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3

2008.04.29

변하지 않는 미술 법칙 ‘리얼리티에 근거하라’

  • 최광진 미술평론가·理美知연구소장

    입력2008-04-23 15: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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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게 만드는 고차원적 작업이다. 이들 학문의 공통점은 생동하는 자연으로서의 실재를 언어로 고정한다는 데 있다.

    수학이나 물리학 공식들은 복잡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에서 어떤 질서와 법칙들을 찾아낸 것이다. 비록 표현언어가 다르긴 하지만, 미술은 실재하는 대상을 고정한다는 점에서 학문과 공통점이 있다.

    작가들은 그림을 그릴 때 다차원으로 존재하는 실재를 포착하고자 한다. 우주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 세계뿐 아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한 에너지 같은 힘이나 보이지 않는 패턴이 존재한다. 현대의 작가들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미술에서의 서구 모더니즘은 과거 시각적인 차원을 재현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좀더 심리적, 정신적인 세계를 붙잡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림은 표현적으로 변해갔고, 시처럼 압축력이 커지면서 추상화가 탄생했다.

    칸딘스키나 폴록 같은 작가들은 신체의 자발적 표현성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갔고,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 등은 좌뇌의 수학적 정신성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갔다. 또 달리나 마그리트는 우뇌의 연상적 이미지로 무의식의 세계를 포착하려 했다.



    이처럼 모더니즘 작가들이 내적인 정신성이나 순수하고 이상적인 이성적 본질을 추구한 반면, 오늘날의 포스트모던 작가들은 순수하지 못한, 아니 현실에서 순수하기가 불가능한 우리 의식의 복잡성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

    그것은 시각적 리얼리티가 아니라 의식적 리얼리티다. 미술의 역사는 시각적 리얼리티에서 시작해 심리적 리얼리티와 정신적 리얼리티를 거쳐 의식적 리얼리티로 관심을 이동해왔다.

    이와 같이 시대마다 대상과 관심이 변할지라도 변치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작품이 철저하게 리얼리티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은 막연한 새로움과 변화가 아니다. 미술은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리얼리티를 열어 보이는 작업이다. 좋은 작품은 우리의 감각을 열어 인식 너머의 풍요롭고 오묘한 대자연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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