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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자면제, 藥인가 毒인가

발급 따른 각종 불편 해소 기대감…개인 범죄정보 제공 등 인권 침해 소지 커

미국 비자면제, 藥인가 毒인가

미국 비자면제, 藥인가 毒인가

서울 세종로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비자 신청을 하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시각으로 4월19일 새벽, 미국 워싱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방미(訪美) 중인 가운데 한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Visa Waiver Program·이하 VWP) 가입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됨으로써 양국의 비자면제 관련 협상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미국 비자면제 조치는 일반 국민에겐 미국대사관 앞에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편리’를, 항공사나 관광업계엔 미국관광 특수라는 호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VWP 가입에 필요한 여러 ‘선결조건’으로 인해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VWP는 무(無)비자 제도가 아니다. 현재 유럽 일본 등 27개국이 가입돼 있는 VWP는 단기 방문비자(B-1)와 관광비자(B-2)에 한해서만 적용된다. 최대 체류기간은 90일로, B-1과 B-2가 허용하는 최대 체류기간(180일)보다 짧다. 이 두 비자를 제외한 비(非)이민비자, 즉 E(무역·투자), F(학생), H-1B(단기 취업), H-2B(단기 기간제 취업), J(문화교류), L(주재원), O(특기자), P(스포츠 및 공연) 등이 필요한 사람은 VWP 가입 이후에도 현재와 동일하게 원하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인터넷 통해 미 정부로부터 입국 가능 여부 통보받아한편 비자면제에 이르기까지 한미 양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지난해 여름 발효된 VWP 개편 법안은 VWP 가입자격에서 비자 거부율 요건을 3%에서 10%로 완화하는 대신 새로운 조건을 여러 개 추가했다. VWP 가입을 위해서는 가입국이 전자여권을 발급해야 하고 미국과 긴밀한 사법협력을 맺어야 한다는 조건엔 변함이 없지만 △미국 내 전자여행허가제(Electronic Travel Authorization·이하 ETA) 및 출국통제 시스템 도입 △가입국과 여행자정보 공유 협정 체결 등이 새로 추가됐다. 즉 미국의 VWP 개편은 단순히 문호를 넓히는 게 아니라, VWP 가입국에 각종 보안요건을 부과함으로써 미국의 안보를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다.

VWP 가입을 통해 ‘미국대사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없애려면 우리 정부는 먼저 전자여권을 발급해야 한다. 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권법 전부개정안이 가결되면서 전자여권 도입의 법적 근거는 마련된 상태다. 전자여권에는 개인의 이름, 생년월일, 여권번호 등 신상정보와 디지털사진이 담긴 전자칩이 내장된다. 그러나 지문정보는 2010년 1월1일부터 수록하도록 연기됐다. 외교통상부는 올해 상반기에 외교관 등 공무원들에게 전자여권을 시범 발급하고 하반기부터는 일반 국민에게도 전면 발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 내외는 4월15일 제1, 2호 전자여권을 가지고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한편 미국 정부는 ETA를 도입해야 한다. ETA란 미국 방문 희망자가 미국 정부가 지정한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에 관한 정보를 입력한 뒤 미국 정부로부터 입국 가능 여부를 사전에 통보받는 시스템이다. ETA에서 개인이 직접 제공해야 할 신상정보에 관한 내용은 현재 양국이 협의 중이다. 그러나 입국신고서(I-94)에 기재된 사항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외교부의 관측이다. 현재 입국신고서에는 여권번호, 이름, 생년월일, 국적, 비자 종류, 비자 만기일 등이 기재돼 있다. 미국 정부는 또한 새로운 체제의 VWP 시행을 위해 지문, 홍채 등 생체인식 방식의 출국통제(Exit-control)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출국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이 시스템은 개인의 불법체류 사실을 인지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비자면제 시 발급 비용 연간 1000억원 절감 효과VWP 가입을 위해 한국은 미국과 여행자정보 공유 협정도 맺어야 한다. 이에 해당하는 여행자정보란 ‘테러 정보’와 ‘중요 범죄 정보’다. 양국은 이미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 같은 정보를 상호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중요 범죄라 함은 미국의 안보와 복지에 위협이 되는 범죄를 뜻한다”면서 “살인, 방화, 과실치상 등이 이에 해당하며 교통범죄 같은 전과는 제외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선결조건들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전국 29개 인권단체가 참여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4월19일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전자여권 반대 시위를 벌인 것에서 보듯, 인권단체들은 생체정보를 수록한 전자여권이 보안에 취약하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또한 ETA가 ‘새로운 형태의 비자 심사’라고 비판한다. 인권단체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 김승욱 활동가는 “대사관 심사가 온라인을 통한 심사로 바뀌었을 뿐이며, ETA에서 제공해야 할 정보가 입국신고서 수준이라는 것은 외교부의 예측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어떠한 민감한 정보가 포함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비자면제, 藥인가 毒인가

