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노터치! 개 복제 시장 ‘돈脈’

사자견 이어 암 탐지견 복제 성공 … 애완견도 추진, 시장 잠재력 무궁무진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8-06-30 17:2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노터치! 개 복제 시장 ‘돈脈’
    “암 탐지견 네 마리 복제에 성공했다.” 6월16일 바이오 벤처기업 알앤엘바이오(RNL Bio) 측은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팀이 냄새로 암 환자를 탐지하는 개 ‘마린’의 체세포를 이용해 네 마리의 복제개를 탄생시켰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2005년 당시 황우석 박사 등과 함께 세계 최초로 복제개 스너피를 탄생시킨 인물. 알앤엘바이오는 이 교수의 고등학교(청주 신흥고) 대학교(서울대 수의학과) 선배인 라정찬 대표가 2000년 설립한 회사로, 6월10일 서울대와 복제개 생산방법 등에 대한 특허전용실시권 계약을 맺었다. 개 복제의 상업적 이용을 전담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서울대 동물병원과 공동으로 동물복제클리닉을 설립했다.

    이병천 교수팀 ‘마린’ 네 마리 탄생시켜

    지난해 9월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가 일본에 갔을 때 각 방송매체마다 암 탐지견 마린 이야기로 일본 전역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마린은 일본 복지견육성협회에서 교육받은 리트리버종(種). 사람의 입냄새와 입김만으로 정상인과 암 환자를 구별하는 능력으로 화제가 됐는데, 암 덩어리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화학물질을 후각으로 조기 진단하는 훈련을 받은 것이다. 이영순 교수는 이병천 교수와 라 대표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3~4개월 복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고 한다.

    결국 마린을 보유한 줄기세포 기업 심스(Seems)사로부터 복제 의뢰를 받았고, 올해 2월 이병천 교수와 라 대표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5개의 빈 통이 있었어요. 암 탐지견 훈련교관이 그중 한 통에 암 환자의 호흡(숨)이 들어 있고 나머지는 정상인의 호흡이 들어 있다고 설명하더군요. 마린은 한 통 앞에 조용히 앉았는데, 그게 바로 암 환자의 호흡통이었어요.”

    마린의 능력을 확인하는 순간 이 교수와 라 대표는 호흡을 멈췄다고 한다. 마린이 자신의 앞에 앉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라고.

    라 대표의 당시 기억이다. “카레 봉지 5개를 놓고 그중 1개에 얇게 썬 당근 반 조각을 넣었어요. 훈련교관은 당근을 씹고 마린에게 ‘후~’ 하고 불었죠. 그랬더니 마린은 당근이 든 카레 봉지 앞에 앉았어요. 카레 냄새가 얼마나 강한데….”

    사람보다 40배 많은 후각세포를 지녀 수만 배 더 예민한 ‘개코’에 감탄한 이병천 교수는 마린의 체세포를 채취해 돌아왔다. ‘엄마’ 마린과 99.99% 같은 복제개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훈련 성공 여부에 따라 암 탐지견의 능력에 차이가 생기겠지만, ‘기본 바탕’만은 완벽한 셈이었다. 특히 마린은 자궁축농증으로 자궁수술을 받아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한국의 복제기술로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다면 심스사로서도 ‘윈-윈’이었다.

    여기서 잠깐. 체세포 복제과정을 신문 등에서 수십 번 접했겠지만 ‘리마인드’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복제 대상 개의 체세포를 채취해 배양한다. 이어 다른 개에서 성숙한 난자를 채취해 핵을 제거한 뒤 배양한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고 전기자극으로 세포를 융합한다. 수정란이 생성되면 대리모견에 수정란을 이식하고 복제개를 탄생시킨다.

    2005년 이후 이병천 교수는 체세포 복제과정에서 난자 성숙 시점을 세분화해 개 복제 착상률을 높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실험의 80%는 한 마리에서 한 마리의 복제동물만 탄생시키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한 마리에 다수의 복제동물 기술을 적용한 것. 이번 실험에서는 대리모견에 13개의 수정란을 이식해 4개가 착상됐다.

    노터치! 개 복제 시장 ‘돈脈’

    알앤엘바이오 라정찬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서울대 수의대 연구원들이 암 탐지견 ‘마린’의 복제개인 ‘마린 R, N, L, S’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알앤엘바이오 측은 복제개를 내년 초 일본에 보내 암 탐지견 초기 훈련을 시키거나 아예 국내에 암 탐지견 훈련센터를 세워 탐지견으로 만들 계획이다. 이 가운데 한 마리는 심스사에 기증하고 두 마리는 수요자에게 분양할 예정이다.

    이병천 교수팀이 2005년 세계 최초로 복제개를 탄생시킨 이후 3년간 다른 나라에서 개 복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국내 개 복제기술도 꾸준히 발전해 스너피 복제 당시 0.8%였던 복제 성공률은 25%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네 마리 대리모견에 수정란을 이식하면 한 마리에서 성공한다는 얘기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 복제시장’도 서서히 형성되는 추세다.

    시장성도 있어 보인다. 이 교수팀이 복제한 암 탐지견 한 마리의 분양가는 5억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황우석 박사가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도 중국의 멸종위기종인 사자견(티베트 마스티프) 복제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자견은 순종 한 마리 가격이 1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이 된다는 뜻.

    복제기술력 향상과 시설 확충 과제

    노터치! 개 복제 시장 ‘돈脈’

    ‘마린’의 복제개들.

    암 탐지견이나 폭발물 탐지견 등 특수 목적견 또는 멸종위기종 외에도 시장은 또 있다. 한 미국 여성은 올해 초 알앤엘바이오 측에 암에 걸린 자신의 애완견 ‘부거(피플종)’의 복제를 의뢰했다. 유기견들을 데려다 키웠던 이 여성은 어느 날 흥분한 한 유기견에게 팔을 물리는 등 공격받고 있을 때 부거가 등장해 그 개를 물리쳤다고 한다. 이후 부거는 양팔을 다친 주인의 양말을 벗겨주고 냉장고 문을 열어주는 등 ‘충성’을 다 바쳤다고. 복제 의뢰비용은 1억5000만원이었지만 회사 측은 홍보 효과 등을 감안해 5000만원에 복제를 진행 중이다.

    미국에 약 6000만 마리의 애완견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시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게 라 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고액의 복제 비용을 낮춰 ‘파이’를 키우려면 기술력과 시설을 갖추는 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개는 소 돼지 양과 달리 자연배란 상태의 난자를 활용해야 할 뿐 아니라 복제기술상의 어려움도 많다. 한국만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개 복제. ‘복제 = 돈’이 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