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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닐 암필드 감독의 ‘캔디’

마약 쾌락 천국에서 잔혹한 지옥으로 추락

마약 쾌락 천국에서 잔혹한 지옥으로 추락

마약 쾌락 천국에서 잔혹한 지옥으로 추락
그러니까 이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의 캔디가 아니다. 술에 취하고 담배에 절어가며 결국 캔디와 캔디, 즉 아름다운 소녀 캔디와 또 다른 캔디(헤로인)에 중독돼가는 커플의 심연으로의 여행이다. 캔디. 그 첫맛은 달콤하지만 끝은 지독히도 쓴 천국, 지상, 지옥으로의 여행기. 단테도 울고 갈 마약시대의 신곡.

시인인 댄은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하며, 화가를 지망하는 캔디와 사랑에 빠진다. 영혼과 육체가 합일되는 경험을 하는 두 사람은 천국 같은 나날을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매춘과 사기, 절도 등의 지옥도 경험하게 된다.

어느 날 임신을 하게 된 캔디를 위해, 댄과 캔디는 합동으로 마약을 끊을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품에 안게 된 것은 사산된 아이의 불어터진 육체였다. 시골로 이사하고 직업을 구해보려 하지만, 점점 더 상황은 나빠지고 캔디와 또 다른 캔디는 댄에게 혼돈과 절망, 낙담과 한숨을 안겨준다. 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캔디’가 그리는 세계는 이처럼 어두운 나락이다.

사실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는 한둘이 아니다. 근자에만 들어서도 ‘트레인스포팅’ ‘레퀴엠’ ‘클린’ 등 줄을 서는 형편에, 이제 호주 영화 ‘캔디’까지 가세했다. 이런 유형의 영화는 주인공들의 환각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그려나갈까 하는 것이 연출의 시험대라고 할 만큼 감독들에게는 도전적인 장르 중 하나다.

마약보다는 마약이 가져오는 주변 인물 관계에 초점



그런데 연극무대 출신의 닐 암필드 감독은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이나 ‘레퀴엠’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과는 달리, 마약보다는 마약이 가지고 오는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전략을 택한다. 즉 ‘트레인스포팅’과 ‘레퀴엠’이 고삐 풀린 시각적 이미지들로 관객들에게 눈동자에 마약주사를 밀어넣는 것 같은 현란한 경험을 선사한다면, ‘캔디’는 한층 그 어조를 누그러뜨리고 마약으로 인한 인생 몰락의 칸타타와 사랑과 이별의 소나타를 동시에 연주하려 한다. 그래서 감독은 영상언어의 전시장 대신, 수영장이나 놀이기구 같은 현실에서 부딪칠 수 있는 공간들로 두 사람의 쾌락의 성전을 빗댄다.

마약 쾌락 천국에서 잔혹한 지옥으로 추락

마약을 통한 쾌락을 갈구하지만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젊은 커플 댄과 캔디. 영화 ‘캔디’는 실제 약물과용으로 요절한 배우 히스 레저의 유작이기도 하다.

분명 첫 장면 공원에서 빙빙 도는 컵 모양 놀이기구를 타며 원심력을 즐기는 댄과 캔디의 시각적 이미지는 자기통제를 잃고 퇴행하는 이 커플의 앞날에 대한 복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도 잠시, 헤로인 주사를 맞고 물속에서 널브러졌던 캔디는 간신히 깨어나자 “너무 좋다. 한 대 더!”를 연발한다. 감독은 커플이 정맥에 바늘을 찌를 때 성가를 배치해 마약이 야기하는 환희의 극치를 청각적으로 은유하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인공들의 마약 체험이 죽음과 재생의 필터를 거쳐야만 성숙하게 되는 내면의 빛과 그림자의 교차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캔디’는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클린’에서 장만옥이 그랬듯, 연출자보다는 배우가 먼저 보이는 영화다. 특히 천국, 지상, 지옥의 세 파트로 영화를 나누고 도입부마다 히스 레저의 내레이션에 의존하는 연출방식은 그들이 왜 이 금단의 약물에 손을 댔는지, 그들이 어떻게 서로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에는 지나치게 불친절하다. 이 영화로 데뷔한 감독 닐 암필드는 마약이나 매춘, 유산의 고통과 어린 시절 학대 등의 묵직한 주제를 담아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그리 인상적이지 못한 연출 솜씨를 드러낸다.

그러나 익히 보아온 스토리와 난행(亂行), 파국에 듬뿍 물을 주는 것은 히스 레저라는 농익은 배우와 샤를리즈 테론을 연상시키는 애비 코니시의 신선함 덕분일 것이다. 물론 ‘캔디’에서 도저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배우는 이 영화가 유작이 되다시피 한 히스 레저다. 실제로 그는 1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발견됐다. 그의 시신 옆에는 여섯 종류의 수면제와 약물이 흩어져 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그리고 배우뿐 아니라 감독 데뷔도 준비하던 이 유망주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덟이었다.

히스 레저 삶 반영 … 제프리 러시 에너지 최고의 미덕

이 때문에 ‘캔디’는 히스 레저의 삶과 많은 부분 오버랩된다고 해서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그가 여자가 던진 화병에 머리를 맞아도 씩 웃어버리고, 점차 전락하는 백인 쓰레기를 연기하며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은 왠지 가슴을 저민다. 우울하고 축 처진 그의 뒷모습에는 만성 불면증으로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새벽마다 노숙자들과 체스를 두었다던 외로움의 그림자도 함께 너울거린다.

또한 화학교수이면서 동성애자 역할을 맡은 제프리 러시는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악마적인 본성으로 커플을 지옥의 구렁텅이에 밀어넣는 악마-아버지 역을 훌륭하게 해낸다. 제프리 러시가 발산하는 에너지와 모호함은 이 영화가 지닌 최고의 미덕 중 하나다.

결국 댄과 캔디의 여정엔 구원도, 희망의 빛도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파멸해가는 이들 청춘 뒤에는 한때 쾌락의 왕국에 순결을 팔았다 무수한 주삿바늘 자국만이 문신으로 남아 현실의 굴욕을 당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캔디는 매춘으로 약값을 조달하고, 댄은 보이스 피싱으로 사기를 치며 빈둥빈둥 하루를 보내면서도 둘의 사랑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영화는 마약 주사기로 빚어낸 러브 스토리이기도 할 터. 만약 닐 암필드가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맥박 뛰는 청순한 러브스토리를 추구했다면, 왜 굳이 헤로인이 들어가야 했을까? 히스 레저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는 듯한 이 영화를 찍으면서 과연 아무런 운명의 전율도 느끼지 못했을까? 이름과 달리 그다지 달콤하지 않은 영화 ‘캔디’에는 여전한 아쉬움과 함께 많은 의문부호가 남아 일렁거린다.



주간동아 2008.04.22 632호 (p74~76)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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