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9

2008.04.01

“추징금? 배 째라!” 무일푼 부자들이 기막혀

대형 비리 연루자들 추징금 납부 검찰자료 단독 입수, 김우중, 최순영, DJ 처남 이성호 씨 등 한 푼도 안 내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3-26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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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징금? 배 째라!” 무일푼 부자들이 기막혀
    정·재계 거물급 인사들이 연루된 대형 비리사건은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다. 때로는 엄청난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그들이 저지른 중대 범죄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는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거나, 사건 이면에 감춰진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기도 한다.

    행여 이들이 국가와 사회 공헌 등의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거나 법원 선고 단계에서 형량이 줄기라도 하면 ‘유전무죄’ ‘유권무죄’라는 논란이 사회 이슈로 부각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불법으로 비자금을 받거나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백억 또는 수천억원을 훌쩍 넘는 거액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이들에겐 더욱 날카로운 국민의 시선이 모아진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 김대중(DJ) 정부 이후 뇌물이나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정치인, 각종 게이트의 장본인들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특히 ‘배 째라’식으로 추징금 납부를 미루고 있어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추징금을 몇 년째 한 푼도 내지 않고 버티는 체납자도 상당수며, 추징이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사면된 사례까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계좌엔 달랑 4만7000원 … 세 아들은 호화생활



    지난해 10월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관련 자료에 따르면, 추징금 집행률은 전체 추징 대상액의 1%도 되지 않는다. 더욱이 거물급 인사들로만 따지만 그 수치는 더 내려간다. ‘있는 사람이 더하다’고 여기는 보통의 국민 정서로 볼 때, 추징금 문제는 앞으로도 쉽게 용납될 사안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검찰이 지난해 말 특별사면 받은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추징금 회수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형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에 대한 추징금 회수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과연 ‘철면피’ 미납자들의 추징 현황은 어떨까.

    검찰이 현재 중요 추징금 미납자로 관리 중인 거물급 인사는 13명 정도다. 이 중에서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김우중 전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 특히 중요한 추징 대상자로 분류된다. 그만큼 추징금액이 크면서도 추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추징금? 배 째라!” 무일푼 부자들이 기막혀

    2003년 경매에 붙여진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의 가재도구.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검찰에서 ‘중요 추징금 미납자’ 현황(3월18일 현재)을 받아 그 내용을 면밀히 살폈다. 먼저 1997년 형이 확정된 전 전 대통령의 경우, 형 확정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2205억원의 추징금액 가운데 532억원만 추징됐다. 이는 전체 추징금액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검찰은 2004년 전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와 친인척을 통해 채권과 현금 등 200억원 정도를 추가로 추징했으나, 올 들어서는 전 전 대통령의 계좌에서 4만7000원을 추징해낸 게 전부다.

    이미 전 전 대통령 명의로 된 벤츠 승용차와 콘도 회원권, 자택 등을 경매로 처분해 환수했기 때문에 전 전 대통령 명의로는 더 나올 게 없는 상황이다.

    “추징금? 배 째라!” 무일푼 부자들이 기막혀

    2005년 6년여 간 도피생활을 마치고 입국, 검찰에 출두해 취재진에 둘러싸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가운데).

    김우중 전 회장 이미 채권자 손에 넘어간 부동산 수두룩

    서울 서초동에서 대형 출판사를 경영하며 경기 연천에 대규모 땅을 매입해 호화 허브농장을 만든 장남 재국 씨는 물론, 차남 재용 씨와 삼남 재만 씨가 서울 삼성동과 한남동 등지에 고급 아파트, 건물, 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점에 비춰본다면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는 전 전 대통령의 처지를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전 전 대통령보다는 꾸준히 추징을 집행했다. 추징금액 2628억원 가운데 2275억원이 추징돼 342억원 정도가 남았다.