3월31일 외교통상부 여권과 민원실에서 유명환 외교부 장관(왼쪽)이 전자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민감한 사안으로 대두될 점은 여행자정보 공유 협정에 따라 국민의 범죄정보가 양국에 공유되는 문제일 것이다. 개인의 사법기록은 검찰과 경찰만이 조회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개인정보로 여겨진다. 미국 정부와의 범죄정보 공유에 대해 외교부는 “국내법 개정 없이 국내법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으로”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김기중 변호사는 “개인의 범죄정보를 외국 정부에 제공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로 간주된다”며 “그러한 사안을 법률 제정 아래 단계인 행정협정 수준에서 이행하려는 데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법률 제정을 통해 국민의 범죄정보를 외국 정부에 제공한다는 것도 과연 가능한 일인지 쟁점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면서 “상당히 중요한 사안이므로 좀더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B-1, B-2 비자 신청 건수는 2007 회계연도 기준으로 33만 건이다. 이 가운데 95% 이상이 별 무리 없이 미국 정부로부터 비자를 발급받고 있다. 미국 비자면제 조치의 혜택을 입는 사람들이 바로 이 95%에 해당하는 이들이라는 게 미국 측 설명이다. 외교부도 비자 발급에 따르는 연간 1000억원의 비용 절감을 논거로 VWP 가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이 미국 비자를 수월하게 발급받고 있다’는 사실은 VWP 가입 반대 논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 정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비용과 시간이 다소 들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이 별 무리 없이 미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인데, 매우 민감한 범죄정보까지 미국에 내주면서까지 VWP에 가입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더라도 좀더 편리한 미국행(行)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비자 발급에 따른 불편을 감수한 채 개인정보와 인권을 보호할 것이냐. 이 대통령은 미국 VWP 가입의 득실 논란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안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줄리아 R. 스탠리 주한 미국대사관 총영사

“디지털 사진 담은 전자 여권이면 OK”


미국 비자면제, 藥인가 毒인가
‘주간동아’는 비자면제 관련 양해각서(MOU) 체결에 맞춰 비자면제 프로그램(이하 VWP)에 관한 이해를 돕고 손익(損益)에 관한 국민의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줄리아 R. 스탠리(56·사진) 주한 미국대사관 총영사를 인터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첫 방미(訪美)길에 오른 4월15일 행해진 인터뷰에서 스탠리 총영사는 “한국인들이 미국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좀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대사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적극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영국 자메이카 모로코 등 세계 각국을 거친 스탠리 총영사는 2006년 9월 한국에 부임했다.

▼ 한국인에 대한 VWP 실시가 언제부터 가능하리라 보는가.

“국토안보부가 8~9월에는 전자여행허가제(이하 ETA)에 필요한 시스템 개발을 완료할 것으로 예상된다. 몇 달간의 예비 테스트를 거친 뒤 내년 초부터는 한국인들도 비자 없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으리라 본다.”

