 적지 않다.

    18대 국회 초선들의 특징은 지역구 관리에 특히 힘쓴다는 점이다. 17대 국회 때 이른바 ‘탄돌이’ 의원들이 4·9총선에서 대거 낙선한 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한 중진위원 보좌관은 “의원들이 지역구 일을 열심히 하는 걸 나무랄 수는 없지만, 변화를 주도해야 할 그들이 민원창구 노릇에 더 매달리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점휴업이던 국회를 뒤로하고 외유를 다녀온 의원도 있다. 민주당 의원 9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한나라당 의원도 20명 넘게 해외에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C의원은 “다음 주에 외국 출장이 잡혀 있는데 취소했다. 개원이 될 것 같으냐”고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국회 등원 여부를 결정하는 의원총회가 열린 7월9일 민주당 S의원은 개인적인 일을 보러 제주도로 ‘출타 중’이었다. 그는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관리할 지역구를 갖고 있지 않다.

    상당수 보좌진도 일손을 놓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상임위가 결정되지 않은 까닭에 부처에 자료를 요청하기도 머쓱하다. 한 보좌관은 “예년 같으면 가을 국정감사 준비를 시작했을 때다. 요청한 자료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분주하게 움직일 때”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부처 보고를 받아야 법안을 준비할 텐데 아직 상임위가 결정되지 않아 손을 놓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비인기 상임위의 경우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기도 했다. 한나라당 K의원은 국토해양위를 원했으나 국방위로 교통정리됐다. 최근 방위사업청의 보고를 받았는데 이지스함, PAC-3 등의 무기 이름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는 “지역구가 휴전선 접경지역이라 오히려 잘됐다고 여긴다. 남북문제에도 원래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군 출신 L의원은 국방위를 원하고 있으나 처지가 조금 곤란하다.

    “17대 국회 때는 군 출신 의원이 적었다. 그런데 18대 국회엔 비례대표를 포함해 군 출신이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 나보다 12~13년 후배인데 ‘선배 오시면 저희들이 할 말 다 못합니다’라고 해서 고민하고 있다. 상임위는 나눠먹기식이 아니라 주특기에 따라야 한다.”

    보건복지 분야 전문가로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온 S의원은 보건복지위에 배정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가 바람대로 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방귀깨나 뀌는 다선의원들이 이 상임위를 점찍었기 때문이다. 그는 18대 국회 첫 저격수로 불릴 만큼 광우병 논란과 관련해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는데, 원하는 상임위에 배정받으려는 시위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구속된 의원들의 보좌진 “의원님 대신 우리가 공부 중”

    18대 국회 때도 선수에 따라 나눠먹기식으로 상임위 라인업이 짜이는 경우가 많다.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인 C의원의 보좌진은 남북문제, 외교문제 등을 공부하느라 바빴는데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C의원의 한 보좌진은 “의원께서 통일외교통상위원회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된 의원들의 의원회관 사무실은 한가하다 못해 썰렁하다. A의원 사무실엔 책상과 텅 빈 책장만 덩그렇게 놓여 있다. 그런데도 보좌진 6명은 모두 뽑았다. 의원이 구속 중이니 그들은 할 일도 별로 없다. 보좌진은 ‘공부 중’이란다. 역시 구속된 B의원의 보좌진은 일찌감치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후 5시 반께 B의원의 방은 문이 잠겨 있었다.

    18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40일 동안 허송세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밥그릇 싸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역구 관리엔 ‘선수’지만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국회의원에 걸맞은 입법활동과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통해 조금은 편하게 먹고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이 같은 바람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모든 의원을 뭉뚱그려 비난할 수는 없지만 “참 나쁜 국회”라는 앞서 임씨의 표현이 크게 틀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정말로 일하고 싶었다”는 한 비례대표 여성 의원의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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