    최근엔 검찰이 동생 재우 씨 명의로 된 두 회사를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의 것으로 결론 내고 추징 절차를 밟고 있어 추징금 잔액은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검찰은 먼저 지난 1월 재우 씨가 회장으로 있는 성화산업에 대한 지분을 추징했다.

    “추징금? 배 째라!” 무일푼 부자들이 기막혀

    ‘정현준 게이트’ 사건으로 추징금 10억원을 선고받은 정현준 씨.

    또한 재우 씨가 1989년 세운 냉장·냉동 물류회사 미락냉장(2004년 오로라씨에스로 법인명 변경)에 대해서도 감정 절차를 밟고 있다. 미락냉장은 95년 검찰이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유입된 곳으로 지목된 회사다. 그동안 몰수와 추징이 시행되지 않다가, 지난해 6월 노 전 대통령이 “본인이 건넨 122억원의 돈이 미락냉장의 부지 매입과 설립 자금으로 쓰였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탄원서가 접수되자마자 재우 씨의 미락냉장 지분 30%를 압류한 동시에 감정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눈에 띄는 대목은 5만2800㎡에 이르는 미락냉장 용인 공장의 건물과 부지 가운데 일부가 재우 씨 아들 호준 씨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시티유통으로 2004년 등기 이전됐다는 점이다. 미락냉장 지분도 2000년 20%였으나 지금은 절반 넘게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미락냉장 용인 부지의 등기부등본을 살펴보면, 재우 씨 측이 미락냉장 명의로 100억원 상당의 서울 청담동 건물까지 매입한 흔적도 보인다. 노 전 대통령 주장대로라면, 노 전 대통령의 재산이 결론적으로 재우 씨를 거쳐 조카 호준 씨에게까지 옮겨간 것이다.

    그렇다면 재우 씨 측이 의도적으로 회사 지분을 호준 씨에게 넘긴 뒤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구입하는 식으로 부지, 건물, 지분에 대한 추징에 대비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추징금? 배 째라!” 무일푼 부자들이 기막혀

    2003년 2월25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

    2000억원 빼돌린 혐의 정현준 씨 추징금액 10억원에 납부액은 100만원뿐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2월4일 호준 씨가 미락냉장 부지 일부를 본인의 유통회사에 헐값에 팔아 회사에 손실을 입힌 혐의로 그를 불구속 기소했으며,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6년여 간 추징금을 한 푼도 안 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추징도 올 들어 집중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추징금액 자체가 워낙 많은 데다 김 전 회장 명의로 된 부동산 대부분이 시가보다 더 많게 근저당 설정돼 있어 강제추징마저 어려운 상황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나 대우 측 은닉 재산에 대한 제보는 계속 들어오고 있다. 대검찰청 회수반에서 재산 여부를 인지해 통보해오면 곧바로 추징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부동산에 대한 추징이 여의치 않자, 급기야 1월14일과 17일 대우경제연구소와 한국경제신문의 김 전 회장 명의 주식부터 압수했다. 압수 주식은 대우경제연구소 13만2000주와 한국경제신문 5만3007주.

    외화 밀반출과 계열사 불법대출 혐의로 기소돼 2006년 7월형이 확정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추징금액이 1574억원에 이르지만 추징금 납부 실적은 전무하다.

    더욱이 최 전 회장은 신동아그룹 계열사 신아원의 전 회장 김종은 씨와 함께 1964억원의 추징금을 추가로 공동 납부해야 하는 처지다. 김씨는 최 전 회장이 1996년 국내 4개 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8000만 달러 가운데 1억6000만 달러를 미국으로 빼돌리는 과정에서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1964억원에 대해서는 400만원만 추징됐다. 최 전 회장은 종합소득세 등 체납세액만도 1000억원대에 이른다. 게다가 김씨에게는 추징금을 변제할 만한 재산이 없어 모든 책임을 최 전 회장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처지다.

