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5

2008.07.22

한-러, 연해주 농업특구 손잡을까

항카湖 주변 제주도 2.5배 면적 대상으로 러측 적극적 … 9월 정상회담서 논의될 듯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8-07-14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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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러, 연해주 농업특구 손잡을까

    구글어스로 본 항카호수. 이 호수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걸쳐 있다. 호수 남쪽과 서쪽에 호롤군과 항카군이 있다.

    2008년은 한-러 교류사에 역사적인 해가 될 것 같다. 한-러 정상이 100일도 안 되는 기간에 세 번이나 만나는 것은 한국 외교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만남은 7월9일 일본 도야코(洞爺湖)에서 열린 G-8 회담에서 이뤄졌다. G-8 확대정상회담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을 25분간 만났다. 두 번째 만남은 8월9일 베이징에서 이뤄진다. 한-러 정상은 8월8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이튿날 단독으로 만나 우의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만남은 9월25일쯤으로 예정된 이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세 번이나 만나면 논의할 의제가 있어야 한다. G-8 회담 직후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하는 문제, 시베리아 가스관의 한반도 연결문제와 남·북한-러시아의 3각 경협 등이 논의됐다.

    베이징 올림픽 때는 북한 인권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중국 인권단체와 탈북자들이 중국과 북한의 인권 탄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위가 터지면 한-러 정상은 자연스레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 돈 끌어들여 극동러시아 개발 계획



    일본과 중국에서 열리는 두 차례 정상회담은 9월 말로 예정된 한-러 정상회담을 위한 탐색전에 가깝다. 9월 말의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두 나라의 이익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한-러 관계의 핵심 의제는 우주발사체 협정이었다. 이 협정이 체결돼 한국은 러시아의 기술을 받아들여 올해 연말쯤 숙원사업인 한국형 우주발사체(LSLV-1) 개발을 완료해 100kg급 위성을 자력으로 띄우는 시험을 할 수 있게 됐다. 9월 말 한-러 정상회담은 이처럼 양국의 현안과 숙원사업들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러시아의 땅은 무척 넓다.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극동러시아는 연해주와 하바로프스크 등 8개 주와 1개 자치공화국(사하자치공화국)을 가리키는데, 이곳은 러시아 대통령 극동지역 전권대표가 관할한다. 극동대표의 가장 큰 고민은 모스크바 등 서부지역에 비해 크게 낙후한 이 지역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는 것.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8개 주와 1개 자치공화국 대표들이 이따금 모여 지역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극동개발회의를 한다. 그 회의에서 나온 답이 한국의 자본을 끌어들여 이곳을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1991년 초 한국이 제공한 대소(對蘇) 차관이다. 러시아가 승계한 이 차관은 한 차례의 탕감과 세 차례 현물상환 등이 있어 2008년 1월 현재 12억 달러의 원리금이 남아 있다. 극동의 대표자들은 한국에 갚아야 하는 이 돈을 토대로 극동러시아를 발전시키자는 방안을 만들었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연해주에 속하는 호롤군(郡) 항카군이다. 두 군은 러시아어로 ‘항카’, 중국어로 ‘싱카이(興凱)’로 불리는 제주도보다 2배 이상 큰 면적을 가진 호수 서남쪽에 있다. 이 호수의 최대 수심은 10m 정도밖에 되지 않고 주위는 대부분 습지로 돼 있어 토질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항카호 서쪽에 있는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에서는 농업이 이뤄진다. 그러나 항카호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러시아 쪽에서는 습지만 남아 있을 뿐 농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대순진리회를 비롯한 한국 기관과 기업들이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대단위 개척농업을 하는 것이다.

    극동의 실력자들은 한국 기업과 기관이 미리 상당량의 땅을 매입한 이곳에 한-러 농업특구를 만들자는 제안을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이곳에 투자한 한국 기관과 기업들은 전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들은 땅을 더 매입해 ‘고려 농업특구’를 만들자는 제안을 한국 정부 요로에 요청하니, 양측의 요구는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농업은 ‘의식주(衣食住)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의식주를 만드는 것은 곧 생필품 제조이니,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공업으로 분류하는 경공업이 러시아에서는 농업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농업특구가 만들어지면 대단위 농업경영뿐 아니라 의류 제조, 식음료 제조, 건축자재 제작 등 경공업 공장도 들어설 수 있다. 이곳은 특구이므로 이곳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관세를 내지 않고 생산품을 한국으로 가져가 판매할 수 있다.

    호롤군과 항카군을 합친 면적은 제주도의 2.5배인데 극동러시아는 두 군 전체를 특구로 지정하자는 입장이다. 이곳이 특구가 돼 한국 기업들이 투자하면, 극동러시아는 5만명가량이 고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인건비를 건지는 것 외에 한국공장이 필요로 하는 원자재를 공급하는데, 원자재 대금은 12억 달러에 이르는 대러 차관에서 상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농업특구 성사 땐 고려인·북한인 농업노동자로 활용 검토

    농업특구의 상당 부분은 농사를 짓는 지역이 되는데, 대규모 농장에서 일할 농업노동자로는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고려인과 북한인들이 검토되고 있다. 고려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오면 장차 이곳은 고려인 자치주가 될 수도 있다. 과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극동러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북한의 제대군인들을 노동자로 보내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극동지역에서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북한은 극동러시아를 ‘그들의 안방’으로 생각해 노동자 파견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설립한 농업회사와 경공업 공장은 북한인들을 노동자로 고용할 수도 있다. 북한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남북경협을 한국은 러시아 땅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협이 이뤄지면 이곳에서 생산한 농산물과 경공업 제품을 기차로 북한과 한국에 공급함으로써 TSR와 TKR를 잇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때문에 이명박 정부와 러시아 정부는 고려농업특구 선정 건을 한-러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발해의 깃발이 나부꼈던 연해주에 고려농업특구가 설치돼 한국 기업의 깃발이 나부끼는 시절이 올 것인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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