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0

2008.04.08

친구야 이 길에 뭐가 있을까, 천천히 가자

어느덧 세금 내는 사회인 실감 안 나 … 어물쩍 어른, 삶이 가쁜 건 당연해

  • 정이현 소설가

    입력2008-04-02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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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야 이 길에 뭐가 있을까,  천천히 가자
    안녕, K.

    먼저 진심으로 축하해. 얼마 전 둘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아내가 열 시간 넘는 산고 끝에 무사히 출산했다고, 건강한 딸애의 아빠가 됐음을 선포한다는 너의 단체문자메시지 잘 받았어. 그 짧은 문장 속에 너의 설렘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 씩 웃음이 나더라. 내가 뭐라고 답문을 보냈더라? 아기가 부디 아빠 아닌 엄마 얼굴을 닮길 기원한다고 했었나? 농담을 가장한 진담이었어. 참, 빼먹은 말이 하나 더 있다. 친구야, 너 참 대견해.

    가끔 실감나지 않을 때도 있어. 그 시절의 내 친구들이 이렇게 온전히 제 손으로 밥벌이를 하고 가족을 책임지고 세금을 내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하긴 믿어지지 않는 일이 어디 한둘이니? 그러고 보니, 우아 세상에, 우리 앞으로 마흔까지 몇 년 남은 거야?

    우리들 중심 화제가 ‘돈’ 나이 먹었나봐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날이 생각난다. 그래, 아내와 아이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라며 네가 불참했던 그 모임 말이야. 그날 아, 우리가 확실히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싶더라. 중심 화제가 단연 ‘돈’과 관련된 것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나봐. 차이나펀드에 투자했는데 손해가 막심하다며 P가 앓는 소리를 하더라. 그래도 역시 그 방면으로 제일 빠른 건 그 녀석이야. H가 이사할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서울 시내 아파트 시세와 차후 동향까지 줄줄 읊어대더라고.



    우리 중에 맨 먼저 결혼해 일찌감치 학부형이 된 J가 Y에게 진지하게 충고하는 목소리도 들려왔어. Y의 아이가 이번에 유치원에 들어가나봐. J는 어떻게 해서든 원어민 강사가 가르치는 영어유치원에 넣으라고 하더라. 한쪽 구석에선 O가 휴대전화로 연신 통화 중이었어. 업무 때문이지 뭐. 팀원들 다 야근 중인데 팀장인 자기만 잠깐 나온 거라고 하던가. 저녁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둘러 회사로 들어가더라고.

    나? 이상하게도 줄곧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어. P의 입대 전날, 다 함께 한강 둔치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부르던 노래가 뭐였는지 문득 떠오른 거야. 푸른하늘의 ‘우리 모두 여기에’. 스물한 살의 우리, 15년 뒤에 이런 모습으로 모여 있을 줄 그땐 상상도 못했더랬지. 그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씩씩하게 목청을 높이던 P의 눈가에서 물기가 가만히 반짝이고 있었는데.

    외환위기의 광풍이 몰아치던 시절,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하루아침에 잘려 백수가 된 H. 그녀와 대낮의 종로를 빈둥빈둥 쏘다녔던 날도 있었지. 우리가 그때 봤던 영화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 또래인 저 여배우는 저렇게 잘나가는데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어 어깨가 움츠러들던 그 열패감만은 생생한 걸로 봐서, 아마 심은하 아니면 전도연 주연의 영화였을 거야. 지금 무탈하게 사는 것이 가장 고마운 건 뭐니뭐니 해도 J야. 다단계 판매에 빠져 4학년 2학기 등록금을 다 날리곤 친구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려 잠수 탔던 일, 그녀는 잊지 않고 있겠지. 몇 개월 만에 나타난 그 애가 민망한 듯 머뭇거리며 흰 봉투를 내밀었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첫사랑과 헤어지고 소주 한 병에 만취해 길 한복판에 큰 대자로 드러누웠던 K, 네 몰골도 선명히 기억난다. 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려 보니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했던가. 지금이라면 정말로 불가능한 짓이다. 그렇지? 지금은 1990년대가 아니잖아. 거리 곳곳의 공중전화 부스들은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고, 무조건 격렬하게 감정을 분출할 수 있었던 맹목 혹은 만용 혹은 순수의 시절은 진즉 지나갔으니까. 뭐, 무엇보다 몸이 예전 같지 않잖니.