▼ 그간 한국인에 대한 비자 거부율은 얼마나 됐으며, 거부 사유는 무엇이었는가.

“2000 회계연도부터 2007 회계연도까지 단기 방문비자(B-1)와 관광비자(B-2)의 발급 신청 건수는 275만 건, 발급 건수는 250만 건이었다. 거부율이 약 9%인데, 최근에는 거부율이 5% 미만으로 상당히 낮은 수준을 보였다. 미국 정부는 비자 발급 신청자를 잠재적 이민자로 간주한다. 신청자는 비자 인터뷰를 통해 본국으로 돌아올 의사가 충분함을 입증해야 한다. 비자 발급이 거부된 사람들은 입증을 하지 못한 경우다. 서류 문제로 거절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 한국인이 연간 부담하는 비자 수수료는 얼마인가.

“2007 회계연도에 걷힌 비자 수수료는 3500만 달러(약 347억원)였다. 내년에 한국이 VWP에 가입하면 한국인들이 비자 수수료를 아끼게 되는 만큼 미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쓰길 바란다.(웃음)”

▼ 미국 정부가 전자여권에 담길 원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먼저 기억할 것은 세계적으로 여권의 우수성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향상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여권은 이름, 생년월일, 국적 등 신원사항이 전자칩에 저장돼 변조될 가능성을 차단한다. 또 지문 홍채 디지털사진 등 생체정보가 전자여권에 포함되는데, 미국은 전자여권에 담기는 생체정보가 무엇이든 변조를 어렵게 해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디지털사진을 담은 전자칩이 전자여권에 내장된다면, 그것으로도 요구사항이 충족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이의 안전한 여행이다.”

▼ VWP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면 미국 정부로부터 추방 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한다. 위반 사례로는 무엇이 있는가.

“신상정보를 거짓으로 제공한다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반면 숙박 예정인 호텔 이름을 잘못 기재하는 것은 덜 심각한 문제로 간주된다. 비자면제로 입국해 학교에 다니거나 취업을 한다면 심각한 위반 사항으로 분류될 수 있다.”

▼ VWP가 실시되면 기존의 B-1과 B-2 비자 발급은 중단되는가.

“그렇지 않다. 다양한 이유로 B-1과 B-2 비자 발급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VWP는 90일 미만의 체류만 허용한다. 90일 이상 체류를 원한다면 최대 180일까지 체류가 가능한 B-1 또는 B-2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과거에 발급받은 이들 비자의 유효기간이 남아 있다면 VWP 시행 이후에도 기존 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있다.”

▼ VWP가 시행되면 B-1, B-2 비자를 제외한 나머지 비자의 발급 속도가 더 빨라지는 부수적 효과가 나타나는가.

“현재 인터뷰 날짜를 정한 뒤 비자를 발급받기까지 평균 5일이 걸린다. VWP 시행 이후엔 하루 정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30여 명의 영사들과 100여 명의 한국인 직원이 비자 발급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VWP가 시행되면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국가나 다른 업무에 재배치될 것이기 때문에 획기적인 시간 단축은 기대하기 어렵다.”

▼ 미국 관광업계는 한국의 VWP 가입에 대한 기대가 큰가.

“기대가 매우 크다. 하와이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워싱턴 같은 미국 서부 지역과 양국 항공사들의 기대가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VWP 가입이 양국의 교류와 이해 증진에 기여했으면 한다.”

▼ VWP 협상에는 범죄정보 공유 등 민감한 사안이 포함돼 있는데.

“고위급에서 협상 중인 사안으로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 정보 공유에 관한 내용이나 방법을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

▼ VWP에 대해 한국인들이 오해하는 점이 있는가.

“VWP를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VWP는 90일 미만의 체류에만 허용된다는 점, 반드시 귀국행이나 타국(他國)행 항공권이 있어야 한다는 점, 또 미국 내에서 비자 신분(visa status)을 전환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주간동아 2008.04.29 633호 (p14~16)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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