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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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사건’ 그 속살을 끄집어내다

  • 류한승 미술평론가·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입력2008-03-26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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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와 사건’ 그 속살을 끄집어내다

    1_ HBO의 방송사고, Sasa[44] ‘860427’.<br>2_ 월드시리즈에서 벌어진 밤비노의 저주, Sasa[44] ‘861250’.<br>3_ 노란 물감과 딩뱃 폰트를 배열한 박미나의 ‘JacajAxggg’.

    ‘MeeNa · Sasa[44] Kukje 080307-080406’라는 독특한 이름의 전시가 4월6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다. 박미나와 Sasa[44]는 각자 독립적인 예술활동을 하지만, 종종 느슨하게 접속해 공동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음악을 전공한 Sasa[44]는 미술에 ‘피처링(featuring)’ 개념을 도입한 작가다. 그는 기존의 이미지나 사건에서 새로운 요소를 끄집어내고 이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배치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Sasa[44]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에 주목하고, 그해 벌어졌던 흥미로운 사건들을 수집한다. 먼저 1월28일 미국의 유인우주탐사선 ‘챌린저’호가 공중분해됐고, 4월26일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다. 10월21일에는 카메룬의 니오스 호수 지역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1700명이 압사했고, 파키스탄의 파루크 알비 형제가 만든 ‘브레인’이라는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했다. 위성방송 신호 송출을 처음 시도한 미국의 HBO는 4월27일 ‘캡틴 미드나잇’이라고 자칭한 사람의 해킹으로 엉뚱한 화면을 내보내는 방송사고를 저지르며, 10월25일 열린 보스턴과 뉴욕 메츠의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는 보스턴의 1루수 빌 버크너가 다리 사이로 공을 빠뜨려 ‘밤비노의 저주’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했다. 그해는 31년간 독재정치를 자행한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추방된 해이기도 하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인류의 무분별한 성장정책에 따른 폐해라고 할 수 있다.

    1986년 흥미로운 사건 수집 … 노란색 물감끼리의 미묘한 차이

    한편 ‘색채’와 ‘문양’에 관심이 많은 박미나는 이전부터 물감 색깔의 이름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2004년 그는 한국에서 살 수 있는 모든 물감 세트를 구입했다. 16종의 제품이 있었고, 물감 개수는 모두 700여 개에 이르렀다. 그중 오렌지색 계열은 38개였는데, 그 전에는 30개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물감 이름과 색은 유동적이며 그 사회의 한 부분을 반영한다.



    박미나는 이번 전시를 위해 8개의 물감 세트를 구하고, 그중 노란색만 골라 8개의 캔버스에 각각 칠했다. 같은 노란색이라도 회사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작가는 이에 따라 캔버스를 적절히 배치해 노란색 그러데이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 딩뱃 폰트(dingbat font)의 문자를 나열했다. 일반적으로 폰트란 글씨체를 여러 형태로 변형하는 것이지만, 딩뱃 폰트는 글씨체에 대한 정보 대신 그림 정보를 넣어두는 것이다. 즉 의미 중심이 아닌 이미지와 문양의 폰트다. 그가 배열한 딩뱃 폰트를 해석하면 ‘fresh’ ‘copy’ 등과 같은 단어가 된다. 문의 02-735-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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