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9

2008.06.10

뜨고 진 그라운드의 별들 아직도 내 가슴에…

1984년 코리안시리즈 영웅 최동원, 비운의 주역 김일융 등이 연출한 감동 잊을 수 없어

  • 김은식 ‘야구의 추억’ 저자 punctum@paran.com

    입력2008-06-02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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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고 진 그라운드의 별들 아직도 내 가슴에…

    한국시리즈 명승부 가운데 하나인 1984년 롯데 vs 삼성 7차전. 시리즈 중 4승을 거둔 ‘무쇠팔’ 최동원 선수(왼쪽)가 펄쩍 뛰어오르며 기뻐하고 있다.

    1984년 10월9일. 당시 3년째를 맞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이 치러졌던 그날은, 아직도 수많은 ‘프로야구 키드’들의 삶 속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기억되고 변주되며 되새겨지고 있다.

    프로야구가 처음 생겨난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회원이던 나는 야구 룰조차 익히지 못한 사이 ‘1할대 승률’의 쓴맛을 먼저 배웠다. 이듬해인 83년 슈퍼스타즈는 그 당혹스런 열패감을 보상이라도 하듯 재일교포 30승 투수 장명부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복수의 쾌감’을 맛보게 해줬다. 하지만 다시 한 해 뒤인 84년, 무려 3주간 18게임을 내리 참패하면서 내게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이 어떤 것인지를 일깨웠다.

    바로 그해 한국시리즈, 슈퍼스타즈는 상상 속에서조차 접근할 수 없던 그 꿈의 무대에서 나의 관심을 잡아끈 것은 9월22일과 23일 벌어진 삼성과 롯데의 정규시즌 마지막 2연전에서의 ‘고의 패배’ 사건이었다.

    만만한 팀 고르려 고의 패배 ‘얄미운 삼성’

    그해 진작 전기리그 우승을 확보한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가능하면 만만하고 덜 껄끄러운 팀이 파트너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후기리그 막바지까지 우승을 다퉜던 팀은 OB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 물론 두 해 전 한국시리즈에서 이미 만나 쓴맛을 안겨준 데다 그해 상대전적에서도 9승11패로 부담스러웠던 OB 베어스보다는 상대전적 13승5패로 만만했던 롯데 자이언츠가 김 감독의 입맛에는 더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간만의 기회를 살려 눈도장을 찍겠다며 분발한 눈치 없는 삼성 2진들에 의해 비극으로 흘러갔다. 삼성이 1회에서만 6점을 뽑는 선전을 펼치자 3회 말부터 김 감독은 초등학생 눈에도 민망했던 고의 패배라는 무리수를 두고 만 것이다.

    그 한국시리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 것은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모기업의 경제력과 정치력을 바탕으로 프로 원년부터 가장 많은 국가대표 출신들을 이끌며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던 삼성 라이온즈. 그러나 그 힘만으로도 모자란다는 듯 공중파 TV 카메라 앞에서조차 암수(暗數)를 서슴지 않던 모습. 그것은 그대로 막강한 힘과 세력을 지니고도 첩첩산중 초막으로 자객단을 보내 ‘후환을 없애려는’ 무협영화 속 악당의 모습이었고, 꼭 그만큼의 정의감과 의협심으로 똘똘 뭉친 초등학교 5학년짜리 소년의 가슴에 불을 확 질러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이 1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며 먼저 기세를 올렸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가소로운 일격에 기분이 상했다는 듯 2차전에 나선 롯데의 ‘조무래기 투수들’을 맹폭했다. 다시 최동원이 완투한 3차전은 롯데가 가져갈 수 있었지만, 4차전을 7대 0으로 완패하며 승부의 추는 2승2패로 균형이 이뤄졌다. 승부의 길은 분명했다. 마치 모세의 팔이 들어올려진 동안에만 이길 수 있었던 구약성서 속 이스라엘 유랑민들처럼, 롯데는 최동원이 마운드에 있는 동안에만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나흘 사이에 두 번 완투한 최동원의 체력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이어 10월6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5차전. 3차전 완투 뒤 사흘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은 세 번째 완투를 감행했지만 결국 3대 2로 승부가 갈리며 절망적인 처지에 내몰렸다.

