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0

2008.04.08

“조풍언에게 보낸 526억원은 김우중 은닉자금”

대우 관련 대여금 소송 법원 판결문 입수 … 조씨 이 돈으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집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4-02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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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풍언에게 보낸 526억원은 김우중 은닉자금”

    최근 입국한 조풍언 씨.

    김대중(DJ) 전 대통령 일가와의 두터운 친분으로 DJ 정부 당시 권력의 배후 실세로 군림한 것으로 알려진 재미교포 무기거래상 조풍언(68) 씨가 최근 검찰 주변에서 이슈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

    조씨는 2005년 검찰이 수사를 중단한 대우그룹 구명 정·관계 로비 의혹사건의 핵심 인물. 당시 미국 시민권자였던 까닭에 내사 중지처분을 받았던 그가 3월 초 비밀리에 입국하면서 사건 해결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수사에서 그의 범죄 혐의를 확정하지 못했던 검찰은 미국에 체류 중이던 조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청구 절차를 밟는 대신, 미 사법당국에 형사사법 공조 요청만 하고 수사를 중단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입국 사실이 확인되자마자 검찰은 출국 정지 조치를 내리고 3년여 만에 ‘대형 미제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3월24일 조씨를 본격 소환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김우중-조풍언’으로 이어지는 커넥션의 최종 귀착지가 밝혀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씨, 출국 정지될 줄 알면서 입국 … DJ-김우중 사이에서 실익 챙기기 의도?

    조씨가 새 정부 출범 직후 갑작스레 ‘당당히’ 입국한 배경과 의도는 무엇일까. 그가 모든 진실을 털어놓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는 전제하에 입국을 결심한 것인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로비 의혹 관련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난 시점에 맞춰 자신의 국내 재산을 정리하려는 목적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항간에서는 4·9 총선이 임박한 시점과 조씨가 DJ 일가의 재산 처분 등에 관여한 이력이 함께 거론되면서 일종의 정치적 협상이 동반된 ‘기획입국’설까지 나돌고 있다. 이 같은 두 가지 시각이 합쳐져 조씨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DJ와 확실히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리려는 포석이라는 관측도 심심찮게 제기된다.

    이러한 흐름에서 볼 때 조씨가 입국하기 전 대우정보시스템의 지분 변동, 그리고 조씨와 김 전 회장 간 거래에 관한 대여금 소송 등의 사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논란과 추측들을 뒷받침할 만한 특이점이 발견된다.

    먼저 조씨의 대표적인 국내 재산으로 분류된 대우정보시스템 지분율이 입국 전에 크게 바뀌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조씨의 대우정보시스템 지분 변화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 주식이 김 전 회장의 소유로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조씨는 자신이 소유한 홍콩계 투자회사 KMC 명의로 1999년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258만주(71.8%)를 약 281억원에 사들였다. 2005년 당시 검찰은 김 전 회장이 BFC(British Finance Center·대우그룹이 해외 현지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금, 현지법인 자금, 대우 해외계좌 등을 관리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 설치한 비밀조직으로 알려져 있음)를 통해 조씨의 KMC 계좌로 4430만 달러(당시 약 526억원)를 송금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KMC가 이 자금의 일부를 활용해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사들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1999년 이후 조씨의 지분율이 약간씩 떨어지긴 했지만 최대주주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KMC는 갑자기 2대 주주로 내려앉았다. 3월4일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2007년 대우정보시스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환사채에 대한 전환청구권을 Glory choice china, LTD가 행사해 회사 지분 34.5%를 취득함으로써 최대주주가 됐다. 이로 인해 KMC의 지분율은 28.1%로 떨어졌다.

    “조풍언에게 보낸 526억원은 김우중 은닉자금”

    대검 중수부는 1999년 대우그룹 퇴출 저지 및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오른쪽) 구명 로비 의혹을

    연대책임서 조씨 상당부분 부담 줄어든 듯

    대우정보시스템 법인 등기부등본에도 회사가 지난해 11월14일 기존 발행 주식(385만4000주) 수에서 203만1536주를 더 늘린 것으로 돼 있는데, 증가 발행된 주식 수와 감사보고서에 나타난 Glory choice china, LTD 확보 주식 수가 동일하다. 1999년 이후 처음이자 아주 이례적으로 외국 인수합병(M·A) 법인에 주식이 일방적으로 배당된 뒤 조씨는 물러나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이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김 전 회장, 조씨가 얽힌 대여금 소송에서 구체적인 판결을 내린 부분도 조씨의 이번 입국과 관련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사안이다.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재판장 최영룡 부장판사)는 올해 1월25일 원고인 대우의 최종 채권자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피고인 김 전 회장, 조씨, 조씨 소유 페이퍼 컴퍼니(KMC, 통신네트웍, 라베스인베스트먼트)의 대여금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은 김 전 회장과 조씨 사이에 오간 4430만 달러의 증여, 변제계약을 취소하고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원금과 이자를 갚으라는 취지에 대한 것이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이번 재판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대우 구명 로비 사건 의혹의 핵심이었던 4430만 달러가 증여, 변제 차원에서 김 전 회장과 조씨 사이에 오간 것이 아니라 김 전 회장의 은닉 자금이 조씨의 법인 계좌에 명의신탁된 것으로 간주하고, 피고들에게 원금과 이자 등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그동안 김 전 회장 자금의 성격을 은닉자금으로 규정한 검찰의 손을 이번에 처음으로 들어준 셈이다.