    상황이 이러하자 검찰은 최 전 회장이 MVP창업투자에 투자한 7억1500만원어치의 주식부터 추징에 나섰다. 이 주식은 최 전 회장 부인 이형자 씨가 제3자 명의로 취득한 것이지만, 이미 대한생명의 신청으로 법원이 최 전 회장의 실질적인 재산으로 보고 압류한 상태. 검찰은 시가 감정과 공매과정을 거쳐 추징금으로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추징금을 한 푼도 안 낸 ‘배 째라’식 미납자도 적지 않다. 2000년 불법대출과 회사 공금 2000여 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정현준 전 한국디지털라인 대표는 대법원에서 징역 9년과 추징금 10억원이 확정됐으나, 현재까지 추징금으로 납부한 액수는 100만원에 불과하다.

    2004년 동아건설에서 최원석 전 회장의 경영 복귀와 수도권 매립 공사 수의계약 건을 도와달라는 청탁금조로 5억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된 뒤 징역 2년에 추징금 2억9500만원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DJ의 처남 이성호 씨도 추징금 납부액이 ‘0원’이다.

    DJ 정부 시절 검찰총장을 지냈던 신승남 씨의 두 동생도 마찬가지. 로비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년과 추징금 2억1600만원을 선고받은 신씨 동생 승환 씨와 2002년 알선수재 혐의로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은 여동생 승자 씨도 수년째 추징금 액수가 변하지 않고 있다. 2000년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신연식 전 한국예원대 이사장도 12억6900만원의 추징금을 아직까지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 중요 추징금 미납자(3월18일 기준) (단위 : 백만원)
    순번 이름 죄명 추징금액 집행액 미제액 비고
    1 김우중 특경가법(재산 국외도피) 17,925,398 0 17,925,398 전 대우그룹 회장
    2 노태우 반란주요임무종사 262,896 227,533 34,250 전 대통령
    3 전두환 반란수괴 등 220,500 53,270 167,229 전 대통령
    4 김종은 특경가법(재산 국외도피) 196,496 4 196,492 전 신아원 대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공동 추징
    5 최순영 특경가법(재산 국외도피) 157,497 0 157,497 전 신동아그룹 회장
    6 이순국 특경가법(재산 국외도피) 1,845 250 1,595 전 신호제지 회장
    7 신연식 배임수재 1,269 0 1,269 전 한국예원대 재단이사장
    8 서청원 특가법(뇌물) 1,200 1,000 200 전 국회의원
    9 정현준 특경가법(배임) 등 1,000 1 999 정현준 게이트 사건 장본인
    10 이성호 특가법(알선수재) 295 0 295 김대중 전 대통령 처남
    11 신승환 특가법(알선수재) 216 0 216 신승남 전 검찰총장 동생
    12 김운환 특가법(뇌물) 130 40 90 전 국회의원
    13 김종배 특가법(뇌물) 30 0 30 전 국회의원
    * 자료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집행과


    추징금이란?

    범죄행위로 얻은 부동산·주식 등을 국가에 반환토록 하는 것


    추징금은 벌금과는 다른 개념이다. 범죄행위로 얻은 동산, 부동산, 주식을 다시 국가에 반환하도록 하는 조치인 것. 추징금을 집행할 수 있는 범죄는 뇌물, 배임 수재, 재산 국외 도피, 변호사법 위반 등으로 정해져 있다. 공소시효는 3년. 시효가 만료되기 전 검찰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조치를 내릴 경우 공소시효가 연장된다.

    법적으로는 본인 명의 재산만 추징할 수 있다. 만약 검찰, 국세청 등이 직계가족이나 제3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추징 당사자의 재산이 은닉된 흔적을 발견하고 법적으로 공증을 받게 되면 추징을 집행할 수 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은닉 재산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측근의 제보나 자발적인 통보가 없으면 사실관계를 밝혀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법무부는 지난해 추징금 강제추징을 위한 국세징수법(검찰이 법원의 허가 없이도 세법에 따라 추징 대상자의 부동산과 채권 등을 압류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제안)적용, 구금제도 도입, 추징의 벌금형 전환 등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올해 1월1일부터 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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