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가정폭력 시달린 IQ121 사이코

안양 초등생 살해범 정모 씨 정신감정… 소외감 벗어나기 위해 성적 자극 환상 키워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6-30 13: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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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폭력 시달린 IQ121 사이코

    지난 3월 경찰에 검거된 정모 씨. 정신감정 결과 정씨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징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경기 안양에서 여자 초등학생 2명을 납치해 성추행한 뒤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모(39) 씨. 그의 잔인한 범죄가 우리 사회, 특히 전국의 딸 가진 부모에게 던져준 충격과 공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정씨의 범행 이후 어머니들은 딸을 학교에 보내놓고도 안절부절 못한 채 애를 태운다. ‘혹시 우리 아이가 납치 같은 범죄에 노출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아예 하교시간에 맞춰 교문 앞에서 자식을 기다리기도 한다. 한창 세상을 뛰어다닐 딸들의 발걸음을 어쩔 수 없이 집이라는 공간으로 제한해야 하는 우리 어머니들. 정씨가 저지른 충격적인 사건의 후유증을 되레 어머니들이 심각하게 앓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 2004년 발생한 군포 40대 여성 살해사건의 범인도 정씨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과거 세간을 뒤흔들었던 연쇄살인범의 계보를 잇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법원도 사형이라는 가장 높은 수위의 처벌을 마다하지 않았다. 징역이라는 틀로는 교정 자체가 불가능한 인간형이라는 것이다.

    정씨는 왜 불행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길 자처했을까. 정작 본인은 술과 환각제 흡입으로 인한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수사과정에서 연쇄살인범들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사이코패스 기질을 드러냈기에 그의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그렇다면 정씨의 인격은 어떻게 형성돼온 것일까. 법무부 심리평가에서 나타난 그의 성장과정과 정신분석 결과를 최초로 공개한다.

    연쇄살인범의 전형적 징후인 야뇨증·동물학대 증상



    법무부 산하 국립법무병원의 최상섭 병원장(정신과, 의학박사)은 4월4일 9시간에 걸쳐 정씨를 면담하고 구체적인 심리상태를 항목별로 평가했다. 최 소장의 평가에 따르면, 정씨는 어릴 때부터 과격하고 공격적인 성향의 불안정한 인격을 지녔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가 삐뚤어진 것은 유년 시절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군인 출신 아버지의 신체적 학대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아버지의 폭력은 상당히 심각했다. 정씨의 면담 진술에 따르면,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 지갑에서 300원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증후군이 심해지면서 정씨는 자연스레 난폭한 성격이 됐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유전적 요소가 정씨의 반사회적 인격장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가능하다.

    성격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면서 정씨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낸 적도 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화풀이를 자신에게 한 것이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 분을 삭이곤 했는데, 그러면서 점점 통증에 대한 고통을 모르는 상태까지 ‘진화’한 것이다. 정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반장까지 할 정도로 지적 수준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한번 고착된 공격적 성향은 친구들을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무단결석을 자주하는 이른바 ‘반사회적 품행장애’로 이어졌다.

    절도·폭행 혐의로 복역한 이후 술과 환각제에 빠져

    정신감정에서 평가된 IQ(지능지수)는 121. 2004년 서울서부보호관찰소 심리검사실은 무려 20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유영철의 IQ를 측정했고, 그 결과 112가 나왔다. 유영철의 IQ가 100명 중 21위에 해당하는 수치였음을 감안한다면 정씨의 지적 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특히 언어성 지능지수(116)보다 동작성 지능지수(128)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공간 지각능력과 민첩성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정씨는 연쇄살인범의 전형적 징후인 야뇨증과 동물학대 성향도 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야뇨증에 시달렸고, 20대 후반엔 새끼고양이를 죽이거나 옆집 개를 발로 걷어차는 일이 빈번했다. 이유 없이 쓰레기통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성냥갑에 불을 붙여 던지면서 묘한 쾌감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그의 성격은 더욱 불안정해졌다. 분노발작, 욕구불만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수시로 가출했고 비행 청소년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술도 이때 배웠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아예 또래 폭력집단까지 조직했으며 고3 때 처음으로 환각제(본드)에 손을 댔다.

    고교 졸업 후 20세에 입대해 보병 M60 기관총 사수병으로 복무하다 단기하사로 군복무를 마친 정씨는 25세에 일반 가정집에서 비디오기기를 훔치다 절도 혐의로 검거돼 1년6월의 실형을 살았다.

    가정폭력 시달린 IQ121 사이코

    정씨가 초등학생들을 살해하고 유기한 지역을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색하고 있다.

    출소 이후 2년제 대학에 입학(전자 관련 전공)하는 등 나름대로 재기를 꿈꿨지만, 29세에 애인 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또다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때부터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술과 환각제를 더욱 가까이했다.

    그는 안정적인 직업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생계유지를 위해 분식점 배달직원으로 취직한 적은 있지만 3개월가량 월급을 받지 못해 그만뒀다.

    2004년부터는 아예 대인관계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 비인간적 관계에 익숙해진 것. 대인관계 자체를 불신했고 적대감이 많아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실제로 정씨는 자신이 혼자 사는 원룸 건물에 새 입주자가 오면 일부러 인상을 험악하게 짓는 등의 방법으로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렇게 일반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은 그는 밤에만 집 밖으로 나와 산을 돌아다녔다. 2004년 유영철 역시 당시 서울보호관찰소 정신감정에서 자기애적 정신병질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 바 있다.

    정씨는 소외감과 외로움 등에서 스스로를 위무하기 위해 비이성적인 성자극의 환상을 발달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본 성인비디오에 나온 성교 장면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성에 대해 줄곧 높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성인이 된 이후엔 가학적 성행위를 담은 동영상을 수집하는 등 변태성욕에 집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검사 결과 정씨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이코패스로 평가됐다. 정씨는 심리검사에서 “자신의 범행이 안 걸릴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거된 뒤에는 우발적 범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6월25일에는 변호사를 통해 1심 사형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다. 정서적 측면에서도 자신의 살인행위에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징후를 보이고 있다. 그가 검거되지 않은 채 이 사건이 묻혔다면 과연 어떠한 충격적인 일들이 더 벌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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