    친구야 이 길에 뭐가 있을까,  천천히 가자
    “시간 참 빠르지”라고 노인네처럼 말하려다 그만둔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그 시간들이 결코 사속(斯速)한 빛의 속도로 흐르지 않았음을. 삐삐 번호가 휴대전화 번호로 바뀌고 휴대전화 번호가 또 몇 번이나 변경되고 메신저 주소도 생기고 하는 동안, 우리는 어쩌면 참으로 더디게 1990년대를 보내고 2000년대를 맞았어. 20대의 날들과 힘들게 결별하고, 이제야 겨우 30대라는 사실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됐는지도 몰라. 30대가 몇 년 남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우린 어쩜 이렇게 늦되니?

    그날의 모임은 결국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됐어. 지난번보다 눈에 띄게 뱃살이 붙은 Y에게 모두 한마디씩 퉁에 가까운 충고를 던졌지. 너 그러다 큰일 난다, 운동 좀 해라, 술을 끊든 담배를 끊든 결단을 내려라, 애가 여섯 살인데 불안하지도 않냐…. 궁지에 몰린 Y가 장난처럼 툭 던진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잊히질 않네.

    사는 게 언제 불안하지 않은 적 있었냐.

    왜 아무도 대꾸하지 못했을까. 그 자조 섞인 어투가 왜 날카롭게 가슴에 와 박혔을까. 그래도 Y 녀석, 맥주 한잔에 대리운전 불러서 집에 가더라. 가격 흥정까지 하면서 말이야. 이윽고 친구들은 서울 동서남북으로 흩어졌어. 내일 출근이 여덟 시인 친구는 아홉 시인 친구를 부러워하고, 아홉 시인 친구는 프리랜서인 친구를 부러워했지. 다음엔 광화문의 김치삼겹살집에서 만나자, 아니면 봄이 다 가기 전에 아예 등산을 한번 가자, 이런저런 계획들을 무성히 나누었지만 올해 안에 또 이렇게 모이기 쉽지 않으리라는 건 분명해 보였어.

    사소하고 예민한 시간에서 자유롭게 같이 성장 고마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가슴께가 뻐근하게 저려오더라. 이제 모두들 다른 모습으로 제각각 살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엄습해서였을까? 그리고 동시에, 모두들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도 훔쳐본 듯싶었어. 아이가 둘이어도, 회사에서 차장이라는 직함을 달아도, 아파트를 사거나 먼 나라로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해도 우리는 모두 1990년대의 아이들이지. 어물어물하다 2000년대, 어른의 세계로 진입해버린. 그러니 삶이 가쁜 건 당연해.

    K야, 어떤 청춘은 지나고 나서 신화로 남기도 하더라. 윗세대의 경우가 종종 그렇듯이. 그런데 왜 우리가 지나온 그 시절, 1990년대의 청춘은 신화라는 거창한 단어와는 멀리 떨어진 것 같을까. 우리의 청춘은 그저 일상이었던 것 같아. 작은 고통과 작은 즐거움들,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청춘의 자의식. 90년대라는 그 사소하고 예민한 시간대 안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자라날 수 있었다. 2008년의 우리가 90년대를 회상하는 방식이 부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무책임한 위안의 흔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친애하는 벗 K, 우리 또 하루 멀어져간다는 푸념은 하지 말자. 어깨의 짐이 점점 무거워져도, 무릎이 불안하게 휘청대도 이 길의 끝에 뭐가 있는지 천천히 한번 가보기로 하자. 조금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너희가 고맙고 또 자랑스럽다. 하루하루 버티며 이렇게 함께 걸어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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