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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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공석 사태… 한총련의 몰락

16년 학생 이념투쟁, 조직 존폐 기로… 활동 위축되지만 와해되지는 않을 듯

  • 한상준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alwaysj@donga.com

    입력2008-04-07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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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장 공석 사태… 한총련의 몰락

    한총련의 전신인 전대협 출신 정치인은 줄잡아 수십명이 넘는다. 현역 국회의원만 10여 명에 이를 정도.

    ‘불패의 애국대오’를 자처하며 지난 16년간 학생운동을 이끌어온 국내 최대 학생운동 조직인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1993년 출범한 한총련이 최근 제16기 의장 선출에 실패함으로써 조직 존폐의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한총련이 의장 선출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한총련은 올해 초 내부 합의를 거쳐 조선대 총학생회장 최모 씨를 단독후보로 내정한 바 있다. 당초 한총련이 정한 16기 의장 선거의 후보자 등록 마감시한은 2월15일. 예정대로라면 최씨의 단독 입후보로 2월 중 의장 선출이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최씨가 한총련 의장 선거 출마의사를 번복하면서 한총련은 혼란에 빠졌다.

    이와 관련, 한총련의 한 관계자는 “최씨는 중앙위원회에서도 과반의 지지를 받아 의장 후보로 내정돼 사실상 의장 선출이 확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최씨 가족이 완강하게 만류해 결국 출마를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병을 앓고 있는 최씨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가 결정적 이유가 됐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단독후보 출마가 무산되면서 별 탈 없이 끝날 것 같던 의장 선출에 비상이 걸렸다. 한총련 지도부는 후보 등록 시한을 한 달간 연장하고 서울의 한 사립대 총학생회장과 영남지역 한 대학의 총학생회장에게 출마 의사를 타진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급해진 한총련 지도부는 또 다른 총학생회장들에게 설득을 시도했지만 하나같이 “등록금 투쟁 등 학내 현안이 많다” “의장을 할 경우 소속 대학 활동에 소홀해진다”며 출마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후보 등록 시한 연장에도 출마자가 없자 한총련은 3월29일 김현웅 전남대 총학생회장을 ‘16기 한총련 투쟁본부장’으로 추대하고 16기 집행부를 비상대책위(이하 비대위) 체제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의장 공석 사태… 한총련의 몰락

    초대 의장을 지낸 이인영 의원, 오영식 의원(2기 의장), 임종석 의원(3기 의장)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왼쪽부터).

    사법처리 부담에 의장 프리미엄도 실종

    그동안 의장 후보로 거론된 총학생회장들이 내세운 표면적 거부 이유는 하나같이 ‘학내 현안’이었다. 그러나 한총련과 정보기관 주변에서는 이들의 불출마 배경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우선 ‘의장 당선=사법처리’라는 공식이 한총련 소속 총학생회장들의 의장 출마를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음은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한 관계자의 설명.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인 한총련 의장은 지금까지 예외 없이 수배 등 사법조치를 당해왔다. 여기에 새 정부 들어 불법 집회에 대한 잣대가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총학생회장들이 출마를 꺼리게 됐을 것이다. ”

    1980~90년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누려온 ‘의장 프리미엄’이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 한총련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이하 전대협) 의장들은 의장 활동을 발판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17대 국회의원인 임종석 이인영 의원 등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학생운동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달라지면서 한총련 의장은 과거와 같은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좁아지는 운동권의 학내 입지도 총학생회장들의 발목을 잡는다.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의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한총련 의장에 당선됐을 경우 쏟아지게 될 학내 비판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3월29일 열린 한총련 대의원대회 장소를 제공한 한양대 총학생회의 경우 ‘한총련에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회가 끝난 뒤 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대의원대회 이후 학생들은 학교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한총련에 장소를 제공한 것이 말이 되느냐. 총학생회가 학생들과의 약속을 저버렸다”는 등의 비판을 쏟아내 총학생회 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언론과 대학들은 이번 의장 공석 사태가 한총련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현직 총학생회장들의 현실인식과도 맥을 같이한다. 김민중 중앙대 총학생회장 대행의 말이다.

    “대학생들에게 한총련은 이미 ‘흘러간 유행가’가 된 지 오래다. 이런 대학가의 인식이 뒤늦게 한총련 내부에도 영향을 끼친 것 아니겠는가.”

    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전대협이 있었다면, 9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축은 한총련이었다. 사회 일각에서는 “한총련이 우리 사회 진보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학가의 ‘탈(脫)한총련’ ‘비(非)운동권’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면서 한총련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변하지 않는 한총련의 이념과 강경투쟁 방침에 학생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한때 200여 개에 달했던 한총련 가입 대학 수는 현재 40여 개로 떨어졌다.

    가입 총학생회 한때 200여 개, 현재 40여 개로 급격히 위축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한총련의 붕괴 조짐이 곧 학생운동의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분석한다. 한총련 내부의 상황인식도 생각보다는 심각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2003년부터 3년 동안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한 김모(30) 씨는 “내부 합의 실패로 의장 후보가 2명씩 출마했던 2001~2003년이 더 위기상황이었다. 올해는 내부 합의를 통한 의장 후보 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개인적 사정으로 사퇴하게 된 것일 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인식에는 정보기관 관계자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한총련 내외부의 극심한 온도차와 향후 전망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호남지역에서 활동하는 남총련 세력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에 한총련의 명맥은 유지될 것이다. 활동은 다소 위축되더라도 와해까지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앞으로도 등록금 투쟁, 주한미군 철수 운동 등의 활동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한편 학생운동의 퇴조와 한총련 붕괴라는 시각에 대해 현택수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특정 단체가 어렵다고 해서 학생운동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념투쟁 일변도였던 과거와 달리 장애인 운동, 여성 운동, 비정규직 투쟁 등 다양한 사회 이슈에 대해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학생운동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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