    그러나 이튿날의 6차전. 임호균이 4회까지 버티며 2점차 리드를 잡자, 최동원은 마치 한쪽 팔이 날아가자 다른 팔로 검을 쥔 영웅처럼 마운드에 올라 6 타자 연속 삼진을 비롯해 5이닝을 틀어막았고, 승부의 추는 또 한 번 3승3패로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하루를 쉬고 10월9일. 3만500명이 고슴도치 등짝처럼 관중석을 꽉 채운 잠실야구장에서 7차전 마지막 승부가 시작됐고, 각기 시리즈 3승을 기록한 최동원과 김일융이 격돌했다.

    뜨고 진 그라운드의 별들 아직도 내 가슴에…

    롯데의 ‘영웅적’인 우승 뒤 패배자로 기억된 당시 OB 베어스 김성근 감독(위)과 삼성의 에이스 김일융 선수.

    경기 후엔 영웅도 악당도 아닌 전설의 주역일 뿐

    먼저 무너진 쪽은 물론 세 번의 완투를 포함해 일주일 사이 32이닝을 던진 최동원이었다. 그는 2회 말 배대웅과 송일수에게 연속 적시타를 허용하며 3점을 잃었고, 6회 말 오대석에게 홈런을 맞으면서 한 점을 잃었다.

    그러나 김시진, 권영호와 짐을 나눠 졌기에 무리는 좀 덜했지만 이미 서른넷의 노장이던 김일융 또한 한계를 지나친 곳에 서 있었다. 근근이 한 점으로 막아내며 달려온 8회 초, 1사 후에 김용희와 김용철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그는 몇 번이고 감독을 응시했고, 그 순간 대안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김영덕 감독은 구조 요청을 외면했다. 막막한 벼랑 끝에서 그는 무의미한 견제구를 던지며 숨을 골랐고, 이윽고 5번 타자 유두열에게 몸 쪽 낮은 곳으로 슬라이더를 던졌다. 적어도 장타만은 맞지 않기 위해 낮게 제구했던 그 공은, 그러나 시리즈 내내 20타수 2안타로 부진했던 유두열이 골프를 치듯 퍼올렸던 배트를 맞고 파울라인을 따라 곧바로 날아 외야석 중간쯤으로 파고들었다. 3점짜리 역전 홈런.

    삼성은 그렇게 무릎을 꿇었고, 롯데는 그렇게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가만히 모자를 벗고 더그아웃으로 걸어가는 김일융의 뒷모습. 그리고 그곳에서마저 모습을 감춰버린, 한국시리즈 2패의 에이스 김시진. 꼭 두 해 전, 그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무너져 눈물을 흘렸던 이선희의 옆모습까지. 그 쓸쓸한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기세등등 패악을 부리다 최후의 일격에 소멸하는 악당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것은 넘어설 수 없는 벽을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돌진하다 결국 이마에 피 철철 흘리며 주저앉아 한숨 내쉬는 고독한 승부사들의 그것이었고, 매번 옆집 아들의 만 점짜리 성적표와 비교되며 쓸쓸하게 겉돌던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 경기는 최후의 순간 끝내 악을 응징해낸 정의의 드라마가 아니라, ‘초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투혼으로 승리를 쟁취한 최동원이라는 영웅과, 그 영웅의 한 치 뒤에서 멈춰 서야 했던 너무나 ‘인간적’인 비운의 거장들이 뒤엉켜 엮어낸 드라마로 기억되게 됐다.

    물론 한 세월 지나 떠올리자니, 고의 패배라는 참극의 희생자이기는커녕 수혜자였던 롯데 자이언츠 대신 그해 전후기 리그 통틀어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리고도 한국시리즈 출전권을 빼앗긴 김성근 감독의 OB 베어스가 삼켜야 했던 눈물과 회한 또한 흘려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야구란 물론 스포츠이고, 승부다. 그러나 야구장에서 자란 1970년대생들에게 그것은 드라마이자 삶의 은유였고, 그래서 사람과 세상을 느끼는 감성이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야구장의 가을에 붙는 ‘전설’이라는 단어가 언제나 묵직하게 내 가슴을 두드리는 이유도 그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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