    그런데 이 소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고 중에서도 조씨는 김 전 회장과의 연대책임에서 상당 부분 부담을 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횡령한 자금이 KMC로 명의신탁돼 대우정보시스템 등의 주식을 취득하는 데 쓰였다고 판결했다. 또한 KMC의 명의로 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189만7750주(2001년 9월21일 기준)를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그 대신 조씨에 대한 재산 소유권 확인 청구 부분은 원고의 주장을 기각했다. 즉, 김 전 회장이 투입한 자금에서 조씨와 KMC 등이 얻은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는 법률적으로 청구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측근들과의 만남에서 DJ에 대한 섭섭함 노출

    “조풍언에게 보낸 526억원은 김우중 은닉자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산 자택. 현재는 조풍언 씨 소유로 돼 있다.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의 변동과 법원 판결문 내용을 종합해보면, 결국 외형상으로 조씨는 KMC 명의 주식 189만 7750주에 대한 재판부의 인도 판결이 나기 전, 대우정보시스템 전환사채를 발행해 외국 법인을 최대주주로 올려놓고 차후를 대비한 셈이 된다. KMC 지분이 인도되더라도 차후 Glory choice china, LTD와의 관계 설정에 따라서는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미리 열어놓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전체적으로 조씨의 입국 수순은 4430만 달러에 대한 송금, 그리고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매입 과정에서 빚어진 김 전 회장과의 ‘불편한 동거’ 등이 주식 전환사채 발행과 법원 판결로 어느 정도 정리된 이후 자연스레 이뤄졌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한편 조씨는 입국 이후 측근들에게 DJ에 대한 불편한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조씨와 접촉했던 목포·해남 지역 정치인들은 조씨가 DJ 측에 대한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조씨는 이미 2003년 미국 현지 한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DJ 정부 때 나는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했다. DJ 아들들의 여자문제가 복잡하다고 말했다가 그와 소원해졌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조씨의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김 전 회장과 DJ 사이에서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행보. 장사꾼 본연의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는 것일까. 그의 입국 전후 행적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김우중-조풍언 말 바꾸기

    돈 빌렸다는 러시아 기업인 알고 보니 차남이 만든 가공인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2005년 검찰 수사에서 KMC로 송금한 4430만 달러에 대해 “조씨의 소개로 해외 기업인 투자자에게서 차용한 7500만 달러 중 일부를 변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김 전 회장과 조씨는 그 해외 기업인의 실체에 대해 “중국의 유명 기업인”이라는 주장을 폈고, 검찰 수사 단계에서 그의 정체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주간동아’가 이번에 대여금 소송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판결문에는 조씨와 KMC가 김 전 회장에게 돈을 빌려준 당사자를 러시아 기업인 ‘데레조프스키(Derezhovsky)’와 NITC 법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기재돼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재판부가 김 전 회장의 둘째 아들 선용 씨가 태국 방콕은행에서 자신의 여권을 제시하고 이명(異名)으로 ‘데레조프스키’라고 쓴 뒤 계좌를 개설한 부분을 사실로 인정한 점이다. 결과적으로 ‘데레조프스키’는 허구 인물이며, 김 전 회장과 조씨의 검찰 진술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대우 측과 김 전 회장은 1996년 중국의 국영회사가 대우그룹 계열의 페이퍼 컴퍼니 ‘Silverlake’를 통해 BFC 계좌로 7500만 달러를 입금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찰은 2005년 수사 당시 7500만 달러의 출처가 중국인이 아니라 나이지리아 군부 독재자 ‘사니아바차’(1998년 사망)라며 김 전 회장을 압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두 가지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중국 국영회사에서 돈이 입금된 당시부터 대우그룹 임원에게 아바차 장군의 7500만 달러를 BFC에서 보관하라고 지시한 점 △김 전 회장이 BFC에 4430만 달러를 송금한 이후에도 임원들에게 중국 기업과 아바차 장군의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한 점 등에 비춰 7500만 달러에 대한 채무변제 성격을 입증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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