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결혼 방정식’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입력2008-07-02 09: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결혼 방정식’

    ‘컴퍼니’의 모든 출연자들은 검은 정장을 입고 나온다. 결혼을 상징하는 색이 흰색이라면, 그 이면을 보여주는 색은 검은색임을 의미한다.

    19세기 독일의 시인 하이네는 ‘결혼은 어떤 나침반도 항로를 발견한 적이 없는 거친 바다’라고 했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그중 적지 않은 시간을 연애와 결혼에 대해 고민한다. 마치 먼 바다에 풍랑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기잡이 배에 시동을 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어부 같다고나 할까? 뮤지컬 ‘컴퍼니(Company)’의 한국 공연(연출 이지나)은 시대를 초월한 인생의 화두,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한 노총각과 주변 친구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담아냈다.

    바비라는 애칭을 가진 로버트는 뉴욕에서 좋은 직장에 다니며 독신으로 살고 있다. 어느 날 35번째 생일을 맞은 그의 아파트에 다섯 쌍의 결혼한 친구들이 모여 깜짝파티를 열어준다. 바비는 그 커플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며 그들에게서 결혼에 관한 직간접적인 조언을 듣는다. 결혼에 대해 한편으로는 후회하면서도 동시에 감사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는 바비에게도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주변 여자들의 장점만 섞어놓은 사람은 없나 고민하며 결혼에 대한 즉답을 피한다. 극의 말미에 이르러서 그는 ‘결혼의 성공은 적당한 짝을 찾기에 있기보다는 적당한 짝이 되는 데 있다’는 앙드레 모루아의 말처럼, 결혼이란 그것을 통해 내가 무언가를 얻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임을 조금씩 느끼게 되지만 막이 내릴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독신이다.

    주제 표현 중시 ‘콘셉트 뮤지컬’ 효시 작품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역사를 두 가지 측면에서 다시 쓴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하나는 내용 면에서 결혼을 인생의 정답 혹은 해피엔딩으로 설정하지 않고 고민과 선택의 문제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뮤지컬에서 결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 결혼을 해피엔딩으로 그린 반면, 이 작품에서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현대인의 결혼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형식 면에서도 구체적인 스토리가 존재하기보다는 주인공 바비가 공간을 이동하며 만나는 친구들의 행동을 목격하며 점차 사고를 전환해가는 독특한 구조를 썼다. 이를 구체적인 이야기의 진행보다 주제의 표현방식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콘셉트(Concept) 뮤지컬’이라고 한다. 1970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컴퍼니’는 콘셉트 뮤지컬의 효시와 같은 작품이다. 예를 들면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바비(고영빈 분)이고 13명의 친구들이 조연을 맡고 있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결혼’ 그 자체다. 즉 이 작품은 바비가 화려한 솔로 생활을 청산하고 남들처럼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이야기에 치중하는 대신, 주인공과 주변 친구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비선형(非線型) 에피소드의 나열을 통해 ‘결혼’자체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에피소드를 주도하는 것은 바비를 둘러싼 다섯 쌍의 커플과 세 명의 여자친구들이다. 커플 친구들로는 서로에게 금주(禁酒)와 다이어트를 요구하며 살얼음 같은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해리(서영주 분)와 사라(이정화 분), 짧은 일탈을 꿈꾸지만 천성적인 보수주의자 커플인 데이비드(홍경수 분)와 제니(양꽃님 분), 이혼을 하고서야 비로소 더 잘 지내게 되는 피터(선우 분)와 수잔(박수민 분), 결혼식 직전의 불안한 신랑과 신부를 보여주는 폴(민영기/정상윤 분)과 에이미(방진의 분), 속 깊은 보통남자와 염세주의자 아내 커플인 래리(김태한 분)와 조앤(구원영 분)이 있다.

    또한 진보에서 보수에 이르는 연애관을 가진 세 명의 여자친구 마르타(난아 분), 에이프릴(유나영 분), 캐시(김지현/이혜경 분)도 있다. ‘컴퍼니’는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주연’과 대비되는 ‘행동하는 조연들’이 만드는 모호한 스토리 전개의 틈새를 연출가가 여러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기에 리얼리즘 시대의 모더니즘처럼 낯설지만 예술적이다.

    결혼에 대한 진실 가감 없이 전달 깊은 울림

    이번 한국 공연은 원작을 충실하게 살리면서 작품에 내재한 모던한 주제를 무대에서 시각적으로 일치시키는 세련된 연출이 돋보였다. 예를 들면 무대는 결혼에 대한 냉정한 시선을 상징하듯 온통 직선으로 이뤄졌다. 무대 재질은 첨단 인테리어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리 블록을 활용했다. 유리 블록이 가진 불투명성은 결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 바비의 내면을 상징한다. 이와 함께 형형색색의 조명을 투과시키며 다채로운 색깔을 뽐내는 장면에서는 바비 주변의 친구들이 처한 결혼에 대한 현실을 천태만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모든 출연자가 블랙 컬러의 정장을 입은 것은(심지어 에이미의 웨딩드레스조차도!) 검은색이 결혼의 이면을 표현하는 가장 선명한 색임을 보여준다.

    귓가에 오랜 잔향을 남기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음악은 결혼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갖기보다는 결혼에 대한 진실을 가감 없이 느끼게 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공연은 8월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열린다. 문의 02-501-7888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